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내아들이 아니야 좀 사라져버려..."
한 귀족여인이 자신을 간절히 붙잡는 작은손을 매몰차게 때어내었다. 한 6살쯤 되었을법한 아이는 그 작은손으로 여인의 치마자락을 잡다가 그만 내팽겨쳐졌다. 이때 그 소년을 바라보던 한 여인은 울고있는 아이를 달래주며 자기집으로 데리고 갔다.
원나라가 명나라에 의해 몽골고원으로 쫒겨나고 쿠빌라이계였던 울루스 테무르칸이 자기 형의 사위인 이수테르에게 살해당하면서 북원은 사실상 멸망하였다. 이후 몽골고원은 과거로 돌아가 서로간의 살육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징기스칸의 가문이었던 타이슨 칸이 이민족(오이라트족)인 에센 칸에게 살해되고 에센이 이민족 출신 최초의 대칸이 되었지만 역적으로 지목되어 피살당했다. 이후에도 서로 죽이고 죽는 권력 다툼 속에서 타이슨 칸의 아들도 칭기즈 칸의 이복동생이었던 벨구테이 가문의 자손에게 살해되었다. 이후 한동안 칸이 없는 시대가 이어졌다.
그러다가 타이슨 칸의 이복 동생인 만두굴이 칸 위에 오르게 되는데, 1467년 만두굴 칸은 타이슨 칸의 손자와 권력 다툼을 벌이다 사망하였다. 그러나, 권력싸움에서 이긴 타이슨 칸의 손자 볼후 진왕도 칸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피살되었다.
이렇듯 권력 다툼 속에 죽어간 두 사람이 바로 만두하이의 첫째 남편 만두굴 칸과, 나중에 만두하이와 결혼하게 되는 바트 멍흐의 아버지 볼후 진왕인데, 이 어린소년인 바트 멍흐가 바로 나중의 다얀 칸이되었다.
만두굴 칸이 죽었을 때, 만두하이가 서른 한 살이었고, 바트 멍흐는 여섯 살이었다. 쿠빌라이 자손들이 거의 대부분 사라져 버리고 없는 상황에서 바트 멍흐는 거의 유일하게 남겨진 귀한 황손이었다. 다시 말하여 바트 멍흐는 당연히 칸 위를 계승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바트 멍흐는 아버지(볼후 진왕)사후 재혼한 생모로부터도 천대를 받는 버려진 아이가 되고 마는데, 이 아이를 거두어 돌봐 준 여자가 바로 만두하이였다. 만두하이와 바트 멍흐는 처음에는 모자간의 관계에 가까웠다.
만두하이는 칭기즈 칸의 직계자손이 거의 대부분 사라진 상황에서 칸의 자리를 이어갈 사람은 바트 멍흐뿐이다 라고 판단을 하고, 바트 멍흐를 극진하게 돌봤다. 여기에다 과거 칸의 부인이었던 점을 이용해 동몽골인들의 충성을 이끌어 내는데 힘을 기울였고 이후 성장한 바트 멍흐를 정식 칸으로 추대하였다.
1470년, 몽골족의 영웅 칭키스칸의 가묘가 있는 성지 나이만 차강게르 앞에서 성대한 취임식이 열렸는데 여기서 바트 멍흐가 칸위에 올랐다. 칸위에 오른 바트 멍흐는 다얀 칸이라고 불리게 되는데, 다얀이란 바로 '大元'을 의미한다.
그 이름 속에 어린 칸을 앞세워 칭기즈 칸의 가문을 다시 부활하겠다는 만두하이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었다. 칭기즈 칸의 가묘 앞에서 치러진 취임식은 분열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몽골인들의 힘을 한곳으로 모아 옛 선조의 영화를 재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만두하이는 어린 다얀 칸을 키워가면서 섭정으로서 동몽골을 다스렸다. 이때 다얀칸은 처음에는 어머니로 여겨졌던 만투하이가 점차 여자로 다가왔고 두 사람은 마침내 사랑에 빠졌다 이후 다얀 칸이 성장하자 만두하이는 1481년, 만두하이가 마흔두 살 때, 다얀 칸이 열일곱 살 때 결혼을 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십오 년의 연상인 만두하이는 다얀 칸과 결혼하여 일곱 명의 아들을 낳았다(세 쌍둥이 포함).고 한다. 만두하이가 낳은 이 일곱 명과 다얀 칸의 후비가 낳은 네 명의 아들 도합 열한명의 아들들이 이후 칭기즈 칸 가계의 새로운 몽골족을 탄생시켰다.
만두하이는 이십오 년이나 연하인 남편을 키워 몽골역사에 남을 칸으로 만들었고, 아들들 역시 제대로 키워 칭기즈 칸의 가문을 부활시켰다. 이런 점에서 만두하이는 칭기즈 칸의 모친 호엘룬과 비교된다.
만두하이는 다얀 칸의 아내였지만, 다얀 칸에게는 어머니와 다름이 없었다. 특히 만두하이는 어린 칸을 키우면서 다얀 칸이 몽골 제국을 부활시키기 위하여서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끊임없이 주입시켰다. 만두하이는 오이라트와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다음 몽골초원에서 동몽골이 완전히 주도권을 잡은 다음 장성한 다얀 칸에게 몽골의 통치권을 넘겼다.
1448년에 태어나 18세인 황제와 결혼해서 그를 대신해 섭정을 하고 어려서 무능한 왕을 대신해 외적의 침입을 막고 동몽골에 위협적인 존재였던 오이라트를 무너뜨리고 다얀 칸과 함께 칭기즈 칸 일족의 권위를 부흥시켰다. 이후 다얀칸의 손자인 알탄칸은 명나라의 수도 북경을 포위하여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다얀칸의 몽골제국은 이후 100여년을 이어가다가 1635년 청나라에 의해 멸망하였으나 이후에도 칸의 씨족 보르지긴 가문은 청나라의 황후를 여럿 배출하는 명문가로 자리잡았다.
철의여인이라 불리며 어린남편을 도와 몽골을 부활시킨 여걸 만투하이의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