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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같이 가르침에 기초한 종교에서 보다,
기독교처럼 하나님, 성령이라든가 절대적 존재와의 교감을 중시하는 종교에서
거룩하다, 성스럽다 하는 느낌은 신앙을 유지시키고 재충전하는데
더욱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겠읍니다.
아주 잘 지은 성당이나 교회에서의 집회에 참가하면 마치 하나님이 가까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거룩하다' 또는, 기독교적 언어사용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성령이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 많은 사람들에게 어찌보면
교리보다도 신앙유지에 더 큰 역할을하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룩하다', '성스럽다'는 말은 4,5천년전 고대 이집트, 바빌론에서 이미 사용된
표현이었읍니다. 실제 칠일 한주일 제도를 창조한 바빌론에서는 한 주일의 마지막 날을
성스러운 날이라하여 음식도 요리하지 않고, 새 옷도 입지 입지 않고, 왕은 집무를 하지
아니 하였다고 합니다. 영어로 휴일이란 뜻의 holiday ( holy day )도 여기서 유래되었읍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하나님 신앙을 가졌던 고조선시대에 이미 성스러운 장소의 개념이 있어
소도라는 곳에 죄인이 들어가면 더 이상 추적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하지요.
고조선의 영향을 받은 부여, 고구려, 백제가 모두 이런 제도를 가지고 있었읍니다.
거룩하다는 느낌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어느 장소, 어느 시간에는 하나님 또는 성령이 실제로 가까이 와 있는 것일까요?
상가건물에 세든 천장이 낮은 조그만 교회에서는
거룩함의 느낌이 약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령이 그런 장소는 꺼리는 걸까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거룩하다는 느낌, 성령이 가까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상당부분 연출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교회는 수천년동안 이 거룩함의 연출기술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일요일마다 되풀이 되는 예배라는 이름의 '거룩한 최면'...
높은 천장, 성가대의 합창소리, 천사들을 연상시키게 고안된 그들의 의상,
연단의 조명장치,스테인드 글라스, 음향시설,
목사의 가라사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설교, 신도들의 아멘 합창소리,
파이프 올갠, 또는 피아노가 받쳐주는 찬송,성가 등등
의 것들이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켜 거룩한 집회에 있다는 느낌을 창출해 내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같은 교회내라도 앉은 장소에 따라 거룩하다는
느낌의 강도도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2층에 앉아 예배를 보면 거룩효과가 반감하게 되는 이유는, 우선 천장이 낮다는 것,
시선이 우러러보는 방향이 아니라 내려보게 된다는 것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성령, 하나님이 하늘쪽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하는 습성이 있으므로,
머리위의 공간이 없는 데다가 시선마저 아래로 향해야 하는 위치에서는
거룩한 느낌이 상당히 좌절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렇게 놓고보면 우리가 받는 거룩하다는 느낌, 성령이 함께 하고 있는 느낌은
상당부분 시각적 효과, 음향효과에 의해 인위적으로 창출되는 것임을 알 수 있겠지요.
어쨌든 사람들은 이 거룩한 느낌의 댓가로 헌금, 십일조를 선뜻 내놓게 되고,
종교사업자의 입장에서 은행빚을 내서라도 더 높은 천장에, 화려한 조명장치와
음향시설을 갖춘 교회를 짓는 것이 당연한 투자가 되게 되었읍니다.
그 결과, 이 거룩함의 연출력경쟁은 어느덧 우리 나라 교회간 경쟁의 핵심이 되어.
교회 대형화의 원인이 되었고, 이는 다시 한국 개신교의 타락의 원인이 되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겠읍니다.
빚을 내어서라도 교회를 크게
높게 짓는 것이 더 현명한 사업적 판단이 되게 만든 것은 결국 신자 개개인들의
거룩집착증 때문이라 생각한다면, 결국 한국개신교 몰락의 책임은
신도들의 거룩집착증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거룩함을 연출하는 자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한번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자신에 대한 찬양과 헌물의 댓가로
살아서는 '구원'과 '새생명'을,
죽어서는 '천국'을 주겠노라는
은밀한 조건을 당신에게 제시하는 '하나님' 앞에
어김없이 차려지는 그 '거룩함'의 연출......,
그 거룩함의 연출자들이 이 사회에, 이 나라에 뿌리고 있는
분열과 탐욕의 씨앗들,
그런 자들이 제시하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일 수 있을까요?
그들이 만들어내는 거짓된 거룩함에 현혹되어 탐욕의 자들 곁에 함께 서 있는 것이
자신과 이 사회와 이 나라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볼 때가
되지 않았던가요?
가장 거룩한 것은 우리 각자의 여기 존재함 그 자체가 아니겠읍니까?
당신이 이 세상에 생겨나 이 모든 것을 보고 듣고 활동하고 생각하고 사람으로 존재하는
그 이상 신비한 게 또 어디에 있나요?
그런 귀한 '본생명'을 저주하라고 요구하는 자들이 약속하는 '새생명'이 그럴 듯해 보이십니까?
우리를 이 땅에 이 나라에 보내주신 참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지성과 양심이라는 마음의 눈을 주셨읍니다.
이 하나님의 거룩한 징표로 우리 모두 자신의 신앙과 이 세상과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 저 비싼 돈을 주고 저런 옷을 입는 목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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