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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돌아가신 그 후.. 막장 드라마의 시작

나도 아빠... |2015.02.01 03:15
조회 602 |추천 0

안녕하세요.

 

평범한 23살 직장인 입니다.

 

글을 읽어주시기 전에. 저는 글 솜씨가 없고, 맞춤법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먼저 양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목과 같이 돌아가신 아버지. 그 후 막장 드라마의 시작 입니다.

 

저는 올해 23살 직장생활 하는 사람입니다.

 

먼저 저희 가족 소개를 하자면. 아버지 (44), 어머니(43) 저, 19살 여동생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20살. 이른 나이에 저를 낳으셨습니다.

친척으론 아버지의 남동생 작은아버지, 여동생 고모, 할머니 할아버지 계십니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제 나이 10살 초등학생때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습니다.

 

그 후 아버지는 집에 일주일에 한번. 일이 있으시면 보름에 한번 집에 잠깐 들리셔서

 

잠깐 얘기하고 피곤하시면 제 방에서 잠을 주무시고 다음날 나가시고 그렇게 지내왔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제 나이 16살 때 어머님이 새 가정을 꾸려보시려고 남자를 잠깐잠깐 만나고 계셨습니다.

 

그전까진 아버지는 저희 어머님에게 생활비 등을 보내주셨고. 아버지가 어머님 남자를 만나는 것을

 

목격,알게되셨고 화가 난 아버지는 내가 생활비를 이런데 쓰라 줬냐고 나가라고. 내가 키우겠다고. 다툼을 하게 되어서 여동생과 저는 아버지 밑에서 같이 살기 시작하였고.

 

17살 고등학교 들어갈 때쯤에 아버지는 새어머니라는(47) 사람을 아빠가 저희에게 소개를 하였고.

 

중간 중간 집에도와서 밥도 해주고 청소도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또 지내다. 저희는 아버지와 자주 다투게 되었고 동생도 적응을 못하고 너무 친어머니와 지내고 싶다 하여.

 

저와 여동생은 친어머님과 제 나이 19살까지 지내왔습니다. 그렇게 전 고등학교를 올라가 엄마와 저 동생이 생활을 하려니 어머님이 하시는 일이 어린이집 선생님이셔서.

 

셋이선 빠듯하여 전 졸업하기 전까지 3년간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였습니다.

 

전 제 옷. 신발. 아무것도 필요 없었습니다.

 

다만 제 동생만큼은 어디 가서 꿀리지 않길 바라고.

 

어머님에게도 동생 많은 다른 또래 애들에 비해 꿀리지 않게 키우자 했습니다.

 

비록 제 옷은 안사도 제 동생 옷 사줄 땐 기뻤습니다..

 

학교 끝나고 평일엔 6시부터 12시까지. 토요일은 2시부터 10시, 일요일은 9시부터 9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여 매달 알바비 받은 돈에서 제 용돈 6만원 빼고 나머진 다 어머니 드렸습니다.

 

그 후 전 취업을 하게 되어서 직장생활을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제 나이 21살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3년 추석. 다를거없이 아빠쪽 친가 친척들 가족들이 모여서 밥도 먹고 떠들고 있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첫째 장남이셔서 저희 집에서 가족들이 모입니다. 평소 건강하셨던 분이고 나이도 젊으셔서 아프실 거라고는 생각을 못하였는데.

 

추석 당일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다하고 가족들이 있는데도 방안에서 누워 계셨습니다.

 

생각이 짧았던 저는 그냥 단순히 두통이 심하신가 생각을 하고, 친척들과 인사를 하고

 

저와 동생은 외가 친어머님과 외가를 가서 있다. 다음날인 돌아오려는데 아빠가 쓰러지셔서.

 

응급실에서 검사를 받고 계신다고 새엄마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심상치 않다. 뇌종양인거 같다.

 

저는 믿을 수 없어 좌절감에 빠져 바로 가려고 했으나. 서울 큰 병원을 가보라 하여서 새어머니와 아버지 구급차를 타고 서울 s병원에 가셔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한 결과.

 

뇌종양 중에 악성인 교모세포종이라 판정을 받았습니다.

 

교모세포종이란 뇌종양중 가장 악성이며 수술을 하여도 후 결과가 좋지 않으며 재발 확률이 80프로라고 주치 선생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저와 제 동생 새어머니는 큰 좌절에 빠졌고. 어떻게든 살려보자 아빠를 위해서만 모든 걸 하자.

 

수술 예후가 안좋다하여도 손쓸 수 있는 건 다 하자 하여서 수술을 결심하게 되었고.

