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에 들어와서 과학이 발전하며 중세 기독교가 가지고 있던 학문의 왕이라는 허황된 광채는 사라졌습니다. 이제 아무도 교회에서 자연과학을 배우지 않습니다. 갈릴레이가 언젠가 재판소에서 나오며 말했듯이 그래도 지구는 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허세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기독교는 종교로서 매우 왜곡된 종교였습니다. 세계 어떤 나라의 종교도 종교가 인간의 과학적 판단을 지배하진 않았습니다. 설령 지배했다 하더라도 그건 부수적이고 별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 불과했죠.
기독교는 성서를 세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성서에 맞추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까짓 2천 페이지도 되지 않는 작은 책에 세계의 모든 것이 담겨있기는 불가능했죠. 여기에서 아이작 아시모프의 유명한 콩트인 'How it happened'를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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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How it happened)
동생은 할 수있는 가장 엄숙한 목소리로 구술을 시작했고, 부족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태초에," 하고 그는 말을 시작했다. "정확히 152억년전 빅뱅이 있었고 우주가......"
그러나 나는 받아쓰기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150억년 전이 라고?" 내 목소리는 불신에 가득차 있었다. "물론이지, 난 계시를 받았어." 하고 그는 대답했다. "네가 받는 계시를 믿지 않는 것은 아냐," 하고 나는 말했다. (물론 믿어야만 했다. 내 동생은 나보다 세살이 어리지만 그가 받는 계시에 의문을 품어본 적은 한번도 없다. 또 지옥에 떨어질 각오가 된 사람이 아니라면 감히 그런 생각을 품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설마 150억년에 걸친 창조의 역사를 구술하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해야만 해," 하고 내 동생은 말했다. "그게 우주가 창조된 역사니까. 모든 우주의 역사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바로 이곳에 다 기록되어 있다구," 그는 자신의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나는 철필을 내려 놓으며 투덜댔다. "너 요즘 파피루스 값이 얼마나 하는지 알기나 하니?" "뭐라고?" (그가 신성한 계시를 받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때때로 그러한 계시가 파피루스의 가격같은 추잡한 세상사는 고려 하지 않음을 느끼곤 한다.) 나는 말을 계속했다. "네가 파피루스 한 두루마기마다 백만년에 걸친 역사를 구술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려면 우리에겐 파피루스 두루마기가 만오천개나 필요하겠지. 파피루스 만오천개를 쓸 정도로 말을 많이 하려면 얼마 안가서 네 목은 완전히 쉬어버리고 말게다. 그리고 그 많은 양을 받아쓰고나면 내 손가락은 떨어져 나가버리겠지. 좋아. 우리가 그 많은 파피루스를 구입할 능력이 있 고 또 네 목은 쉬지도 않고 내 손가락도 멀쩡하다고 생각해보자구. 도대체 어떤 미친 녀석이 그 많은 양을 다시 베끼려고 들겠니? 우리가 책을 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사본이 적어도 100개는 있어야 할텐데 사본을 못 만들면 인세는 어떻게 받니?" 동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양을 좀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하고 그가 물었다. "물론이지," 하고 나는 대답했다. "사람들에게 읽히려면 그 수밖에 없어." "백년 정도로 줄이면 어떨까?" 하고 그가 제의했다. "엿새면 " 하고 내가 말했다. 그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대꾸했다. "창조의 역사를 겨우 엿새에 구겨넣을 수는 없어." "내가 가진 파피루스는 그 정도가 다야. 어떻게 할래?" "좋아,"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한 그는 다시 구술을 시작했다. "태초에- 창조에는 엿새가 걸렸다 이거지, 아론(Aaron)?" 나는 엄숙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지, 엿새였단다. 모세(Moses)야."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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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콩트와 같은 일이 모세 시절에 있었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 콩트는 성경의 한계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성경은 신이 아닙니다. 신의 위엄으로 거룩해진 책일 뿐입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성경을 잘 읽는다는 것은 그것을 맹신한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한계와 가능성을 명확하게 아는 데에 있습니다.
성경은 또한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성스러운 책'이 가지면 안 될 부분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인물들은 결코 성스럽지 않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근친상간을 하고, 동성애자도 있습니다. 다윗의 불륜과 솔로몬의 말년에 행했던 각종 우상숭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저 위에 나온 모세조차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이리 빠지고 저리 빠지고 도망칠 궁리를 하던 사람입니다.
즉, 성경은 두 가지 측면, 즉 과학적 측면과 도덕적 측면에서 모두 '거룩하지 못한' 책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완벽하지 않고 깨끗하지도 않습니다. 오류도 있습니다. 성경의 오류에 대해선 인터넷만 살짝 검색해 보면 우수수 나올 테니 여기에선 할애하도록 하죠.
물론 성경에도 옹호할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확실하게 말하건대, 신정통주의는 자유주의와 달리 성경의 중요성과 거룩함을 믿습니다. 이 거룩함은 땅의 거룩함이 아니요 하늘의 거룩함입니다. 이 하늘의 거룩함은 우리가 생각하는 선과 악을 기준으로 한 거룩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의지에 의한 거룩함입니다. 우리는 분명 여기에 인간으로서 대답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주제에 대해선 나중에 이야기 하도록 하죠.
그렇지 않더라도 성경은 분명 한 텍스트로서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오랫동안 내려오고 읽히는 텍스트가 어디 있습니까? 성경에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인간이 헐거벗고 있던 시절부터, 홍수, 건설, 유목민, 노예생활, 해방, 방랑, 전쟁, 스트리트 파이터에 예쁜 여자, 모략과 음모, 온갖 추잡스러운 성행위, 천벌, 예언자, 우정, 사랑, 아가서를 읽어본 적이 있나요? 성경에는 무려 19금 빨간책까지 있습니다.
