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너를 만났을때는 마냥 품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덥수룩한 머리카락 속에 묻힌 멍한 눈이 웃는 걸 보고 싶었고 생기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애정을 가득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내가 곁에서 애정을 주고 품어준다면 기운을 찾고 더 활기차게 삶을 살아갈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정말 잘못된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모른 채 멍청한 나는 그렇게 하다 보면 네가 언젠가는 기운을 차려 다른 여자를 만나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그렇게 살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너 역시 네게 잘해주는 내가 싫지 않았겠지.자기한테 잘해주는데 싫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너는 얼마 있지 않아 내가 사는 곳 근처로 이사까지 오게 됐고 우리는 매일같이 만났다.그리고 내 감정은 자연히 사랑으로 변해버렸다.
너는 점점 더 내 삶에 조금씩 스며들어 왔고 나 역시 그걸 밀어내지 않았다.하지만 나는 너의 모든 만족을 채워주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사람이었고 나를 은인이라 말하던 너는 점점 네가 원하는 것을 채워 줄 수 있는 사람을 갈구하기 시작했다.내 삶에 너는 이미 너무 많이 스며들어왔고 내 감정은 사랑으로 변해버린지 오래였는데...
그 징후들을 곳곳에서 포착한 나는 네가 편안하게 떠나길 바라는 마음에 이별을 이야기했고 너는 나를 붙잡았다.나한테 너무 많은 상처를 준 것 같다고,아직도 나와 해보고 싶은게 많다고,나와 함께 있는게 좋다고...
그렇게 우리는 다시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고 매일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하지만 너는 모르겠지.
헤어짐을 생각하고 혼자 눈물 훔치던 나는 아직도 내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있다는 걸.너와 다시 예전같이 웃고 떠들고 네 뺨에 입맞춤을 하면서도 예전같은 마음이 아니라는 걸.
너를 향한 내 사랑이 반으로 찢겨진 것만 같은 기분이다.예전에는 매일매일 십수번을 말해도 아깝지 않던 사랑한다는 말, 좋아한다는 말이 이제는 입밖으로 채 나오지를 않는다.네가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내 마음은 조금씩 무너져간다.어제는 네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그 속뜻이 사랑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웠었다-라는 말인걸 너는 알까?조금씩 혼자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내 마음이 나조차도 어떻게 안된다.영화 '연애의 온도'에서 김민희와 이민기가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장면.미치도록 아렸던 그 장면이 지금 너와 나 사이에도 마찬가지로 펼쳐지는 것 같다.
그때 나를 잡았던 건 네가 더 편하게 이별하기 위해서였니?당장 헤어지면 너무 힘들어할 나를 알아서 유예기간을 준 거니?네가 아니라고 해도 이미 내 마음속에서는 지금 이 순간을 유예기간이라고 느낀다.
조금씩 조금씩 헤어지고 나서도 덜 아프게 마음을 정리하는 유예기간...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헤어지는 순간보다 더 아픈 순간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