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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서 학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지나가는일... |2015.04.20 11:49
조회 371 |추천 0
흔히 말하는 명문대와 지잡대의 차별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이야기였다.
글쎄, 그게 과연 부당한 대우일지 모르겠다.

물론 사람대 사람으로 만나서 상대방을 학력으로 비웃거나 무시하는건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흔히 문제되는 취업시장에서의 차별이 근거없는 것일까?
기업은 이윤을 추구한다. 결코 취업난 해소나 고용봉사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채용은 기업이 필요한 노동력을 구입하는 행위이며 당연히 구매자는 불량상품을 거르고 질 좋은 것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기업은 바보가 아니다.
결코 학력만을 맹목적인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단지 인적성과 직무능력, 인턴 등으로 평가된 직무적응과 적합성을 기준으로 뽑다보니 학력과 비례하는 결과가 나올 뿐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명문대 졸업장은 소유자의 최소한의 지능과 성실성, 사회성을 보증한다. 여러가지 목적을 가진 특례로 입학한 사례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소수에 불과하고 일반적으로 명문대생은 학창시절 자신의 일에 충실하게 노력했다.
공부에 열중하는 모범생은 일진놀이에 심취한 양아치보다 명백히 성실하고 사회에 쉽게 적응하며 유능하다.

학벌사회 때문에 내가 이꼴이라는 사람을 보며, 난 속으로 학벌사회가 없으면 네가 그들과 경쟁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
학력은 역량을 평가하는 유효한 바로미터다.
지잡대생은 블라인드테스트를 해도 명문대생에게 진다. 불만을 가질 일이 아니다.

난 일단 02국번을 쓰지만 빈말로라도 명문이라기 민망한 일명 '서잡대'를 나왔다.
부당하다 생각지 않는다. 청소년기의 내 노력과 열정이 나타난 결과이니 받아들일 뿐.
사회에 나와서 명문대 출신들이 나보다 잘 나가지만 시샘하지 않는다.
그들이 나보다 유능하고, 당연히 받아야 할 과실을 받는거다.

그래서 이놈의 학벌사회 하며 술을 푸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생각한다.
결국 시스템은 수요공급법칙으로 돌아간다.
적합한 사람이 적합한 위치에 들어가게 되어있다.
어릴때 면학에 소홀한 나는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에 적합하고, 모범생 친구는 두뇌노동을 하며 산다. 그 친구의 자리를 시샘해봐야 별수 없는 일이니 괜히 분기를 내어 속상할 필요가 없다.

살면서 여러번 느끼는건데, 세상은 얼핏 부당한 듯 하지만 따지고보면 생각보다 굉장히 합리적으로 돌아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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