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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에게

혼자 좋아하고, 멋대로 착각하고 설레서, 소량의 알코올과 오랜만에 보는 예쁜 밤하늘에 마음이 들떠서, 싱겁게 카톡으로 고백을 해버렸다.
도저히 얼굴 보고 말 못하겠다니, 답장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괜찮다니, 내용도 참 멋이 없었다.

처음에 세번 정도 봤을까, 내가 얘를 좋아하게 되겠구나, 어렴풋이 알았다.
하지만 더이상 바보스러운 짝사랑은 하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너를 보려고 하지도, 대화를 해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어느새 너와 친구가 되었다.
머릿속에서 너를 밀어내려고 애를 썼지만, 언제부터인가 내 시선 끝에 항상 네가 걸려 있었고, 단톡방에서 너를 찾아 프로필 사진을 보는 게 일과가 되었다.
학교는 어디일까, 점심시간에 누구와 무엇을 먹으러 갈까, 너도 나를 아니꼽게 생각할까, 틈만 나면 너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네가 이성애자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내 착각일 것이라고 분명히 지각하고 있었음에도, '혹시'이라는 어리석은 착각 때문에 감정들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선 안되는 거였는데 자꾸 말들을 흘렸고, 너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는 너의 물음에 답을 할 수가 없어 속이 울렁거렸다.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결국 자판을 두드렸다.

착각 아닐까? 그냥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었을 수도 있잖아.
욕을 듣는 것보다, 구겨지는 표정을 보는 것보다 속이 쓰렸다.
네가 내 감정을 부정한다는 것이, 의심한다는 것이 슬펐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할까, 아니라고 정말 좋아한다고 우기며 화내면 정말 돌이킬 수가 없을텐데, 어떻게 아니라고 말을 할까.
답장을 썼다가, 지웠다가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예전처럼 지내자는 말에 네게 진심으로 고마웠고, 또 눈물 날 정도로 스스로가 너무 미웠다.
나는 또 관계를 망쳤다.
내 인생에도 '차인다'는 역사가 생겼다는 게 참 웃기고, 민망해서 실소도 나왔다.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 없는 밤이었다.
다음 날부터 나는 너를 피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너는 말했던대로 예전처럼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날 밤을 시작으로 매일 꿈 속에 네가 나왔다, 꽤 오랜 기간동안.
다시 예전 관계로 돌아온 것에 기쁘면서도 매사에 조심스러운 나와 반대로, 너는 내 손을 잘도 잡았고 웃기도 잘 웃었다.
손을 잡아 끌 때마다 매번 놀라서 얼어버리는 것을 너는 모를테지.

크리스마스의 점심을 함께 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너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는데, 과연 내가 사과를 받을 입장이 되는지 모르겠다.
너는 그 친구가 더 좋았고, 좋은 시간을 그 친구와 보내고 싶었으니 그 약속을 지키러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물론 거의 우리와 같이 보낼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하다가 당일날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아무튼 내 서운한 감정을 네 탓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
너 보고 싶어서 쉬어도 되는 날에 굳이 일을 나갔던 것인데, 라며 애 같이 징징거릴 수는 없잖아.

한 달도 남지 않은 짧은 기간 안에 최대한 너를 많이 보고, 그 이후로는 인연을 끊으려고 한다.
인연을 오래 끌면 언젠가는 네가 다른 사람과 연애하는 것을 듣거나 보게 될 것이다.
생각만해도 마음이 무너지고 숨이 막히는데, 실제로 겪으면 얼마나 우울할까.
나는 아직도 여전히 네가 좋다.
추천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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