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핸드폰의 충전을 맡기고 나서 든 생각은 1월 1일 첫 외출이 '편의점'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야, 서른 살 첫 날 첫 외출이 편의점이냐? 휴우~~'
스스로에게 핀잔을 주면서 느껴지는 나의 옷차림...그야말로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다.
옷차림은 무릎 나온 츄리닝에 대충 껴 입은 파카....게다가 머리는 묶거나 모자를 쓰거나 어떤 처치도 해주지 않은 채 파마머리의 웨이브가 잔뜩 엉켜 있었다.
여자가 밖에 나간다는 것은 얼마나 멀리 나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꾸미고 나가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도 최소한 신년 첫 외출이라면 이 상태로 집밖에 나온다는 것은.....
'그래....첫날이라고 너무 의미 심장하게 생각하지 말고...'
라고 위안하려다가....
'아니지..아니지...모르는 남자한테 전화가 왔었다고...그것도 잘못 걸린 전화가 아니라...내 이름을 아는 남자...그래서 이렇게 정신 없이 나온 거라고..'
이렇게 당당하게 생각을 바꿔 보기로 했다.
그러나 30분 동안 핸드폰이 충전되길 기다리면서 무엇을 할 것인지도 막막했다.
다시 집에 들어갔다 나오기엔 거리도 어정쩡하고....옷차림을 깨달은 이상 편의점을 벗어나 더 움직인다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무료할 때 늘 하던 핸드폰의 고스돕 게임이나 할까...생각했으나 '핸드폰은 충전중...'이었다.
'그래, 과감히 투자하는 거야....나이 먹을 수록 세련되어야 해...'
그러면서 집어든 것이 여성잡지였다.
예전같으면 한 달에 한번은 미장원에 가면서 실컷 볼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도통 미용실도 다니지 않아 여성잡지를 볼 수 없었다. 여성 잡지를 보지 않으면 웬지 시대에 뒤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돈을 주고 구입해서 보기로 했던 것이다.
'요즘 젊은애들 옷 입는 것도 알아두고, 연예인 이름도 좀 더 많이 외워두고....'
여자들은 여성 잡지만 쥐어주면 1시간은 쉽게 버틴다. 잡지에 기사는 없고 2/3가 광고라고 하더라도...
현란할 그림과 글씨체....목차를 훑어가다가 눈이 멈춘 곳이 있었다.
인기 탤런트 'K'양 전격 결혼
연예인들 사이에서 너무나 흔한 일이지 모르겠지만, 그 K양은 나와 고등학교 동창에 같은 반이었다.
어떤 동창이었냐고? 묻는다면 연예인만 안했다면
'순날나리에 양아치에....무단 결석을 밥먹듯이...하고'
라고 순식간에 학창시절의 모든 망나니짓에 대해 쏟아져 나올 아이였다.
나도 사람들이 그 친구 얘기를 하면 '연예인'이란 기세에 눌려서인지 쉽사리 그 친구에 대한 만행을 얘기할 수 없었다. 이게 권력의 힘인가? 요즘 세상의 모든 돈과 권력은 '연예인'이 가진 듯 한 분위기이기도 하다.
아무튼 사람 팔자는 모른다고 했던가, 그 친구에 비해 고등학교 때 모범생이었던 내가 30살 먹으면서 '왜 결혼 안하냐?'라는 구박을 받으며 원룸 월세와 자동차 할부금에 허덕이고 있다면, 그녀는 그런 불량스런 학창 시절을 보내고도 지금 연예인이란 이유만으로 '성공한 여자'였던 것이다.
적어도 30살에 그녀는 핸드폰 충전하러 츄리닝입고 헝클어진 머리로 편의점에 오는 그런 인생을 살지는 않겠지 싶었다.
거기다 전격 결혼.....이라니.....
그래, 그녀는 나랑 결혼도 다르게 하겠지.....
갑자기 모르는 남자 전화 한통에 호들갑거리고 있는 자신이 비참해졌다. 거기다 정작 시간 때우려고 본 잡지의 기사가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기다린지 25분이 되어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핸드폰을 돌려달라고 했다.
그저 누군지만 확인하면 되니까 그리 많은 양의 충전도 필요하지 않으리라....
도대체 건전지로 되는 핸드폰은 왜 발명안하는 거얏, 지금까지 만들어놓은 충전기가 아까와서?
1시간만 써도 괜찮으니 급할 때는 차라리 건전지로 되는 핸드폰이 있었음 좋겠다....
다행히도 핸드폰 음성 메시지가 있음을 알리는 이모티콘이 있었다.
'음, 매너 있는 넘이군....음성도 남기고....'
하도 안써본 음성메시지함을 듣느라 비밀번호를 한번 틀리고 듣게 된 남자 목소리는....
'나 민준이야. 기억 해? 네 번호 수소문 하느라 힘들었다. 지금 리츠칼튼 호텔 1207호에 있는데 전화해주라....'
민준...이란 도대체 기억나는 이름이 아니었다. 거기다 리츠칼튼 호텔이라니....
이건 분명히 음모다...호텔방으로 날 불러서 어쩔려고?
혹시 내가 남자들 사이에서 은밀히 돌고 있는 '한번 자도 문제 없을 것 같은 노처녀 50명'에 올라간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여관이 아니라 호텔이니 괜찮은 상대라고 보고 일단 가서 분위기 파악한 후 '강간범'이라고 협박해 보상금이라도 받아볼까?
그런데 문제는 이 느끼할 정도로 다정스런 목소리 톤은 무엇이냐는 거지.....
민준, 민준, 민준...........
인터넷에서 검색이라도 해봐야 하나?
라는 생각하는 순간, 잊혀졌던 기억들이..................민준, 서민준.............에 관한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 약간 느끼한 목소리와 얼굴까지 또렷하게....
*우선, 1편의 열화와 같은 성화, 아닌 성원에 힘입어 2편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게시판에 첫글을 남기는 결의찬 의지로 올린 글인데, 잼있다고 해주시는 분이 있어서...
그리고, 이 소설 타겟은 나이가 좀 있는 여자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저도 나이가 나이인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