 

수술 당일 친척과. 저희 가족은 다 모여서 수술실 앞에서 아버지 이름 호명되기까지 수술실 앞에서

 

꼭 살아서 보자. 수술 잘될 거니 너무 걱정하지말자 아빠 손을 꼭 잡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렇게 첫 수술에 들어가시고 9시간 넘게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이동하여 아버지 면회 시간에 맞춰 아버지를 본 순간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흐르고.

 

시간이 지나고 아버지는 마취가 깨자 너무 괴로워하시며 눈물을 흐르셨습니다.

 

그 후 수술은 잘됐다 하였고. 수술로 인해 왼쪽 뇌신경이 다쳐서 왼쪽은 감각이 없고 움직이지도 못하셨습니다. 저는 직장을 가야되고. 동생은 학교생활은 해야 돼서

 

새어머니가 간병호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와 동생은 3일에 한번 대전에서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며 아빠와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간병호도 해드리고 지냈습니다.

 

그렇게 정확히 6개월이 지나자 종양이 또 재발하여 2번째 수술을 들어가셨고. 주치의 말로는

 

이제 퍼질 때로 퍼져 더 이상 손을 못되고 할 수 있는 거까진 최대한 종양을 제거 하였다했습니다.

 

그 후 두 번째 수술 마치고 나오신 아버지는. 갈수록 신경이 예민해지시고. 오른쪽 감각마저 더 둔해지셨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병원 생활을 하시다가 아버지도 힘든 다는걸 아시고. 집으로 가자 집에서 치료 받고 싶다 하여. 가족들과 상의해 저희 집 대전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빌라 3층에 살았던 집은 혼자선 움직이지도 못하시는 아버지를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에서

 

저희가 매일 업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는걸. 힘들다 생각하여. 주택으로 이사를 가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아버지는 병생할. 새어머니는 가게를 하셨는데 간병 호를 하셨으니 가게도 못가고 수입이

 

전혀 없는 상황에 카드를 쓰고 하다 보니 시중에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어머니는 저에게 너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 은행에서 대출이 가능할 꺼다.

 

앞으로 아빠 모실 집을 구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하여. 저는 아무생각없이 아빠를 위해서니

 

주거래 은행에서 2000만원을 대출을 받고 새어머니에게 입금 시켜 주택 집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 후 가면 갈수록 아버지는 점점 애기가 되셨고. 그렇게 매일매일 두통에 시달리시며 아버지는

 

14년 9월 추석 연후인 첫 날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게 고생하시며. 열심히 잘 버텨주셨던

 

아버지인데. 딱 1년 추석에 시작하여 추석에 저희 가족 있을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 친척들과 저 제동 생은 한동안 아무 생각없이 힘들게 지냈습니다.

 

문제는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뒤, 시작이 되었습니다.

 

새엄마는 아빠와 같이 있었던 이 집에 있으면 아빠만 생각나서 너무 힘들다. 이사를 가겠다. 하여

 

그렇게 해라. 우리도 이렇게 힘든데 같이 옆에서 간병호 해왔던 새엄마는 어떻겠나. 해서 이사를 하라 하였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뒤. 장남인 저는 정말 미친 듯 술만 먹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새어머니와 연락이 안 되기 시작했습니다. 걱정되어 이사는 가셨는지

 

집을 방문했는데. 짐을 다 빼서 말없이 이사를 갔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전화와 문자를 하여

 

집에 와봤는데 짐은 하나도 없고 어디로 말도 없이 이사를 갔냐. 물었지만 답은 없었습니다.

 

그 후 친척인. 작은아버지 고모,할머니 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새어머니라는 사람이 작은아버지 고모, 할머니 앞으로 돈을 빌리고 카드를 빌려 여태 썼다고.

 

어찌된 상황인지 하나하나 여쭤보니 할머니에겐 주택으로 이사 간다며 전세라고 5000만원을 빌려 달라 하였다 합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아버지가 원래 살던 집 3층으로 들어가시고 전에 사시던 집을 파시고 그 돈을 새어머니에 주었다합니다.

 

저에게 말할 땐 월세집이고 보증금 1500에 40이였습니다.

 

고모와 작은아버지는 새어머니가 신용 불량자이셔서 생활할 돈이 없다보니 카드를 빌려 현금서비스. 이것저것 생활비를 카드로 충당하였다고 합니다.

 

이 돈은 아버지 보험금으로 충당해준다 하였다 합니다.

 

허나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뒤 연락두절인 상태이고.

 

하나둘 조사할 때마다 기가 막히고 눈물밖에 안 나옵니다. 애초 아버지 앞으로 보험을 가입 시에

 

수령인인 혼인 신고도 안한 새엄마가 수령인으로 되어있었고.

 

할머니에겐 전세 5000이랬던 집. 저에겐 보증금 1500이랬던 집 알고 보니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5만원이더군요.

 

제 앞으로 대출 받는 조건으로 집 계약은 제 앞으로 계약을 하여 계약서도 제가 들고 있었습니다.

