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마땅히 털어놓을 곳도, 부모님께 전화 할 용기도 없어 이 곳에 글을 씁니다. 조금 길거예요.
저는 22살 휴학생입니다.
제가 가진 첫 기억 속 부모님은 티격태격 하긴 하셨지만 참 좋은분이십니다.
운전을하며 엄마가좋아 아빠가좋아? 익살스러운 질문을 하곤 했습니다.
내인생의 두번째 기억 속 부모님은 늘 떨어져 계셨습니다.
아빠는 밤이 늦어서야 집에 들어왔고, 나중엔 다른지역으로 가게를 오픈하셨습니다.
이후 이사를 갔지만 가게가 바빴던 탓인지, 엄마도 아빠가게를 도왔고,
아침에 자고있는 엄마를 보는것 이외에는 일주일에 한번 얼굴 제대로 보기도 힘들었습니다.
매일 등,하교길. 집은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아빠가 있는날은 하루종일 잠을 잤지요.
엄마가 있는날은 청소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주 할머니가 돌봐주셨어요.
그렇게 일년, 할머니가 급작스럽게 돌아가시고 모든게 틀어졌습니다.
아빠는 모든것에 손을 놓았고, 신경질적이였습니다. 엄마는 보험회사를 혼자 1년여 가량 다니다가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제 손을 잡고
"엄마는 더이상 이렇게 못살겠다. 그래서 가려고한다. 이해해줄수 있지?" 하고 얘기했고,
저는 동생들과 아빠가 잘때 얼른가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엄마가 갔어요.
엄마없이 1년을 할아버지와 아빠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 졸업을 2달여 가량 앞둔날,
아빠가 동생둘과 날 앉혀놓고 피자와 치킨을 시킨뒤 얘기했어요.
"아빠 왠 치킨이야?"
"너희는 이제 엄마랑 살거야. 아빠랑 먹는 마지막 음식이야. 이제 아빠랑 보지말자."
그렇게 버려지듯이 짐만 잔뜩 싸서, 고모가 엄마집까지 데려다 줬어요.
보증금500만원에 월세30만원. 화장실도 없는. 그런 집이였어요.
중학교 3학년 여름까지 아빠는 연락한번도, 소식한통도 없었지요.
그 사이 전 많이 삐뚤어 졌습니다.
학교에서 부모님 참관수업이 있다는 날이면 학교를 빠지고, 선생님에게 대들기 일수였죠.
부끄러웠어요. 아빠가 없다는 사실도, 기초수급자라는 것도. 그냥 다 싫었습니다.
그런데 중3. 아빠가 찾아왔습니다. 찾아와서 20만원이나 주고, 핸드폰도 사주고, 옷도 사줬어요.
엄마한테 자랑을했죠. 그리고 또 한번 아빠가 찾아왔습니다. 낯익은 여자와 함께.
오래전 아빠가게에서 일하던 언니였어요. 그날도 선물을 이따금 받고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그날 새벽, 전화소리가 들렸어요.
"나 얘네 못키워. 돈도없고 이제 나도 죽겠으니까 니네가 키워라. 뭐? 못키워? 그게지금 니가 할말이가? 그럼 니가 알아서해라. 난 얘네 내일 고아원에 맡길테니가 니가 알아서 찾아가던지 말던지."
참 많이 울었습니다. 내 자신이 얼룩 같더군요. 지우기 곤란한 얼룩.
그렇게 몇주 후 저는 전학을 가게 됐어요. 이번에도 중3 졸업을 몇달 앞두고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학후 적응을 잘 못했습니다.
삐딱한 친구들과 어울리다 틀어지기 일수였고, 졸업 끝까지 삐그덕 거렸죠.
중학교 졸업 전까지 가출시도만 몇번인지 셀수가 없습니다.
아빠는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나 봅니다.
그럴때 마다 쏟아졌던 새엄마의 수근거리는 소리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15살 차이가 나는 새엄마 앞에서, 피붙이인 딸의 목을 조른 아빠.
차라리 죽으라며 있는 힘껏 내 목을 조이던 아빠의 표정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진학후, 또 가출을 했습니다. 꽤 오래했던 것 같네요. 1년정도.
18살에 집을 들어갔으니 말입니다. 학교가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 절 위해 아빠는 이곳저곳 학교를 알아보셨죠. 그러곤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주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참 고맙습니다.
미국에서 4개월가량 공부를했어요. 근데 보호자로 등록된분이 참 힘들었어요.
심각하게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자해까지 할 정도 였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참 서러웠습니다. 절 보며 씁쓸하게 웃는 가족. 그거 하나 못버티냐고 얘기하는 사람들.
내가 떠날때와 많이 달라져버린 환경, 생활습관.
그렇게 검정고시를 따고, 대학원서를 썼습니다. 21살에 대학을 들어갔네요. 대학을 다니길 6개월.
또 휴학을 했어요. 살면서 포기한게 대체 몇개인지 셀수가 없습니다.
모든일을 쉽게 포기했어요. 뭐 하나가 틀어지면 부딫혀 풀어야 하는데, 시도조차 해보지않고
늘 도망치기 바빴던 것 같습니다. 무서웠어요.
새엄마의 비꼼도, 아빠의 침묵도, 친척들의 눈초리도 다 겁이 났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말했어요. 넌 언제적 상처를 지금까지 안고 살아가는거냐고, 제가 이상한것 같았습니다.
그렇서 이제 내 힘으로 내가 원하는과. 원하는 대학을 가겠다. 하고 본 작년 대입시험.
보기좋게 낙제.
그리곤 집을 들렀더니 새엄마가 한소리 하네요.
" 니는 말도없이 왜와?"
"오면 안돼요?"
"내집인데 니가 왜 오냐고."
마음 같아선, 그쪽이 볼땐 내가 한심하지, 왜 그러고 사나 싶지. 이게 누구때문인데. 반은 너때문이야. 하고 얘기하고 싶은데 막상 저런말을 들으면 숨이 턱 막혀 아무말도 못합니다.
그날 저녁, 아빠가 얘기 좀 하자고 방으로 부릅니다.
"00아, 니도이제 옛날일은 신경 쓸 나이 아니잖아."
"응"
"정신 좀 차리자."
"응"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
옛날일은 신경 쓸 나이가 아니라니요. 한달이 지나도 일년이 지나도 아픈건 늘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무신경하게 말할수가 있어요. 또 두려움에 말문이 꽉 막힙니다.
그리고 몇일전 안좋은 사고가 났었어요.
그 사건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모든사건이 해결된 후 저는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 내가 이제 죽을건데. 내가 소주를 참 좋아하니까 마지막으로 소주를 한병 사야겠다.
소주한병과 번개탄을 사서 들어왔습니다.
한병을 먹었는데도 정신이 멀쩡하더군요. 그래서 소주 한병을 더 샀고,
죽기전에 우리엄마 목소리 한번이라도 들어보자 싶어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에게 날 대체 왜 낳은거냐고 물었습니다. 엄마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어요.
전화를 끊고 엉엉 울었습니다.
정말 죽고 싶었어요.
내가 죽어서, 내가 아프고 고통받았던거 그 이상으로 아빠가, 새엄마가. 친척들이.
두고두고 고통 받았으면 좋겠다. 평생 가슴 아파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죽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사실 아직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조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