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 남자입니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미친 듯이 앞만 보고 달려온 끝에 원래 수준보다
더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서조차, 고등학교처럼 열심히만 살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언젠가 노력이 분명 보답 받을 날이 올 거라고...
대학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군대를 가서도 휴가 때 소개팅 같은 건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조금씩 고시를 준비했습니다.
(군인이 소개팅을 해봐야 어쩌겠나,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마침내 고시를 합격했습니다.
이제는 다 끝난 거라고, 제 인생은 장밋빛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손에 쥔 건 자격증뿐이네요.
남들 다해본 연애 경험 한번 없이, 짝사랑만 반복하며 살았습니다.
고시가 끝난 후 경험해본 소개팅에서는 제가 가진 자격증에만 관심이 있지,
‘저’라는 사람에 대한 관심은 뒷전이었습니다.
씁쓸한 맘에 ‘원래 다 이런 건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마음이 가는 여자를 만났습니다.
이 여자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말도 잘 못 걸고 눈도 못 마주보는 칠푼이였던 제가,
처음으로 용기 내어 밥이나 한 끼 하자고 했습니다.
처음으로 여자에게 영화를 보자고 해봤습니다.
처음으로 고백이란 걸 해봤습니다.
그리고 뻥, 차였네요.
멋없이 매달려도 보고 애원도 해봤습니다.
떨리던 목소리로 말하던 처음의 거절과 달리,
좀 더 확고한 힘이 들어간 두 번째 거절.
아. 안 되는 거구나.
20대 후반, 남들은 이미 몇 번의 연애를 거쳐 정신적으로 성숙했을 나이.
대학교 신입생 때나 겪을 긴장감, 애틋함, 서툼...
그 모든 걸 너무 늦게 경험했나봅니다.
좀 더 빨리 연애를 해봤으면, 놓치지 않았을까요.
좀 더 잘, 능숙하게 대화를 했으면, 잡을 수 있었을까요.
눈을 뜬 아침. 20대 초반에 친구들이 늘 말하던, 하지만 공감하지 못했던
‘가슴이 아프다’라는 게 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처음 고시를 불합격 했을 때에도 이렇게 울어본 적은 없었는데.
너무 뒤늦은 나이에 ‘정말로 좋아하는 게 뭔지’ 깨달았나 봅니다.
남들이 다 경험해보는 연애.
나도 좀 일찍 시작해볼걸.
나도 좀 더 연습해볼걸.
왜 전 이 뒤늦은 나이에서야 그걸 안 걸까요.
제 지난 세월이 후회되고 억울하고 분해서 미치겠습니다.
더 슬픈 건, 이 선택을 한 게 다름 아닌 저 자신이라 분을 풀 곳도 없다는 겁니다.
왜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산걸까요...
좀 더 멋있게 20대를 보낼 방법도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다시 매달려 보고 싶지만, 그나마 지금의 관계마저도 부서질 것 같아서 두렵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대쉬 해보고 싶고... 뭘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런 고민조차 연애를 해봤으면 안 이랬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신이 멍하네요.
고백하고 차였을 뿐인데도 이런데, 연애를 하고, 이별을 하면 어떻게 버티는 건지...
그냥,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대단해 보이고 그렇습니다.
어디 가서 하소연할 때도 없고 혼자 끙끙 앓는 너무 답답한 마음에,
여기다가 글 하나 끼적이고 갑니다.
구정도 끝나고 학교는 새 학기가 시작하는 계절이네요.
새해에는 다들 즐거운 일만 있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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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적은 분들에게라도 넋두리를 해보고 싶어 쓴,
못난 하소연에 이렇게 많은 관심을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몇몇 댓글들에 대한 말씀을 드리자면,
흔히 1~2년 이상 걸리는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그 시험의 종류와 무관하게 대부분 공부하는 본인을 ‘고시생’으로 지칭합니다.
(제가 다녔던 학교, 학원에서는 모두 그리 말해 저 역시 그리 표현하였습니다.)
‘자격증’은 시험을 통과해 전문성을 얻게 되어 가지게 될 직업을 통칭해
제가 임의로 말한 건데, 그게 이런 오해를 부를 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차라리, 자작이었으면 싶네요.
네 인생이 틀리지 않았다고, 너 열심히 살았다고,
너 멋진 놈이라고...
말해주시는 따뜻한 댓글들에 눈물이 나올 뻔 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