 

허나 말없이 이사를 가면서 서랍에 있던 계약서까지 없어진 상태고. 뒤늦게 집주인에게 사실을 고하자.

 

원 계약자인 아들이 갑자기 해외를 가게 되어서 새어머니 앞으로 명의를 바꿔달라 하여 바꿔주었다 합니다.

 

아버지 앞으로 돼 있던 땅2개도 아버지 병생할 하실 때 서류 다 때어서 자기 앞으로 명의도 바꿨더라고요.

 

저희 가족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빚쟁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작은아버지 고모, 할머니 얘기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내 앞으로 대출받았던 2000만원은 계속 힘들어 할 순 없으니 저 혼자 생각하길 그래. 차를 샀다고 생각하자. 사기를 당했다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작은아버지, 고모, 할머니 얘기를 듣고 나서부턴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저희 아버지 아플 때부터 미리 다 준비했던 거 같고. 돈밖에 모르는 인간이라고.

 

허나 이 사람을 저희가 고소를 하려고해도.

 

저는 계약서도 분실한 상태이고. 대출받아 입금 해준 것도 집주인이 아닌 그 사람에게 입금을 해주었으며.

 

작은아빠 고모, 할머니는 차용증 같은 서류 같은걸 쓴 것도 아니고. 카드랑 통장같은것도 작은아빠 고모 앞으로 썻기 때문에 고소, 소송도 안된다 합니다.

 

저희 가족들은 어떻게 저 사람을 처벌받게 할까 현재까지 매일  눈물을 흘리며. 지내십니다.

 

그 후 연락도 안 되고 이사도 어디로 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제가 할 방법은 없는 것 같았고.

 

그렇게 직장생활을 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저번 주인 23일경 주변 지인이 아버지 앞으로

 

금융거래조회를 해보라 하여 신청하고 지내다 오늘. s카드사에 2400만원에 채무가 있다고.

 

아직 카드사는 s카드사 한군데서 왔으며, 앞으로 다른 카드사에 얼마 있을지 모릅니다.

 

저는 아버지 돌아가시고 폐인처럼 지내서. 아직 나이도 어리고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습니다.

 

아버지 앞으로 땅2개 있던 것도 빼앗기고 재산이 없을 거라 생각하여 그냥 있었습니다.

 

상속 포기란 걸 안했던 거지요. 아버지가 신용 불량자이셨는데 개인회생을 하여서 작년 5월에 빚도 없고 회생되었다 새어머니가 말씀하셨고 저는 빚도 없을 꺼라 생각했는데.

 

앞으로 아버지 앞으로 채무가 얼마나 더 있을지……. 속만 타들어가며 주변 누구에게 하소연 할 사람도 없고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새엄마란 사람을 어떻게 처벌을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저에게 남겨진 건 빚. 제 앞으로 있던 대출금 2000에 우선 하나 확인된 2400만원에 카드사 채무. 앞으로 더 얼마나 있을지도 모르고.

 

작은아버지 새엄마가 쓴 카드 빚 3200만원. 고모 1000만원, 할머니 5000만원.

 

참. 새어머니 가게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가게는 저희 할머니가 두 분 이서 시작할떄 초기 자금과 가게를 사주셨습니다.

 

그것도 아버지 병생할 도중 할머니를 찾아가 . 이래저래 해서 지금 이렇게 힘들게 간병호 하고 있고 이곳도 이제 운영을 못할 거 같으니 내놔야할꺼 같다 명의를 자기 앞으로 돌려 달라 하여 할머니는 고생하는 새어머니 생각해 명의를 돌려주었다 합니다.

 

저희 가족은 사랑하는 아빠를 잃고 남겨진 건 아버지의 사진. 그리고 빚뿐이네요.

 

이제 23살인 저에겐 좌절감. 끝이 안 보이는 빚더미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삶의 희망도 안보이고.

 

그냥 이렇게 아빠 옆으로 가고 싶네요.

 

어디 가서 하소연 할 사람도 없고. 혹시 저 새엄마란 사람 처벌받을 수 있을지 해서. 여기에 글을 써봤습니다.

 

그냥 지나가셔도 좋습니다. 지금 옆에 계신 , 떨어져 지내는 부모님에게 안부 전화라도 드려보세요,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부모의 저희 옆에 안 계실 수 있습니다.

 

첫 수술 전날인 아버지는 제게 마징가 제트가 되어서 돌아 올 테니 걱정 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추후. 부모님께 후회 하는 행동 하지마시고. 지금이라도 효도, 안부전화 한통 해보세요.

 

아버지가 보고 싶은 밤이네요.

 

저는 하소연 할 사람이 필요했을 뿐 입니다. 글 솜씨 없고 재미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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