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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2014.06.11 03:26
조회 2,488 |추천 14

어려운 말들 쓰지 않고 그냥 솔직하게 쓰는 게 낫겠지. 그럼 무거운 내 마음이 한결 시원해질테니까.

어차피 다들 눈팅하다 자기 이야기인 것 같으면 길어도 읽을 테고, 아니면 패스하고 넘길 테니까.

 

나는 너를 좋아해.

 

너는 나와 많이 닮았어. 외양적으로도 그렇고, 성격의 세세한 부분은 다를 수도 있지만 본질은 어딘가 수줍고 따뜻한 편이라, 너와 나는 잘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왔지만 한 번도 그들 중 누구라도 내 옆에 가족이 되어 사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었는데, 너는 이상하게도 내 머릿속에 상이 맺혔어. 우리가 아빠와 엄마가 되어서 살고 있는, 아주 선명한 상이었는데, 난 평소 예감은 잘 맞는 편이지만 너와 나는 잘 아는 사이도 아니라, 그저 미래를 기다리며 지켜보자 생각했어.

 

시작부터 너에게 마음이 갔던 건 아니고, 내가 너를 눈여겨보게 된 계기가 있는데, 내가 아주 우연히, 네가 칠칠맞게 흘린 다이어리 비스끄레무레한 것을 보고나서야. 난 원래 내 사생활을 침해받는 걸 극도로 혐오해서 다른 이의 프라이버시는 존중하자는 쪽이라, 네 다이어리 딱 세 문장만 보고 바로 덮었어. 섬세한 필체와 여자 글투라 여자 것이라 생각했는데 황당하게도 너의 것이었지. 난 뜻하지 않게 의외의 사실들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부터 네가 좋아졌던 것 같아. 네가 일기 같은 걸 쓴다는 게 신기했어. 난 그냥, 뭐든 글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좋아.

 

서로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탓이라 단순히 어색한 거라 여겼는데, 점점 둘만 아는 이상한 기류, 신호, 행동이랄까, 그런 게 느껴졌고 결정적으로 어느 순간 서로 마음이 있구나를 확신하게 된 적이 있었어. 그런데 나는 네가 아는 것(우리가 안 된다고 생각할 이유)과는 실은 다른 이유로 네게 다가가지 못해. 그건 순전 내 성격적 결함이고, 만약 그게 혹 너를 괴롭게 했거나 피한다 여겨졌다면 미안해.

 

난 네가 알아서 멀어질 거라 생각했고, 6월이 되니 정말 그렇게 됐고 가슴은 아프지만 받아들이기로 했어. 난 원래 누군가 내 곁에서 멀어져가는 것에 익숙해. 그걸 단지 지켜볼 뿐이야.

 

그런데 오늘 아니, 어제겠구나. 너가 완전히 나를 정리하려 한다는 걸 알았어. 너는 화가 나면 차가워지는 게 아니라 과하게 활발해지는구나. 심술기를 머금은, 어딘가 냉소적인, 과한 활달함이 내 마음을 어둡게 했어. 내가 도대체 뭘 잘못한 걸까... 집에 오는 동안 곰곰 생각해봤지만 너가 화가 났다는 것 외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어.

 

나는 세상에서 화 내는 사람이 가장 무서워. 내 자체가 화를 잘 못내는 사람이라 그렇겠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화가 난 사람 앞에서는 절망적인 기분이 들어 숨고만 싶어. 이 새벽이 그래. 그렇지만 내가 느끼는 무서움보다도, 네가 화가 났을 이유에 대해 무엇인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미안함을 느껴.

 

아마 앞으로는 어제보다 더 심하게, 너가 내게서 완전히 멀어져가는 것을 나는 그저 지켜봐야겠지. 나는 수동적인 사람이라, 네가 다가오지 않는 한, 우리 사이의 거리는 좁혀질 리 없을 거야. 그리고 난 네가 내게 무리해 다가오는 것도 원하지 않아. 내가 보기에, 너도 수동적인 사람인 것 같으니까. 그냥 네가 멀어지기로 작정했다면, 네 뜻대로 해. 그건 네 자유고, 난 너를 많이 아끼니까 네가 그러기로 했다면 네 뜻을 존중하고 싶어. 널 덜 사랑해서도 아니고, 내가 무심해서도 아니야. 넌 속 깊고 생각이 깊은 애니까, 내가 하는 말이 뭔지 잘 알 거야.

 

나는 가슴은 아프겠지만, 너가 접는다면 너보다는 좀 천천히 접을까 해. 사람 마음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가끔씩, 너랑 내가 엄마, 아빠되어 살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웃곤 했는데... 이젠 그 행복함도 추억으로만 간직해야겠네. 난 네 '말없음'이 정말 좋았어. 소란스러운 소음들 속에서 기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늘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네 모습도 좋았지. 어제의 과한 행동보다는 네 평소 모습이 훨 네게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왜 인간은, 웃으면서, 항상 좋은 쪽을 향해 나아갈 순 없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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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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