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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테레즈 라캥 : 부산영화제와 에밀 졸라

박민진 |2014.08.15 17:46
조회 31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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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부천국제영화제를 다녀왔다. 뜨거운 여름날에 땀을 뻘뻘 흘리며 셔틀버스를 타고 도시의 영화관들을 기웃거리는 일은 근사한 행위다. 그것이 영화제의 참맛이자 부천영화제가 가진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더 재밌는 점은 부천사람들은 축제에 거의 동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천인들은 영화제를 즐기러 온 나 같은 타지인들을 쳐다만 볼 뿐 우리가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찜질방에 투숙하며 영화제를 즐기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저 당일 개봉한 군도를 예매해 하정우의 구릿빛 피부를 즐기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확신이 있는 모양이다.



부천국제영화제(Pifan)는 여름에 하는 영화제답게 호러, 좀비, 신체절단, 섹스, 광기가 범람하는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피판이 자랑하는 부천초이스 영화들에 거의 대부분 동의하지 못한다. 그저 영화제가 가진 도시의 분위기가 맘에 들어 매년 부천을 찾고 있다. 영화관을 나와 부천 시내를 걷고 있으면 진정 자유로운 느낌이 든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이 잔뜩 들어 영화제를 떠나게 된다. 영화가 좀 더 좋았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부천영화제가 좀 더 부흥하려면 부산영화제와 같이 이름 있는 감독들의 신작을 볼 수 있는 기회와 대중성을 좀 더 가미한 메이저 작품들을 영화에 껴 넣을 필요가 있다. 물론, 알려지지 않은 각국의 젊은 감독들의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을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고, 더 큰 영화제가 되기 위해서는 작품의 선정에서 멀리서 온 관객들이 굳이 이 여름날 시간을 투자할 명분을 주는 작업에 골몰할 필요가 있다는 개인적인 바람이다. 야 이번 Pifan 2014엔 코엔 형제의 신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던데! 혹은 영화제 GV에 일본 영화감독 아오야마 신지가 온다더라! 이런 이벤트가 부천영화제는 너무 적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나와 부천영화제를 동행한 여자 친구는 <원 컷 : 어느 친절한 살인자의 기록>을 관람한 후 다시는 부천영화제를 찾지 않을 것처럼 낙담한 듯 보였다.


여름휴가와 영화제를 연이어 다녀온 후 다음 날 출근하니 무척 피곤했다. 저녁에 퇴근하고 광화문 교보문고에 책 하나를 사러 갔는데, 한산한 분위기로 날 맞아주는 에어컨 바람이 바로 여기가 내게 적합한 피서지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멀리 떠나고 온 후의 노곤한 몸 상태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촉매가 되고 있는 아이러니함을 느끼게 한다.



서점에 들어섰더니 최근 개봉한 영화 <테레즈 라캥 (In Secret, 2013)>의 원작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몇 년 전 박쥐를 보고 읽고는 어디다 책을 뒀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새로 살 수는 없고 이 기회에 서점에서 다 읽어버리기로 한 것이다. 보통 영화가 개봉하면 소설도 덩달아 재판되어 가격을 높여 파는데 왜인지 테레즈 라켕은 서점 가판대에 진열조차 되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서비스 창구의 직원에게 <테레즈 라캥>을 찾는다고 말하자 여자는 어떤 분야의 책이냐고 되묻더라. 예? 라고 말하자 여직원은 어느 분야냐 되물었다. 늦게 알아 첸 나는 아 소설입니다. 작가는 에밀 졸라구요. 속으로 아니 무슨 서점직원이 테레즈 라캥을 모를 수 있지 생각했지만, 서점 직원이라고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 역시 편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요즘 세상에 누가 문학을 읽겠어. 나 같은 녀석조차 문학에 쓸 돈이 아까워 서점에서 죽치고 읽고 있는데.


 

서점에서 책을 읽다가 나와서 근처 돈부리 집에서 연어덮밥을 시켜놓고 한가롭게 저녁식사를 했다. 그러면서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이 있었으니, 어떻게 작가 에밀 졸라는 부실한 남성력을 지닌 남편 카미유 곁에서 욕망하는 테레즈라는 여성을 그릴 생각을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당시 1860년대 파리 퐁네프에서 에밀 졸라는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기에 이런 소설의 영감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작가 에밀 졸라는 최초의 자연주의문학을 탄생시킨 작가로 후대에 평가받고 있는데, 그에게 욕망하는 테레즈의 잔인함과 처절한 성욕은 자연 일부분의 한 모습으로 보인 모양이다. 그에겐 부천영화제를 가서 좀비와 살육을 볼 기회도 없고, 뜨거운 여름날 책방에 가서 문학을 볼 수도 없었을 텐데 도대체 어떤 힘으로 이런 이야기를 써냈을까. 그리고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회자되는 이 병리학 보고서를 어떤 상태로 집필했을지 상상력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저녁식사를 하며 소설을 구상하는 청년 에밀 졸라와 그가 떠올리는 옆 집 테레즈의 섹시한 입술을 나 역시 상상한다.


영화 테레즈 라캥은 자연주의라는 미명아래 이후 벌어지는 살인, 육욕, 신경과 피의 지배로 가득 찬 작가의 보고서가 좀비와 호러영화가 범람하는 부천영화제의 영화들보다 훨씬 더 여름날 밤에 어울린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여름날의 문학은 어떤 측면에서든지 흥미로울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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