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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년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오마주

답답 |2014.12.11 01:07
조회 95 |추천 0

지난 4년 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썰을 풀어보고 싶다.

다시 만난 날은 눈이 내리던 이듬해 크리스마스이었다.

그토록 원하던 학교를 이별과 함께 가정사로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날은 늘상 이별하는 연인들이 그렇듯

버릇처럼 말한 이별 후 첫눈이 오는 날 다시 만나자는 기약을 지키게 되었다.

 

강남역 9번 출구부터는 몇 보 앞의 스타벅스에서부터 직선으로 갈 곳이 많아서

술집을 가려는 청춘들과 모임을 가지려는 무리들이 삼삼오오 웃고 떠들며 가고 있었다.

나는 갑작스럽게 이런 풍경에 다시 들어온 것이 낯설었으며 고향에 적응한 터라 사람에 치이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다시 되살아났다.

아마 자라난 곳과 다른 곳에 대한 적개심이 서울 생활을 더욱 외롭게 한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고향에서 서울의 긴장감과 매우 대조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미래 없이 돈은 필요할 때만 벌고 게임을 주로 하는. 친구들에게는 예정도 없는 군입대를 앞두었다고 말해두었다.

그리고 매일 저녁에는 피씨방을 들렸다.

 

그곳에서 다시 만났다.

지금은 안부조차 물을 수 없는 그 여자.

내 심술궂은 도둑질을 웃음으로 화답해주던 그 여자.

그런 짓을 하면서도 나의 양심과 주변 사람들의 이목에서 당당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여자 때문이었다.

별 게 아니지만 말없이 가질 때 마다 웃어주었다.

괜찮다는 낙서와 함께.

타지 생활에서 둘 만의 비밀과 그녀의 호의는 집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해주었고

새로운 곳에 대한 적응에 호기와 도전의식까지 나를 그곳으로 내몰았다.

그 계기를 통해 나는 그 여자와 가까워졌고 서로 인사도 하게 되었고 연락도 하게 되었다.

 

그 여자는 한창 꽃다운 나이의 여자, 나는 신청하지 않은 입대영장을 기다리는 남자.

그 여자는 편입을 준비하는 대학생, 나는 학업을 포기한 대학생.

그 여자는 나날이 치솟는 부모의 아파트에 돈을 깔고 살고 있었고

나는 기울어가는 가정에서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그 여자는 예쁘고 늘씬했으며 지혜롭고 당차며 부유해도 절약하는 생활력 있는 여자였지만

나는 경험 없고 가진 것 없으며 세상 물정에 탁월하지 못하고 지혜롭지도 못한 놈이었다.

내가 그 여자보다 우월한건 친구들의 숫자와 대입시험의 점수, 그리고 체내 근육량 뿐이었다.

이것이 내가 그 수도권의 여자를 동경하게 된 이유이다.

 

우리의 만남은 모임에서 점차 사생활로 번졌고 평일에도 자주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언젠가는 수도권인 그녀를 위해 쉬는 날 조용한 사찰이나 지방 사람들의 특권인 말투가 똑같은 고향 사람을 소개시켜주기도 했고, 그녀는 수도권의 사람에 맞게 트렌드에 맞는 새로운 음식들을 사주기도 했다.

이런 만남은 점점 잦아졌으며

사실상 이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 애매해지는 단계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마 첫 데이트 이후 한 달 뒤 12월쯤엔 서로가 서로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읽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녀를 나의 새로운 말투의 여성에서 동경하는 서울여자를 지나서

완벽한 이상과 정착지, 안락의 섬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그것이 정점을 찍은 날은 201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밤 10시.

우리는 애매한 사이답게 애매한 시간 저녁 6시에 만나서 밥을 먹고 강남역일대의 유명한 라면집에서 맥주를 두어잔 했다. 그리고 밤 10시가 되어갔다.

나는 옛 애인과 보내는 크리스마스를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섹스에 대한 생각도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육체가 서로 교통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였다.

그것은 육지로 돌아온 내가 보는 안락의 섬이자 종착지에의 도착이었고 점령이었다.

내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쟁취해내는 가히 혁명의 목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취기가 약간 올라온 나는 2시간 뒤면 크리스마스가 끝나는데

다른 곳에 들러서 좀 더 있자고 했다.

가령 영화관이라든지.

그녀는 그렇다면 차라리 모텔에서 편하게 영화를 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했다.

나는 당황했지만 한번 말을 꼬아서 '이런 날은 가격이 상당할 텐데'등의 말로 의사를 전했다.

눈치가 있던 그녀답게 '요즘엔 그렇지 않은 곳도 많다'고 꼬아서 대답했다.

나는 마지못한 척 수긍했고, 다행히 한 번에 들린 곳이 적정선의 가격이었다.

그리고 연인이 아니지만 여느 연인처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당연히 요식거리는 사지 못했다. 그럴 겨를도 없었다.

 

새하얀 침대보에 붉은 목도리를 내려놓으며 티비를 켰다.

