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이 꿈꾸는 신천지
요즘 20%에 가까운 시청률을 보이며 좋은 호평을 받고 있는 드라마 "정도전"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사극을 좋아했던 저도 정도전 애청자 가운데 한명입니다.~
왕조가 바뀌는 격동의 세월속에서 그 변화를 주도했던 인물이지만, 저에게는 고려말의 충신 정몽주와 조선 태조 이성계에 가려져서 정도전은 그다지 잘 알지 못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드라마를 보면서 정도전이라는 인물이 매우 매력적으로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정도전의 삶을 통해서 그가 꿈꿨던 사상과 세계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정도전의 유년 시절
정도전(1342-1398)은 경상도 봉화 지역의 향리출신입니다.
아버지 정운경이 이색의 아버지 이곡과 학우관계였으므로, 자연스럽게 정도전은 이색과 친분을 맺게 되고, 이색의 학문적인 영향력을 많이 받게 됩니다.
또한 이색 문하의 정몽주, 이숭인, 이존오 등과도 막역한 친분을 맺게 되며 특히,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정몽주와 우정은 더욱 더 특별하였다고 합니다.
정도전의 정계 진출
공민왕 11년(1362)에 과거에 급제하여, 충주사록, 전교주부등을 역임하다가 공민왕 15년에 부모님이 연이어 돌아가시게 되어 고향으로 내려가서 부모님 3년상을 치릅니다.
3년상 이후 공민왕은 정도전을 다시 등용하여 공민왕의 유학 육성 및 중앙집권적 관료정치 및 친명 반원 정책등 여러 개혁 정책에 정도전을 참여시킵니다.
그러나, 공민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정도전의 승승장구 인생은 시련의 시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정도전의 유배생활과 신천지를 꿈꾸다
공민왕의 반원정책에 참여했던 정도전은 자연스럽게 반원사상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공민왕의 죽음 이후 고려는 이인임 등의 친원세력이 권력을 갖게 되었으니, 반원파인 정도전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게 됩니다.
결국 원나라 사신의 마중을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전라도 나주 회진으로 유배생활을 가게 됩니다.
이 유배지에서 백성들의 삶을 직접 목격한 정도전은 고려 귀족 및 관료들의 부패를 실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위하는 위민(爲民), 민본(民本)사상을 갖게 되며, 이 사상이 탁상공론이 아닌 실용이 있어야 함을 느끼게 됩니다.
유교, 민본, 실용 사상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되는 시기가 바로 10년간의 유배기간이었으니, 정도전의 인생을 바꾼 시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꿈꾸던 신천지를 실현해 줄 이성계와의 만남
백성들을 위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정도전은 1384(우왕 10년)에 당시 여진족 호발도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함경도에 있었던 동북면도지휘사 이성계를 찾아갑니다.
이때 이성계와 그의 군대를 보면서 이성계야말로 자신이 꿈꾸던 신천지를 실현해 줄것으로 확신하게 됩니다.
정도전의 신천지와 정몽주의 신천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이후 이인임 등의 친원세력이 쫒겨나고, 이성계가 정치 권력의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신진사대부들은 이성계를 등에 업고 여러가지 개혁정책을 펴게 됩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보여준 것처럼 전제개혁에서 그 뜻이 나뉘어지게 됩니다.
정도전과 함께 하는 급진개혁파는 지방 중소 지주 출신으로 귀족들의 부패 척결, 국가 재정 확보 및 민생 안정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권문세족들의 사전을 없애는 전제 개혁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정몽주가 함께 하는 온건개혁파는 권문세족 출신이다 보니, 전제 개혁으로 자신들이 갖고 있던 토지를 모두 국가에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니 당연히 반대하겠죠.
급진개혁파의 개혁은 고려에서는 실현할 수 없기에 실현 가능한 새로운 나라, 조선을 만드는데 앞장서게 됩니다.
그러나, 고려로부터 편안한 생활을 누려 왔던 온건개혁파는 새로운 나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며, 고려 체제내에서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개혁을 주장하게 되니,
이 두 세력은 물과 기름처럼 한 곳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이방원에 의해 정몽주가 죽임을 당한 이후로 온건파는 모두 축출되며, 조선 왕조가 세워지게 됩니다.
정도전, 신천지 조선 왕조를 설계하다
1392년 고려는 멸망하고 이성계가 세운 조선이 등장하니, 이때부터 정도전의 역할은 절대적입니다.
천도 :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에서 한양으로 수도를 옮깁니다.
유교적 이상을 담은 경복궁 및 도성을 설계하며, 경복궁과 한성부의 5부 52방 이름 명명
국가가 인재를 키우는 관학교육, 지방교육 강화
과거 제도 개혁 : 7과 제시하고 능력 위주의 인재 등용
억불정책 : 불교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불교 억압 정책 실시
왕도정치 : 왕권과 신권이 조화를 이루는 왕도정치 추구
조선경국전 편찬 : 조선 최고법전인 [경국대전]의 모태가 됩니다.
정도전의 죽음
조선 건국에 큰 업적을 남긴 정도전과 이방원.
이 둘이 서로 적대적인 관계가 되었으니, 그 원인을 보면,
첫째는 세자 책봉과 관련있습니다.
세자를 책봉할때 정도전은 이성계의 둘째 부인 소생의 어린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첫째 부인의 아들이었던 이방원과 그의 형제들이 정도전을 좋게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1차 왕자의 난의 결정적인 원인이 됩니다.
둘째는 요동 정벌을 주장했던 정도전은 요동정벌을 위해 당시 귀족들이 소유하고 있던 사병을 없애고 국가에 귀속시키고자 하였으니, 이에 불만을 품는 귀족들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결국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새로운 이상 세계를 건설하고자 했던 정도전,
고려 멸망과 조선 건국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정도전,
왕권과 신권이 조화를 이루는 왕도정치를 실현하고자 애썼던 정도전,
진정으로 백성들을 위하고 사랑하며 실천하고자 했던 정도전,
반원 정책, 요동정벌로 알 수 있는 자주의식이 강했던 정도전
이방원의 1차 왕자의 난때 죽임을 당하므로 그가 꿈꿨던 사상들을 실현할 수 없었지만,
이 사상은 16세기 사림파들과 17-18세기 실학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날을 살고 있는 정치, 경제, 각계 각층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사리사욕이 아닌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을 위한 실질적인 정치를 한다면, 이 세상이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 까 생각해봅니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