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0대 중반을 넘어가는 한 처자입니다.
저에게는 만난지 3년이 되어가는 8살 연상의 남자친구가 있어요.
저한테 나쁘게 하는건 아닌데 요즘 마음이 많이 답답해서... 처음으로 여기에 글을 올려봅니다.
푸념을 늘어놓게 될 것 같은데... 혼자 넋두리하는구나 하고 봐주세요.
처음에 잘생긴 외모에 제가 반해서 번호를 물어봤고, 연락하다가 만나게 되었어요.
키도 크고 건장한 체형에 날카롭지만 굵직하게 생긴 외모가 너무 멋있어보였죠.
순식간에 빠져버렸고 정말 좋아했어요.
남자친구가 여기저기 이동하는 직업이라 쉽게 만나기 어려웠지만
처음엔 제가 학생이었기 때문에 공강날마다 왕복 3시간 4시간이 걸려도
얼굴이라도 잠깐 보겠다고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만나러 다녔어요.
참 성격이... 정말 말이 없고, 누구와 교류하기보단 혼자있는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카페에서 둘이 앉아있으면 남자친구는 원래 말이 없으니 별 말 없이 앉아있고
그냥 쳐다보고 핸드폰 하고 가끔 툭툭 장난치고 그러다가 일어나요.
재미있게 대화를 하고 싶어도 공통 주제도 없고, 제가 뭐라 말을 해도 돌아오는 대답이
단답식이거나 얘기를 이어가기 어렵게 만드는 재주가 있죠.
마주 앉아서 몇 마디 해보지도 않고 일어나서 헤어진 적도 많아요. 정말 얼굴만 보는거에요.
그땐 그래도 마냥 좋고 설레어서 정말 열심히 만났어요.
그런데 만나면서 저까지 말수가 줄어드는걸 느껴요.
저도 평범한 여자거든요. 남자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들하고 있으면 몇 시간이든 자리에 앉아서 계속 수다 떨 수 있는.
그런데 꼭 남자친구하고만 있으면 3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같이 있을 때 할 말이 없답니다.
그나마 카톡이 대화의 장이지만 그마저도 절반이 이모티콘...
말없는 것 때문에 가장 싫은건... 제가 뭘 물어봤을 때 가끔 쳐다만 보고 대답을 안하기도 하고,
말하지 않아도 제가 자기 생각이나 마음을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하는거에요.
얼마전엔 서울역에서 헤어지는데, 원래 서울역에서 헤어지면 그냥 위쪽에서 헤어지거든요.
제가 공항철도를 타고 가야해서 지하7층까지 내려가는게 너무 오래걸려서요.
안녕 잘가하고 헤어졌는데 갑자기 말 없이 저랑 같이 엘레베이터를 타는거에요.
그래서 "오빠 왜 내려가? 환승 찍고 다른데 갈데있어?" 물어보니 묵묵무답...
다시 "오빠 왜 내려가냐구" 물어봐도 정말 쳐다만 보는거에요.
엘레베이터 안에 사람도 많았는데 저만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순간 너무 울컥해서 "오빠 사람이 물어보면 대답 좀 해주면 안돼?" 라고 다시 말해도 쳐다만 보고 대답을 안해요...
그냥 저 카드찍고 들어가는 거까지 보고 가려고 내려간거였던 거에요.
내려서 하는 말이 "너 데려다 주러 온거잖아 멍청아."
원래 저한테 말을 약간 이렇게 해요. 멍청아. 몬난아. 친하다고 느껴져서 장난치는거래요.
"밥챙겨먹어 몬난아." "이렇게 했어야지 멍청아." 이런식으로요. 이것도 사실 너무 싫어요.
싫다고 말했었는데도 친해서 부르는 말인데 이해 못하냐는 식으로 싸운적 있어서 포기했어요.
조금 더 데려다주는거 좋은거잖아요... 그런데 전철타고 가면서 자꾸 울컥울컥 눈물이 나더라구요.
