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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기 싫다

미도리 |2004.01.04 00:06
조회 315 |추천 0

남친과 나는 둘다 서른을 넘긴 적지 않은 나이다.

소위 말하는 학벌, 직업, 집안 ... 조건 면에서 남친이 나보다 많이 기운다며 그동안 주변 사람들이 많이 말렸었다.

그런 조건이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와 무관하지 않은 우리 집안의 극심한 반대, 그리고 남친의 회의감 등 감정적인 변화, 또는 나의 변심 등... 그런 것들을 이유로 4년을 만나오면서 몇 차례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했었고... 결국 결혼을 결심한지 두달 지났다.

이 사람이라면 적어도 나를 속이지는 않겠구나... 가진 건 없지만 믿고 살아볼만 하겠다, 착하다는 이유때문에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 솔직히 결혼하기 싫어졌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첫째로, 나와 헤어진 이후에 있었던 일이었다지만, 대학 동창 이혼녀와 잠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너무 불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술김이었다지만 납득이 안 간다. 평소 아무런 이성적 감정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 아닐까?

차라리 술김에 술집 여자랑 잤다면 신경 안쓰겠다.

그 후에도 그 뻔뻔한 여자는 가끔 안부를 묻는답시고 전화를 거는 모양이다.

남친은 애딸린 이혼녀니 얼마나 외롭겠냐며 그저 그런 이유때문일거라 그런다.

그 여자 지금은 또다른 남자 동창(노총각)이랑 사귀는 중이라는 얘기도 했다.

자긴 전화도 안 하고 동창 모임에도 일부러 안 나간다지만 그거야 내가 확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차후의 문제때문이 아니라 내 상식선에서는 술김에 동창이랑 잔다는건 생각할 수 없는 거다.

그러고나서 어떻게 그 얼굴을 보냐? 그리고 술을 아무리 마셨어도 그렇지, 알던 친구랑 하고싶은 맘이 드냐? 그 자체가 불결하다는 거다.

 

두번째 이유는 남친의 쪼잔함때문이다.

얼마전 남친과 카레를 만들어 먹자며 근처 할인점에 장을 보러 간 일이 있었다.

필요한 재료를 카트에 넣다가 그 전에  남친이 떨어뜨리는 바람에 깨먹어서 사용할 수 없게 된 헤어무스 생각이 나길래 그걸 샀다. 그러다 머리가 최근에 많이 상한것 같아서 리퀴드 에센스도 하나 샀다.

두개 합해서 만원이 조금 넘는 액수였다. 그런데 남친의 표정이 별로 안 좋았다. (내가 민감한 거라면 할 말 없지만 느꼈으니 느꼈달수밖에)

왜 그러는지 처음엔 몰랐다. 운전하고 오느라 피곤했나? 남자들은 여자들이 물건 고르느라 시간 걸리면 안 좋아한다지? 하는 단순한 생각만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계산을 하러 갔을때, 남친 내 뒤로 서더니, 잔뜩 상기된 얼굴로 내가 2만원 줄게. 이러고 있다.

순간 자존심 팍 상했다. 속된 말로 야마돌았다.

참고로 계산서는 3만원을 조금 넘었다.

즉, 자기가 다 내주기는 뭣하고, 니 머리에 바를거는 니가 내라. 이 말이 아니냔 말이다.

지 잘나 빠진 친구들이랑 해롱거리고 술마실땐 몇 만원도 턱턱 쓸텐데, 고작 결혼하자고 그렇게 매달리던 여자 머리에 쓰는 만 원이 아깝단 말인가 싶은게... 정말 이런 쪼잔한 인간이랑 결혼해야하나 내가 미친년이지...싶은 생각때문에 결국 그 날 카레 만들어 먹는건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또 참고로, 남친 모아둔 돈 별로 없기때문에 결혼 후 신접살림 차릴 아파트 전세 얻는데 내 원룸 뺀돈 3천 보태기로 했다. 게다가 시부모님도 형편이 안 좋으시므로, 혼수는 전혀 없을 것이고, 결혼식 비용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즉, 결혼식 비용부터 아파트 전세까지 딱 반을 내 돈으로 하기로 하였다.

