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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의 노상방변...

몰카맨 |2008.09.01 18:52
조회 613 |추천 0

일산사는 22살 남자입니다.

나도 한번쯤 톡이란걸 해보고싶어서

내 생에 최대의 치부를 이자리에서 드러내고자 합니다.

 

나도 톡 시켜주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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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인생을 건

평생을 걸진 않더라도,

인생의 부분의 기간을 건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나 아닌 다른누구도 이해하기 힘든

그런 어려운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 선택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내가 피해를 입느냐

남이 피해를 입느냐

에 따라서 달라지는 경우, 그 고민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진다.

 

그리고 그때뿐만 아니라

훗날 나이가 들어 그때일을 생각 할 때에

어떤 표정으로 그 날을 기억 혹은 추억하느냐도 달라진다.

 

만약 당신의 선택으로 인해

남은 고등학교생활을 완전히 망쳐야 하지만 남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고 끝나거나, 남은 비록 피해를 보고 몇일, 사람에 따라서는 몇주 혹은 몇개월의 정신적 고통을 치러야 한다면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한손가락으로 꼽을만한 사람들만 알고있는 나 치부의 이야기

그 이야기를 이젠 내 특별일촌 열 다섯명 남짓과 나누어보려고 한다

 

그 일이 일어날 때

나는 민락동 끝자락 주택에서 살고있었고,

학교에 늦지 않으려면 그 마을 유일한 버스노선인

1-5번 첫차를 타거나, 자가용을 타거나, 혹은 자전거를 타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때의 난 첫차를 탈 정도로 부지런 하지도 못했고

기름값 생각않을정도로 잘 사는 집의 자녀도 아니었기에

자전거라는 통학수단을 이용했다.

 

여름의 그날 내 향기나는 추억..

 

여느때와 다름없이 빵과 우유로 간단한 조식을 마치고

내 애마 푸른자전거에 내 육중한 둔부를 얹었을때

아주 조용하고 가벼운 존재감으로 '변'신 께서 납시었다.

 

새털만큼 가벼운 존재감을 무시한 난

'학교 물과 휴지를 쓰자'

는 안일한 생각으로 그렇게 힘든 길을 떠났다.

 

7시 30분 출발

목표. 15분내에 부용고등학교까지 주파

난 페달을 밟은 발과 내 믿음직스러운 괄약근에

적절히 힘을 배분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민락동 아파트단지..

산들마을.. 몇동인지는 모른다 어쨋든 그곳

 

인자함이라곤 눈씻고 찾아도 볼 수 없는 '변'신님과

아침에 먹은 우유가 뱃속에서 빵빠레를 울리고

결혼식을 치르고 있었다.

 

시간 42분

부용고의 등교시간 50분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 대장상황과 거리에서

8분내에 지각하지 않고 학교로 입성해

변기를 만날 수 있을거란 계산은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이녀석들을 학교에 데리고 가지 않는 쪽으로

방법을 굳힌 나는 상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득 스친

교원학원

 

씨벌로마 할아버지께서 수위를 맡고 계신 그 건물엔

층마다 화장실이 있다는걸 난 오랜 경험으로 알고있었다.

 

47분

교원학원 건물은 셔터가 내려진체 내 상황을 비웃기라도 하듯

날 그렇게 내려다 보고 있었다.

 

'3분내로 학교에 가는건 불가능 하다.. 지각해서 기합받다가 똥을 싸버릴꺼야.. 그 말릴 수 없는 대 폭발이 날 지옥으로 끌고 갈거야..'

 

방법은 없었다. 제일 가까운 그리고 열린문이 보이는 유마트로 일단 난입하여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발견한.. 화장실

 

50년 못보다가 만나는 이산가족의 기분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철컥 거리는 화장실문의 비웃음 소리..

노란얼굴을 하고 배신감에 부르르 떨다가

혹시나 하고 여자화장실 문고리를 돌렸으나

가제는 게편이고 초록은 동색인지라

비웃음 소리마져 같은 톤으로 날 그렇게 농락했다.

 

방법이 없었다.

난 아직 고등학교생활을 파릇파릇 잘 보내고싶었다.

집으로 돌아가긴 멀고

학교에 가면 자살하는것과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계단을 내려갈 자신도 없었다.

 

다행이 시간이 이른시간인지라

오후에나 문을여는 태권도와 9시에나 문을 여는 유치원[?]

뿐인 2층에 인적은 없었다.

 

미안합니다..

나.. 아직 죽고싶지 않아요.

 

기도아닌 기도후 나는 남자화장실 문 앞에서

바지를 내릴 수 밖에 없었다.

 

대단한 양..

묽은 변님들께서 퍼지고 퍼져 내 신발까지 타락시키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그리고 행복한 감정속의 담배 한개피..

 

그러나.. 휴지가 없었다..

이미 물변님들께선 빛을 보시었고

난 앉은자세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눈물이 날거같았다.

 

학교보낸 아들이 건물 화장실 앞에서 설사나 하고있는 사실을

꿈에도 모를 어머니의 얼굴과,

9시가 되면 꿈을 안고 유치원에 올 아이들의 미소와,

혹은 그 전에 건물을 청소하러 오실지 모르는 아주머니의 주름이 생각나서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휴지가 없어 어쩔줄 모르던 그날의 난

 

 

노팬티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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