이렇게 말 안하는 사람하고 어떻게 지금까지 만났나 싶지만, 눈을 보면 서로 좋아하는건 느껴졌거든요.
큰 이벤트를 해주는 사람은 아니지만, 소소하게 필요한 걸 잘 챙겨주고 덜렁거리는 저랑 달리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이 든든했죠.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많이 좋아할 수 있구나 라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로 좋아했어요.
그런데 이제 좀 지치네요.
오빠는 결혼 생각이 없다고 말해요. 준비되지 않아서 결혼 할 수 없기 때문에
결혼하고싶다고 말하는건 거짓말이나 마찬가지라서 그렇게 말할 수 없데요.
물론 저도 당장 결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몇년은 열심히 벌어야 할까 말까 해요.
그래도 만나는 동안은 말이라도 나중에 어떻게하면 좋겠다 라는 식으로 대화 할 수도 있잖아요.
앞일은 당연히 모르지만 그러면서 연인관계가 즐겁게 이어질 수 있는거 아닌가요?
그런데 전혀. 장난인지 진심인지 모르겠는데 결혼은 다른 사람하고 하라고 해요.
처음엔 저도 어리니까 그렇게 말해도 많이 섭섭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만난지 이제 3년이고, 헤어지지 않는다면 시간은 이렇게 흐를테고,
제 꽃 같은 나이도 져갈텐데 아직도 저렇게 말하는 사람을 보고 내가 지금 뭐하는거지 싶네요.
꽃 같은 나이라고 쓰다보니 생각난건데
3년동안 저한테 꽃 한번 사준 적도 없네요. 화분은 사준 적 한 번 있네요.
꽃 한송이 한번만 사줘보면 안되냐고 몇 번 말했었는데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도
남자는 그런거 사는거 아니라고 말하지 말래요.
이제 저도 마음 접었어요.
그러니 저도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거고...
실컷 푸념하고 털어버리고 정리하고 싶어요.
서울역에서 저렇게 헤어진 뒤로 2주 정도 지났는데 일부러 만나지도 않았어요.
저는 인천인데 항상 제가 만나러 서울쪽으로 올라갔거든요.
나만 만나러 쫓아다니는 것도 속상하고...
연락도 줄였구요. 카톡이 와도 제가 단답으로 대답하고 있죠.
그랬더니 제가 일하는 곳으로 갑자기 찾아와서 커피만 한 잔 사주고 별 말 없이 금방 가버렸어요.
아마 분위기가 이상하니까 제 기분 풀어주고 싶어서 찾아온 걸 꺼에요.
얼굴 보면 제가 금방 풀고 얘기하고 애교떨고 장난처럼 풀어질 줄 알았나봐요.
그런데 안그랬죠.
이게 며칠 전이고 오늘은 서로 카톡도 전화도 하지 않았네요.
정말... 저한테 나쁘게 하는건 없어요. 저 좋아해주는거 알고 있고. 보면 저도 좋구요.
그런데 저 지칠 수도 있는거 맞죠?
크게 나쁜 점들은 없었지만 뭔가 답답함이 조금씩 조금씩 크게 느껴져요.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저만 생각하고 나머지 20대를 더 즐겁고 보내고 싶고
쉬는날마다 오빠만 만나느라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도 보고싶어요.
즐거운 대화도 많이하고 싶고 사람 사는 이야기도 많이 듣고 싶어요.
혹시 나중에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면 대화도 잘통하고 즐거운 얘기도 나눌 수 있고
서로 힘든 점에 피드백 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헤어지자고 하면 그 사람 혼자 남아서 어쩌지 하는 걱정도 되고
나는 괜찮을까하고 저도 걱정이 되요.
저처럼 이렇게 그냥 지쳐서 헤어지고 싶어졌던 분들 있으세요?
차라리 그 사람이 너무 밉고 싸워서 헤어지고자 하는거면 좋을텐데
이런 이별은 이별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도 힘들어지게 하네요.
머리로는 생각하는데 마음이 준비가 덜 됬어요.
저랑 비슷했던 분들 있으세요? 어떻게 지나가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