이런 모든 걸 감수하고 결혼 결심한 나로서는 결혼 결심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세번째 이유, 시부모님께서 결혼에 전혀 보탬이 못 주실 형편인지라, 난 자연히 나에게 거는 시부모로서 자식이나 며느리에게 거는 기대도 어느정도 접으시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솔직히, 이건 시부모님이나 남친을 탓할 문제가 전혀 아닐 수도 있다. 이건 확실히 하겠다.

어쨌든, 나는 음식 만드는 것에 별로 취미나 흥미가 없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잘 먹을 줄은 아나 그렇다고 음식에 그렇게 치중하는 축이 아니다.

즉, 가끔의 별미는 환영이지만, 평소에는 그저 허기나 때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산다는 거다.

그런데, 미래 시댁은 (세번 방문했는데) 음식을 말 그대로 "제대로" 해 잡수려고 한다.

특히 미래 시부의 음식 타박이 장난 아니다.

음식 세번 모두 장난 아니게 정성들인 진수성찬이었고, 맛도 좋았는데, 번번이 이건 너무 짜네, 이건 고춧가루가 안 들어갔네, 이번엔 왜 이렇게 했냐? 등등... ㅡㅡ;

나때문에 특별히 차린 거라고 하시긴 하시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세번 모두 반찬이 열가지 이상이었다.

난 1식 3찬이면 족하다는 주읜데. ㅡㅡ;

가끔 남친이 음식점 가서 먹을만한 음식인데도 뭐가 어떻네, 저떻네 할때 그 조짐을 알아 봤어야 했는데... 심히 앞날이 걱정되는 부분이다.

게다가 직업상 휴가가 긴 나에게 은근히 압력을 가한다. 모레가 제산데 어쩌구 하는 말을 몇 번씩이나 하셨다. (남친은 나에게 민감하다고 한다. 그냥 두분이 나누시는 대화라고.)

그런데 나한테는 솔직히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두분이 나누시는 제사 얘기 우리랑 상관없는데 왜 그렇게 자꾸 말씀하시냐?

또 휴가가 기니까 구정에 와서 대가족 먹을 만두도 시모랑 같이 빚으면 되겠다고 농담 반, 진담 반 그러신다.  

휴가는 말 그대로 휴가다. 저야 놀든, 쉬든, 그릇을 깨든.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그런 간섭 내지는 압력까지 받고 싶지 않다.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다. 난 시댁에 그렇게 자주 가고 싶은 생각 없다.

아직까지 우리 집에서 냉대받는 남친은 나더러 배부른 소리란다. 자기는 자주 오라시면 정말 자주 찾아뵙고 싶은 심정이라고.

난 왜 그런 생각이 안 드는 걸까? 내 인격이 문제라고 한다면 할말 없다. 하지만, 어쨌든 싫은건 싫은거다.

게다가 예전에 남친과 헤어진 후에 선봤던 사람네 가족이 그리워지기까지 한다.

남친과 헤어져있던 동안 선을 봤던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 연봉 1억이 넘는 능력남이었고, 목동에 아파트도 한채 있었고, 무엇보다 그 아버지가 내가 얼른 며느리가 되면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백화점에 데리고 다니면서 옷 사입히고 싶어하신다는 말도 여러차례 들었었다.

그 선남은 내가 싫다고 해서 헤어졌었다. 지금 다른 조건이나 그 사람 자체는 전혀 아쉽지 않은데, 그 아버지는 아쉽다.

결혼하기 전부터 데려다 일시킬 생각부터 은근히 비추시는 시부에 비하면, 그저 자기 아들한테 시집만 와주면 공주처럼 데리고 다니겠다던 그 아버지... ㅜ.ㅡ 내가 미쳤지...

 

솔직히 이런 이유들 때문에 요즘 남친을 만나도 전혀 좋은 감정이 아니다.

별로 보고싶지도 않고, 결혼에 대해 생각하면 짜증스럽다.

누구나 결혼을 앞두고 이런저런 갈등을 한다는데... 이런 감정도 가볍게 지나갈 수 있을까? 이런 감정을 싹 날려 버리고, 다시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결혼해 살게 될까?

요즘은 그런 희망이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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