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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ry Chrismas! and You Will DIE... <5>

류민식 |2003.12.31 23:35
조회 63 |추천 0

"이형아, 정신이 좀드나? 내 알아보겠나?"

 

냄새...

냄새가 난다.

이제 정신이 돌아온것은 알겠고 감각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음을 느끼는 박기자가 처음으로

느끼고있는것은 바로 이 냄새였다.


병원냄새...


그냥 소독약 냄새라고만 말하기에는 형언하기 힘든 복잡미묘한 이 냄새의 불쾌함.

박기자는 그런 냄새속에서 자신의 침대옆에서 방금 말을 꺼낸

한 노신사의 얼굴과 마주보고있었다.

 

"아.. 예. 큰아버지오셨네요. 그런데, 여기 병원맞죠?"


그렇게, 나즈막하게 새어나오는 박기자의 음성을 듣고서 늙은 노신사는 내심 안심하는 모습이다.

언제부터선가 노신사를 큰아버지로, 박기자를 큰아들로 여기는 이들사이에서는 친부자간보다

더욱 깊은 애정의 표시로 호칭부터 바뀌어져있었다.

다음으로 예의 그 노신사의 굵지만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내다. 여긴 병원이고... 정신이 좀 드는가보네.   흠.. 다행이다."


"예... 그러고보니 요즘 강연하신다고 바쁘시다고 들었는데 오셨네요. 저 때문에..."


"허허허. 짜슥... 나이를 헛쳐묵지는 않았구나. 이젠 공손할줄도 알고... 허허허"


조용하던 병실안에서 노신사의 갑작스러운---하지만, 어딘가 어색한--- 너털웃음이 터져나온다.

박기자는 창가로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을 등지고 앉은 그 노신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5년전에 찾아뵜을때만해도 저렇게 늙어보이시지는 않았었는데...

이젠... 아저씨도 나이를 드시는구나.


그런 생각이 미치자, 박기자의 입가에 조금은 죄송하면서 겸연쩍은듯한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노신사는 그런 박기자의 미소의 의미를 읽은양 너무나 자애로운 미소로 답해주고 있었다.

 

"저기... 기형이는......"


서로간의 미소이후로 한참동안이나 침묵만이 흐르던 병실공간을 먼저 깨뜨린건 박기자였다.

박기자의 마음은 어느덧 이미 슬픔을 넘어 동생일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고싶다는 생각으로

채워져가고있었다. 아니, 그렇게해서라도 슬픔을 잊으려고 하는 박기자의 몸부림이었다.

 

"아, 그래... 나도 좀전에 소식듣고 현장을 보고왔다.  흠..."

 

이어질듯하던 말의 끄트머리를 조용히 신음소리로 삼키던 노신사는 안 그래도 굵어진 이마의

주름을 미간사이로 진하게 모으며 잠시 고통에 잠기었다.


아직, 얼굴에는 예전 현역때의 호랑이같은 이목구비가 남아있으신듯한데도 저렇게 뭔가

표현하지 못할 표정을 지을때의 아저씨의 모습이란건...


그렇게 노신사의 가슴저며드는 표정하나하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박기자의 눈가에서는

어느새 다시 뜨거운 무언가가 차오르고 있었다.


"미안하다. 내가 부산에 살면서도 기형이 이사했다는 집에도 한번 못가보고...

내가 조금만 부지런을 떨었어도......"


순간, 언중에 노신사의 말랐지만 큼지막한 두손마디에 힘이 들어가는것을 박기자는 보았다.

그리고, 그런 노신사의 모습에서 박기자는 뭔가 가슴한구석이 휑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 동생... 기형이가 이제 세상에 없다.

어릴때부터 업고 다니다시피 돌봐가며 소중히 키워온 내 자랑스런 동생...


어릴때는 그렇게나 징징거리면서 지겹도록 따라다니더니

카이스트 수석입학하고 나서는 머리 좀 굵어졌다고

가끔 농담삼아 반말로 농짓거리를 할만큼 커져버렸던 녀석...


군대 제대하고나서 작년에 결혼한다고 갑자기 찾아와서는

수줍게 웃으면서 청첩장을 건네던 녀석...


올해초, 아들 득남했다면서 전화를 걸어와서는

아들낳은기쁨보다도 결혼을 아직 안한 나부터 걱정하며 더 챙겨주던 녀석...


그리고, 18년전부터 언제나 이세상에서 내게 하나뿐인 혈육이었던 내 동생, 기형이...


그녀석이... 이젠 없는것이다.

그렇게 착하고 자랑스럽던 동생이 이젠 세상에 없는것이다.

 

"기형이... 시신은 검찰로 넘어갔나요?"


박기자는 잠시동안의 시간속에서 동생의 죽음이 현실임을 다시한번 절감하며 노신사에게 물었다.


"그런가 보더라. 내가 좀전에 보고올때 검찰에 검시과로 넘어간다고 그카더라."


"역시... 그렇게 되는군요......"


그렇게 말을 이어가던 박기자의 음성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노신사는 그런 박기자의 음성이 지난후에도 한참을 말을 잇지못했다.


일찍이 세상을 등진 죽은아들녀석을 대신해서 항상 자신을 챙겨주던 이들 형제들...

그리고, 그런 형제중에서 가장 믿었던 박기자의 초췌한 모습으로 보고있는 지금의 노신사의

가슴은 답답한 고통스러움으로 얼룩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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