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빛이자, 모두의 별이었던 그 사람
S
|2014.09.14 20:15
조회 1,801 |추천 3
지루한 주말.
턱 괴고 인터넷 게시물이나 뒤적이던 중에 문구가 눈에 띈다.
'내 엑스를 소개합니다'.. '잊을 수 없는' 엑스 이야기를 판춘문예에 남겨주세요.
오래 기억 속에 숨겨 놓았던 그 사람이 떠올랐다.
나의 소중한 빛이자, 모두의 별이었던 사람.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었던 '엑스'.
그는 유명한 아이돌 그룹의 멤버였다.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었다.
그를 얼마나 사랑했고, 얼마나 아팠는지를.
그와 함께 했던 나의 십대가 얼마나 찬란했고, 얼마나 설렜는지를.
10여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많은 것이 변했다.
그는 더 이상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으로 무대에 서지 않는다.
하얗게 빛나던 장난스런 웃음대신 성숙함이 물씬 배어나고,
이제는 그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연호하던 어린 소녀들의 풍선과 목소리도 없다.
오래전 그 때 나는 늘 설렜지만 늘 두려웠고 조마조마했다.
그와 나의 행복이 수많은 사람들의 불행이 될 것임을 알았기에.
그와 나의 비밀로 인해, 우리가 감당해야할 수많은 것들의 무게를 알았기 때문에.
말 한 마디도 조심스러웠던 그 시절,
내가 누군가에게 그와 만난다고 했다면 비웃음을 당했을 것이다.
아이돌에 빠져 정신 못차리는 소녀팬 쯤이 되었거나,
혹시 모른다는 수많은 의심의 눈초리에 베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그와 나의 나이도 거리도 달라졌기에.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겠지만,
너무 소중했던 그날들을 되돌려 보고자 한다.
나의 빛이자, 모두의 별이었던
잊을 수 없는 엑스,
당신을 기억하기 위해서.
*
오래 묵혀두었던 기억을 더듬어,
그 해 겨울로 돌아가야할 것 같다.
나는 연예인이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평범한(평범한건가?) 여학생에 불과했고,
당시 유행하던 '인터넷소설'의 흔한 레파토리처럼,
친한 친구의 삼촌이 일한다는 연예기획사에 끌려갈 적에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니, 솔직히 귀찮다는 생각뿐이었다.
'오빠들 보러간다'며 방방 뛰는 친구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고서
친구의 사랑이 듬뿍 담긴 온갖 욕지거리와
'너는 전국에 있는 수백만 팬이 원하는 기회를 내 덕에 얻은거니 영광으로 알라!'는
귀청 찢어지도록 우렁찬 핀잔을 듣고서도 그랬다.
그들이 유명한 아이돌 그룹이라는 것과 수많은 소녀팬을 거느리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내게 특별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오히려 명문대 진학에 목 매는 모범생에 불과했고,
그런 내게 그들의 멋진 외모도 노래도 춤도 별것이 아니었다.
연예계에서도 주목받는 아이돌임에도 너무도 평범하고 털털해보이는,
가끔 TV에서 보이는 모습에 호감이 가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방과 후에 100%의 타의로 '오빠들 사무실'로 끌려갈 때까지만 해도
그 날이 나의 십대를 송두리째 흔들 운명의 날이 되리라고는 눈꼽만큼도 생각하지 못했다.
"야야야야! 여기서 기다려봐. 삼촌한테 전화 좀 해보게!"
그러거나말거나. 책가방을 매고 서서 건물을 올려다보면서, 생각보다 '후진' 건물이 놀라웠다.
잘 나가는 아이돌이라면서, 뭐 이런 건물에 사무실이 있어?
그 사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친구녀석에 당황스러웠지만, 곧 돌아오겠거니 했다.
그런데.. 날이 너무 추웠다. 온 얼굴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밖에서 동사하느니 안에 들어가있자는 생각으로 건물로 들어섰다.
입구도 춥기는 마찬가지라, 별 생각없이 계단을 따라 올라가던 와중이었다.
웬 잘생긴 남자가 계단을 따라 내려오다 나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여기... 들어오시면 안되는데...."
예상치 못했던 말에 나는 순간 당황했다.
"아...."
"아, 혹시 새로 연습하시는 분이세요?"
그가 다시 물었다.
"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정신을 차린 내가 다시 대답했다.
"아, 아니요. 죄송합니다. 내려갈게요."
남의 건물에 무단침입한 사람이 된듯한 느낌에 부끄럽고, 당황스러웠다.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가려는 찰나, 신난듯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뭐해?????????? 빨리와!!!!!!!!!!! 김 실장님이 떡볶이 사오신대!!!!!!!!!!!!!!!!"
그리고 쿵쾅대는 소리가 들리고,
또 커다란 남정네 한 명이 계단을 뛰어내려와
내게 질문을 던졌던 남자의 등에 찰싹, 매달렸다.
본의 아니게 그 광경을 '멍 때리고' 지켜보던 나는,
방실방실 웃다 마침내 내게로 향한 그의 시선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가 조금 당황한 듯 물었다.
"어... 안녕하세요......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