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잠깐 바쁜 시간을 보내고 다시금 한가해진 여자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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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 기숙사
1학년, 야식 먹으랴 놀러다니랴 한참 바쁜 시절이었음.
바야흐로 벛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봄에 난 기숙사 일을 하면서 알게 된 남자인 친구가 생김.
조선시대 규수 같게도 난 남자라는 사람 자체를 대학에 와서 처음 봄.
오로지 남자라 하면 우리집 팬티바람으로 돌아다니는 두 부자밖에 못봄.
그랬는데 나에게도 드디어 남자 동기라는게 생긴 것임.
같은 과 동기라 해봤자 음.....
타과생 남자들을 알게 되니 , 아 대학은 이래서 교내 활동을 활발히 해야 하는거구나 싶었음.
하지만 그 기대를 무참히 깨버리신 우리 말군.
내가 대학 와서 처음 알게 된 타과생이 말군이라니.
흐드러지게 핀 벛꽃이 원망스러웠음.
이 말군이 왜 말군이냐 하면
얼굴이 정말 말 같았음.
조랑말도 아니고 그 왕들이 몰고 다니는 적토마 같은 늠름하게 긴 말 머리 있잖슴?
엄청난 머리 길이를 자랑하고 있었음.
아 요즘 같았으면 우리의 셜록 오라방 때문에 마성의 매력이라며 불릴 수 있었겠지만
걔는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났음.
아 요즘 직장을 다니는 이 말군은
자기가 영국 태생이었다면 분명히 셜록은 지였을 거라고 함.
참 이친구는 입을 함부로 놀리는 멋진 놈임^^
근데 말군은 또 끼리끼리 알아본다고
내가 지의 외모에 관해 깔 수준이 못된다는 것을 알았나봄.
모임에서 처음 나랑 마주쳤을 때 말군은 지는 긴 주제에
"너는 어떻게 눈도 코도 입도 얼굴도 다 동글동글하냐" 라는 망언을 내뱉음.
그러함. 나는 동글이가 얼굴에 집중되어 있음.
어쭈, 치부를 들킨 나는
그 다음부터 말군을 한번도 이름으로 부른 적이 없었음.
너의 이름을 불러주면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다는데
난 말군이 나의 꽃이 되는게 싫었음.
말군은 지가 말처럼 생긴걸 또 알아서
"어차피 말로 별명 붙일거면 페가수스로 붙여줘"랬음.
진정 제정신인가 싶음^^
난 그 어떤 미사여구따위도 붙이고 싶지 않아서 그냥 말이라고 부름.
벛꽃이 한창 흩날리던 4월
말군이랑 내가 포함되어 있는 층장모임이 MT를 떠남.
우리 학교가 있는 동네에는 멋진 관광명소가 있음.
우리는 그래서 가볍게 소주와 맥주 두박스씩을 싸들고 MT를 떠남.
한참 마셔라 마셔라 하면서 어깨춤을 추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 말군이 술도 안먹고 벽에 기대어 졸고 있는게 아니겠음?
절호의 기회였음.
말군을 발로 툭툭 차며 "일어나" 했더니
말군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괴성을 지르면서 깨어남.
그러더니 쉰 목소리로 "아 며칠간 잠을 못자서" 이럼.
난 너의 수면에는 무관심하고 싶었지만
자꾸만 이 방정스런 머리는
왜 이 태평한 것이 잠을 며칠간 못잤을까 궁금해 하라며 명령을 내림.
"왜 못잤는데"라고 물을까봐 정말 초인적인 힘으로 내 입을 틀어막고 있었음.
근데 옆에서 술마시던 오빠가 말군한테
"신경쓰지 말고 자 임마 처음엔 다 그래"라며 토닥임.
얼른 오빠한테 물어봤음. 말군 왜저러냐고
말군은 며칠 전 자다가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잠이 깸.
잠이 덜깨서 화장실로 벽을 더듬으며 가고 있었는데 순간 말군의 옆을 누가 스쳐 지나갔음.
말군은 계속해서 화장실로 벽을 더듬으면서 감.
화장실에 도착했을 무렵 말군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떠오름.
말군과 마주쳐서 분명히 스쳐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그 남자
그 남자 몸통을 말군은 보지 못했음.
옆을 스쳐 지나가는 느낌은 있었는데
그 남자는 완전히 어둠 속에 묻혀 있었던 것임.
말군은 볼일을 보면서도 계속 끊임없이 생각함.
이게 뭐지? 뭐지? 왜 내 옆을 지나갔다고 생각한 거지?
그러다 문득 말군은 왜 그 남자가 말군 옆을 스쳐지나갔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기억해 냄.
말군은 그의 손을 봤음.
흰 와이셔츠 밑으로 내려온 흰 손을.
그랬음. 새벽 2시가 넘은 한밤중이었는데
말군을 스쳐 지나간 남자는 검은 색 양복을 입고 있었던 것임.
왜 양복을 입고 있지? 싶다가 말군은 점점 정신이 맑아짐.
생각해 보니 분명 말군이 문을 열고 화장실로 가려고 했을 때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음.
그러다가 복도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그 검은 양복의 남자와 마주친 것임.
말군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음.
화장실에서 나갈 수가 없었음.
하지만 말군은 대한민국의 건아 아니겠음?
그래 차라리 방에 들어가서 아이들과 같이 있는게 낫겠다 싶었던 말군은
방으로 돌아가고자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복도를 바라봄.
복도 끝에 붙어있는 창문으로 달빛이 들어와 바닥으로 부서졌음.
말군은 자기 방 앞에 있는 정수기를 바라봤음.
그 곳에
달빛에 비치는데도 완전히 어둠에 묻힌 그 남자가 있었음.
말군은 오싹 소름이 끼쳤음.
도저히 저 옆을 지나쳐 방으로 들어갈 자신이 없어진 말군은
화장실에 숨어서 그대로 밤을 샘.
이게 말군이 겪었던 그 검은 양복 남자의 첫 번째 이야기임.
처음엔 말군은 그 남자가 검은 양복을 입었다고 주장했지만
우리는 그럴리가 없다고 말군이 어둠 속에서 잘못 본거라고 비웃음.
하지만 그 후 그 남자의 목격담이 이어졌고
취합해 보니 그 남자가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는 말군의 말이 사실이었음.
그리고 말군의 방은 기숙사 3층 12호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