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싶다는 27년 전 끝내 밝혀지지 않았던 형제복지원의 진실을 파헤치는 동시에 원장 박씨가 여전히 재단법인을 운영하며 ‘복지재벌’로 거듭날 수 있었던 배경을 추적했다.
형 제복지원은 1975년 부산시와 부랑인일시보호사업 위탁계약을 맺은 후 국가보조금을 지원받으며 3000여명의 부랑인을 수용했다. 하지만 1987년 우연히 산중턱의 작업장에 감금된 수용자들을 목격한 한 검사의 수사를 시작으로 형제복지원의 실체가 드러났다.
추 후 형제복지원에서 12년의 운영 기간 동안 무려 513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용자들에 대한 폭행과 감금이 자행된 이곳에서 수십억원에 달하는 외화가 발견되기도 했다. 검·경은 수사 한 달 만에 형제복지원 원장 박씨를 특수감금, 업무상횡령 등 혐의로 구속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87년 3월 탈출을 시도한 원생 1명이 직원의 구타로 사망하고 35명이 집단 탈출에 성공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박인근 형제복지원 이사장은 재판 끝에 징역 2년6개월의 형을 받는데 그쳤다.
형제복지원의 실태에 대한 진상은 끝내 밝혀지지 않은 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졌지만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513명의 사망자에 대한 수상한 소문은 떠돌고 있다. 시신을 복지원에 팔았다거나 뒷산에 암매장했다는 내용이었다.
제작진은 검찰의 수사 자료를 토대로 오랜 추적 끝에 당시 형제복지원에서 수용자를 관리감독하던 ‘소대장’을 만나 놀라운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지 난해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출범하면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과 명백한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법 제정이 진행되고 있다. 형제복지원에 수용됐던 피해자들은 대부분 형제복지원출신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지금도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으며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http://news.nate.com/view/20140323n00109?mid=n1006
그리고....
형제복지원 설립자 박인근 장로의 선교 비전
대 학생의 학자금 마련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간혹 빚어지는 대학생들의 탈선 뒤에는 “등록금 마련을 위해"라고 이유를 대는 모습을 종종 접할 수 있다.그런데 누군가가 자신의 대학교 재학 4년 간 등록금을 대 준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일까. 시름에 잠겨있는 본인이나 부모들에게 있어 여간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중증장애인들을 수용하고 있는 사회복지법인 형제복지지원재단이 수익사업을 통해 지금까지 6년 간 총 322명의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온 사실이 교계에 알려지자 사실일까 진짜일까 본지에 확인하는 문의 전화가 있었다. 322명의 대학생들이 1회도 아닌 4년 간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받았다. 그렇지만 세상에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설립자의 정신은 한결 같았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구제와 선교이니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이 성경적이다는 것이었다.
한사코 손사래 치는 설립자의 뒤에서 본지 기자는 지켜보다가 세상에 알렸다. 어떤 이들은 “에-이 한 번에 1백만원 정도 장학금으로 주겠지"라고 믿지 않는 듯 했다. 그 말도 이해가 갔다. 누가 이러한 엄청난 일을 감히 감당 할 수 있을 것인가 사회에 보기 드문 일이다 보니 쉽사리 믿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런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에 자랑스러울 뿐이다.
설립자 박인근 장로는 1980년대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세인들에게 널리 알려 졌으며 언론에서는 ‘지옥의 사자'라는 칭호까지 붙여 주었다. 사회복지사업에 처음 손을 댄 것이 1961년도이다. 부랑아들을 돌보면서 시작된 것이 형제복지원을 낳게 했다. 이후 원생들은 늘어났다. 주례동 약 1만 평에 3천 5백 명까지 수용을 하게 됐다. 건물을 짓는 것부터 부식에 이르기까지 정부지원 하나 없이 자체적으로 해결을 했다. 대부분 설립자의 재산 출연에서 이뤄졌다. 당시, 정부는 사회질서와 안정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거리의 부랑아, 넉마지기, 불량인들 수용에 적극 나섰다. 경찰과 시의 협조 속에 형제복지원 수용은 포화 상태까지 갔다. 시와 경찰은 연신 고마움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질서와 안정을 해 칠 수도 있는 이들을 수용키 위해 헌신하는 설립자가 오히려 손을 놓을까봐 걱정이었다. 원에서는 갱생과 자립의 교육이 주입됐다. 3천 5백 명이 의무적으로 사도신경, 주기도문, 십계명 등을 외워야만 했다. 원가는 주로 찬송가였다. 난폭한 수용자들이 군데군데 있음에도 설립자 가족들은 원생들과 똑같이 함께 생활했다. 이러한 삶과 복지 마인드는 지금까지 변함없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중상과 모략이 한꺼번에 닥쳐왔다. 권력의 힘이 대단했던 한 검사에 의해 지금까지 희생해 온 복지사업이 깡그리 무너지는 위기를 맞았다. 설립자는 자신의 명예회복을 위해 무죄를 끝까지 주장했다. 설립자는 불사조와도 같았다. 다시 일어섰다.
주례동 시대를 막 내리고 기장군 정관에 새로운 원사를 짓고 중증장애인을 수용했다. 형제복지지원재단은 구제와 선교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이를 위해 수익 사업부를 확장시켰다. 부산 최대의 헬스장과 수영장을 갖춘 사상해수온천과 새롭게 리모델링해서 문을 다시 연 빅월드 레포츠를 통해 활발한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십 수억이 들어간 통영 에바다농아교회와 홍천 야시대교회는 설립자가 전액을 지원하여 하나님께 봉헌했다.개인 또는 기관, 교회 등을 후원하는데 있어 일반 교회가 후원하는 차원을 넘어 생활이 될 수 있도록 넉넉히 지원하고 있다.
설립자의 마음의 창을 열어 보면 이러한 뜻이 담겨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구제와 선교를 통해 건강과 물질의 축복이 뒤 따르고 있다.
특히 이 땅에 가난한 자와 소외받는 자들을 위해 나눔의 선교를 펼치는 박인근 장로가 하늘에 상금을 차곡차곡 쌓아 가고 있는 셈이다.
http://www.cgnnews.com/detail.php?number=1335&thread=14r03
저딴 새퀼 쉴드쳐주는 개신교 찌라시의 예전 기사.
똥을 치우기는커녕 떠받들어주는 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