다시 본점으로 돌아오죠. 이제 우리는 성경이 과학적인 서적으로 쓰면 안 된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도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바로 기독교인이죠.
여기에서 진화론이 세상에 나온 뒤로 계속해서 불거져 나온 '창조설 vs. 진화론' 논쟁을 꺼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논쟁은 '천동설 vs. 지동설'을 생각나게 하는데요. 가장 큰 차이점은 그 시절엔 종교가 막강했고 이겼지만, 지금은 과학이 더 막강하고 이겼다는 거죠.
자, 여기에서 세 가지 감정의 굴곡을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패배감'일 것 같네요. 종교와 과학을 대립하는 것으로 보고 종교가 과학에 지면 안 된다는 이상한 망상입니다. 왜 지면 안 될까요? 지면 과학이 도덕심을 잃고 온갖 비도덕적인 실험을 자행할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복제인간에 대한 논쟁도 빼놓을 수 없겠죠. 그러나 과학적 도덕의 문제는 이미 종교의 손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윤리가 종교의 손에서 벗어나 독립한 것처럼 말이죠. 설령 기독교가 없다 하더라도 과학은 과학 나름대로 잘 해 나갈지도 모릅니다.
두번째는 '의무감'일 것 같네요. 성경을 철썩처럼 믿고 있는 근본주의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마태복음 5장에 나온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 계명들 가운데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낮은 자로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이 말씀 때문에 가능하지도 않은 억지를 부리고 있는 거죠. 마치 말 잘 듣는 아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걸 기억하세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과학의 불필요성을 설파하기 위해서 내려온 게 아닙니다. 더욱 말하자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지혜로우라 말했습니다. 눈앞에 뻔히 있는 증거조차 믿지 못하고 멍청하게 굴지 말고요.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매우 불편하게도 '신앙심'일 것 같네요. 성경에 그렇게 나왔으니 그런 거겠지. 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그런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순진한 사람들입니다. "학교에서 공룡에 대해서 배우고 있는 아들에게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 공룡은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어요." 실제로 미국에 있었던 질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사악하기 보단 순박하고 단순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 또한 가져봄직합니다. "성경에 오류가 있으면 하나님도 없는가?" "하나님은 성경에 묶인 하찮은 존재에 불과한가?" "창조론이 아니라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로 옳다면 하나님은 사라지는가?" 결코 아닙니다. 과학적 사실과 신앙적 믿음은 전혀 다릅니다. "과학적 사실은 당연한 것이지만, 신앙적 믿음은 가치 있는 것입니다." 과학적 사실을 과학적 믿음으로 치환하셔도 괜찮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의미는 달라지지 않으니까요.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처음 이전에 계셨고, 끝 이후에도 계실 분."이라고도 했습니다. 결코 성경이나 교회 같은 작은 것에 묶인 존재가 아닙니다. 성경이 사라져도 신은 영원할 것입니다. 이것을 먼저 받아들이지 않고 성경의 모든 구절 하나하나를 믿어선 안 됩니다. 성경은 그 쓰임세에 맞게 신을 알고 싶은 마음으로 접근함이 옳습니다. 세상의 진리가 거기에 담겨있다는 허황된 망상 말고요.
그렇기에 성경을 읽을 땐 깊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과학에 대한 갈급함'이 있으면 도서관에 가서 과학분야의 책을 읽으세요. '도덕에 대한 갈급함'이 있으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이라도 읽으시면 좋습니다. '재미에 대한 갈급함'이 있으면 요즘 세상 얼마나 좋습니까? 소설책이든 만화책이든 게임이든 마음 가는 대로 고르시면 됩니다. 그러나 만일 '신에 대한 갈급함'이 있다면 성경은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신에 대한 모습에 대해선 다른 곳에서 적어보도록 하죠. 적어도 '인간을 위한 신'의 모습은 아닙니다.
이제 현대 기독교인은 과학적 지식과 신앙적 믿음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머리에는 과학을 집어넣고 영혼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담으세요. 이건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에게 가능한 일이었고, 지금도 성령께서 바라고 있는 일이라고 전 믿고 있습니다.
기독교에는 '초대 교회로 되돌아가야 한다.'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 좋죠. 성령의 세례를 받은 성도들이 다락방 같은 곳에 모여 사이에 소금을 두고 뼈 있으면서도 사랑이 넘치는 토론을 하는 그런 공간.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초대 교회는 '과거로 퇴행하자.'라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그런 거라면 저는 부정합니다. 그건 환상에 불과합니다. 결코 얻을 수 없으며, 얻어서도 안 됩니다. ISIL이 도서관에 방화한 사실을 아십니까? 그 이유는 코란에서의 가르침과 다르다는 거였습니다. 그 이유로 최신 학문의 보고를 불태웁니다. 이게 과연 종교가 해야 할 일입니까?
이제 기독교는 과학이니 창조론이니 그런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만을 바라봐야 합니다. '학문의 왕이라는 중세의 허황된 광채'를 버린 것은 실로 기독교에 있어서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기독교는 그 종교가 본래 해야 했던,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하는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사명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여기에 도망칠 수 없고, 과학이라는 것에 한눈을 팔 수 없습니다. 과학은 과학자에게 맡기세요.
끝으로 과학과 종교가 충돌하는가 충돌하지 않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종교와 과학은 충돌할 수 있습니다. 종교는 한마디로 축약할 수 없는 거대한 합집합이고, 실제로 기독교나 이슬람 근본주의는 과학과 충돌하죠. 그러나 '신에 대한 응답'인 신학과 과학은 결코 충돌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갈릴레이의 명언(이라고 알려져 있는)을 패러디하며 마치겠습니다. "그래도 인간은 진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