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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다시 보기 - 선수 손기정이 아닌 감독, 체육 행정가로서의 손기정

hanolduol |2006.11.14 23:40
조회 87 |추천 0
백과사전 연관이미지 손기정

손기정은 올림픽 우승 후 더 뛸 수 있는 나이였지만 사실상 은퇴했다. 일본 당국의 감시 때문도 있고 자기 자신도 올림픽 우승을 하여 일본에 금메달 하나 더 보태준 것에 대한 자격지심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은퇴 후 감독으로 여러 선수들을 키워냈다. 그가 선수로서 이룬 것은 모두 일본의 것으로 들어갔지만 그가 감독으로 이룬 것은 바로 우리 한국이 이룬 것이기 때문이니 어찌보면 선수 손기정보다 감독 손기정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

 

그가 감독으로 처음 참가한 국제 대회는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이다. 올림픽에서 같이 뛴 남승룡과 신예 서윤복이 선수로 참가했다. 손기정은 이 대회에서 서윤복을 우승시켰다. 남승룡은 전성기를 훨씬 지난 뒤에 참가한지라 입상하지 못했다.

 

이후 손기정은 1950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다시 감독으로 참가하여 함기용 선수를 우승시켰다. 1952년 올림픽에도 대표팀 감독으로 참가하였으나 최윤칠 선수가 4위를 했을 뿐 메달은 따지 못했다.

 

그는 1950년대 말까지 지도자로서 활약하였고 그 이후는 체육행정가로서 활동하였다고 할 수 있다. 육상연맹 회장을 지냈고, 올림픽 때 임원으로서 여러 차례 참가하기도 하였다. 그는 아들과 딸을 하나씩 두었다. 많이 낳던 그 시절 사람으로 자녀가 둘뿐인 것은 아내를 일찍 잃었고 재혼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위는 역시 마라톤 선수였던 이창훈이었다. 이창훈은 1958년 아시아 경기대회 마라톤 우승자인데 바로 그 대회는 도쿄에서 열렸던 것이다. 그리고 1956년 올림픽 4위를 차지했다.

 

이후 행정가로서 올림픽 남북 단일팀 협의 때 남측 대표로도 나섰고 서울올림픽 유치를 추진할 때도 참여하였다. 또 1984년과 1988년 올림픽 성화 봉송에도 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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