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길거리를 걸으며 하염없는 고뇌와 번민에
힘들어 하고 있는 와중.
담벼락 한 귀퉁이에서 '그것'을 보았다.
예로부터 속담에서 거론할 정도로
유명한 '그것'
그건 갓 태어난듯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개똥이었다.
크기와 형태로 보았을때 중대형견의 소행이 분명.
대략 어느 집 개의 소행인줄 알기에
개 주인의 몰상식을 6하원칙에 의거하여
에미넴이 렙갓 부르듯 쏴붙이려고
자세를 고쳐잡고 있는데
문득 중 1때 있었던 학교 이야기가 생각 나서
짧게 기술해본다.
바야흐로 때는 내년에 다가올 y2k를 두려워 하던 1999년.
지구 종말을 외치는 사람들이 뛰어다니고
밀레니엄 베이비를 만들기 위해 많은 커플들이
노력을 아끼지 않던 격동의 1999년에
어느 한 시골 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어느때와 다름없던 평일 아침.
어릴 때 다들 그랬듯 나 또한 몸통 만한 가방을 매고
낑낑대며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하늘도 뭔가 우중충 했고 분위기도 싸한게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벌어질거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오던 그런 날...
빠르게 교실로 들어가려고 건물에 발을 들인 순간,
평소와는 뭔가 다른 모습을 목격하고야 만다.
평소라면 교실에서 판치기를 하던가
뒷자리에서 딱지나 쳐대고 있을 애들이
복도에 설탕물에 몰린 개미떼마냥 모여 웅성대고 있는게 아닌가.
심지어 그들이 몰려있는 곳은 화장실.
.............
응..? 화장실..?
뭐지?.. 이번주 우리가 당번인데..
안좋은 일이 생긴건가?
적어도 내가 당번일땐 사고가 생기면 안된다는
이상한 사명감에 친구들을 제치고 안으로 들어가봤고..
친구들이 몰려서 보고 있던게
소설 셜록홈즈에서 죽은사람이 남기는 다잉메시지와 비슷한
어떠한 기록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메시지는 단순했다.
화장실 칸칸히 표시를 해놨는데
한칸엔 O 를. 나머지칸엔 X를 써놨을뿐이었다.
다만 그게 문제가 된건
그 메시지가 갈색이었단 거고
아무리 봐도 그 갈색은
'항문으로 나오는 인간 내면의 가장 어두운 단면'
으로 썼다는게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학교 전체는 술렁거렸다.
이 작은 학교에서 이런 거대한 또라이를 품고 있다니....
개천에서 용나는것도 아니고 똥이 나는구나.
그렇게 다들 그 상황이 재밌고 신기한지
모여서 깔깔대고 있을때
내 표정은 점점 일그러 질 수 밖에 없었는데
왜냐면 씨ㅂ... 나 당번...
일단 청소를 위해 도구를 챙기고
첫번째 X 칸에 가보았다.
뭐가 있을지 몰라 조심스럽게
발 끝으로 문을 밀어 확인해봤지만
안엔 아무것도 없었다.
두번째 X 칸에 가보았다.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세번째 O표시 칸에 가보았다.
그리고 발견했다.
변기 끝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줄기.
펼쳐진 백두대간. 그 찬란한 물결.
그냥 봐도 느껴지는 산란의 고통.
아아.. 차라리 그것은 변기에서 펼쳐지는
황금 빛 빅뱅..
그 모든것이 O 표시된 그 칸 안에 있었다.
실로 엄청난 갈색 거인이었다.
1000년을 다 채우지 못한 이무기를
어쩔수 없이 세상에 낳아야 했던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똥구멍 찢어지게 아팠을까?
딥빡침보다 오히려 경외감에 휩싸였으나 이내 정신줄을 잡았다.
아무리 볼거 없는 시골이지만 똥을 보고 감탄하다니.
내가 진짜 미쳐가는구나.
일단 선생님이 오기전에 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대수건로 문을 박박 문질러 닦기 시작했다.
입에선 평소 쓰지 않던 거친 쌍욕이 튀어나왔으나
마침 나 말고 다른 당번도 도착했기에
그나마 기분을 좀 풀고 O칸으로 가
물이나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잠시 후 들려온 비명소리..
흐르는 강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변기 물을 내림과 동시에
삐져나온 갈색용이 밖으로 범람한 것이다.
아침 첫 변기의 수압은 매우 강력해서
레버를 살살 밟아야 한다는 것을
잊은 대가였다.
나일강 범람하듯 넘치는 황톳물을 보고
난 한명의 풍요를 기원하는 이집트 사람이 되어
파라오의 이름으로 물을 내린 친구의 싸대기를 쳤다.
그리고 문득 깨닳은 사실.
상상속의 투명드래곤 보다
눈앞의 갈색 드래곤이 더 무섭다.
어쨌든 그 어마어마했던 사건 후..
1년간 약 2회에 걸친 갈색경보가 더 있었으나
결국 범인은 잡지 못했다.
힌트도 없었다. 완전 범죄였다.
짜증났던건
그중에서 내가 당번일때가 또 있었...ㅠ
지금은 시간이 지나 그때의 공포는 희미해졌으나
가끔 그때 당시의 기억들이 떠오르면
작게 몸서리 치고는 한다.
아직도 그 녀석은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우리 곁에서 살고 있을테니 말이다.
출처 - http://blog.naver.com/lionysw/2201953274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