나는 처음 들어오면서 두 번 놀랐는데 하나는 다시 만난 옛 애인과 이렇게 쉽게 가까워 질 수 있다는 것과, 남자가 꼭 둘 만의 시간을 제안해야 한다는 사회 통념이 거짓일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녀는 자켓을 걸어두고 날 더러 어떻게 지내고 있었냐고 했다.

그리고 나의 자켓을 받아 옷걸이에 걸고 자신의 코트를 정리하더니 엎드려서 티비를 틀던 내 위로 이불처럼 살며시 덮었다.

그 다음 내 머리 위에서 자신은 애인이 생겼다고 했다.

 

급작스런 상황 전개에 드라마의 첫 편을 보고 완결이 재생되는 느낌이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그 애인은 무척이나 자신을 사랑한다고 했다.

그녀는 옛 사랑인 나에게 연인이 있다는 소식을 굉장히 편안한 분위기로 이야기 했고

굉장히 당황해하는 내 얼굴을 보며 말을 꺼냈다.

나는 당황했지만 화낼 권리는 없었다. 명백히 우리 관계는 애매한 관계였기에 화내는 것은 애매하다. 별로 안 기쁜, 사실 최악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며 겉으로 웃어재꼈다.

그리고 영화를 보며 비현실적인 영상미와 아름다운 대사에 말없이 수긍했고

영화를 다 본 우리는 어색한 침묵으로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에 돌아가는 그 수많은 말 중에서도 하필이면 패잔병스러운 말이 나왔다.

 

행복? 우리는 감동하기위해 살아있는거야. 느긋하게 살든 치열하게 살든. 일의 대소에 상관없이 태어나길 잘했다. 살아있길 잘했다하고 느끼는 순간이 평생에 한두번쯤은 있지 않겠어? 하지만말야. 그런 순간을 이미 맛보았건 내내 기다리고 있건 간에, 그런 인생을 믿는 힘이 있기 때문에 우린 매일매일 열심히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거야.

 

나의 애매한 당황은 그때부터 이해하기위한 노력으로 변모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나를 이해시켜 달라.

그 여자는 별 뜻은 없었다며 나에게 사연을 털어놓았다.

남자를 만났다. 서로가 마음에 들었다. 다를게 없었다.

꽤 간단했다. 당연히 간단했어야 했다. 새로운 사랑이 식어가는 건 너무 간단하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에 대해 때로는 화를 내기도 하며 이야기 하고 억지스런 차분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질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기운으로 내게 자신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꺼냈다.

 

나는 그것이 본론이라고 단번에 캐치했다. 나름 눈치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의 애매한 사이가 곧 있으면 명백한 사이로 발전할 것이다.

마음을 속이고 싶지 않아서 오늘 대담함을 통해 비밀을 공개했다.

날 아직 그리워하지만 강요할 자신이 없어서 이렇게 선택권을 준다고.

 

나는 아까 남자친구가 생각났다.

연인들에 사랑의 과정은 거의가 같다. 나와 같은 특별한 추억을 공유할진 모르겠지만. 대수롭지 않은 듯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선택권을 준 것에 대해 감사의 표시를 했다. 어쩌면 직전의 멜로 영화처럼 사랑과 현실을 구분 못 하는 발정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 감사와 함께 고백을 했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서로를 차분하게 웃으며 바라보았다.

나에게 그녀는 예전 아름다운 이상형이었고 한때 동경하는 여인이었으며 지금은 온전히 남의 여자이지만 결국 내가 점령한 안락한 종착지이자 내 뿌리내릴 소유지일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국 현실은 나는 그 어떤 점령의 쾌감 혹은 정착의 안도 또한 느끼지 못하고 또다시 애매한 성욕과 안착 아닌 불시착의 편입을 맛보게 되었다.

 

물론 그 크리스마스의 밤은 꽤 의미 있는 밤이었다.

폰의 진동 소리가 울리는 침대 위에서 몇 개월 만에 만난 여자를 경험했다.

우리는 서로 분위기에 취해 현실을 잊고자 발악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안락의 섬을 찾기 위해 그녀의 몸을 들쑤셨고 그녀는 나에게 그녀만의 어떤 이상을 찾기 위해 내 몸을 들쑤셨을 것이다.

어떤 것이건 우리 둘 다 현실엔 없는 환상에 취한 머저리였다.

나에겐 그녀의 신음은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 이후로 수개월이 지난 나는 더 이상 고향에 있지 않았다. 학교를 다시 다니며 공부에 전념하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지만 현실은 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한 감동이란 게 연애 후에도 뇌리에 박혀서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그 땐 그녀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 나는 다른 공부를 핑계로 서울로 왔다. 도전이라는 가면을 쓴 도피로. 어느 날은 영화에서 이보영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내 풀리지 않는 사색의 종착지로 데려다 줬다. 그 때 난 인정했다. 이젠 나도 누구에게 비난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는 비열한 거리의 오마주가 되었을 뿐이라고. 이런 것들을 통속적으로 나이가 들어간다고 했던가.

 

솔직히 그때 나와 그녀는 어디로 가는지 몰랐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이야기는 의미가 없다.

그냥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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