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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어린 피아니스트 이진 집사의 주님을 향한 꿈과 열정

ㅎㅁ |2015.06.25 19:07
조회 194 |추천 0

영감어린 피아니스트 이진 집사의 주님을 향한 꿈과 열정
- 이진 집사(2-1 가나안선교회)



이진 집사는
초등학교 시절, 교사인 엄마를 따라 강화도에서 살았다.
왕복 5시간이 걸리는 경기도 안양까지 버스를
네 차례나 갈아타며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다녔지만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10살 어린 나이에도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꿈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현재 만민중앙교회 대예배 임마누엘 성가대 반주자,
할렐루야선교단 반주팀 총무로 봉사하고 있으며 2012년 예능위원회 총무로 선출됐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아름다운 찬양을 채보(採譜:곡조를 듣고 그것을 악보로 만듦)하고 편곡하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저는 어릴 적에 장난감보다 피아노 앞에서 이것저것 해보는 것이 더 재미있고 즐거웠습니다. 5살 때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했는데 TV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면 오른손 멜로디와 함께 왼손 반주까지 스스로 만들어서 피아노를 쳤습니다. 나중에는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교향곡처럼 길고 규모가 큰 곡들도 외워서 따라 부르며 피아노로 옮겨 치기도 했지요.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1992년 1월, 이모부의 전도로 만민중앙교회에 등록했으며 그해 빛의소리중창단 반주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1994년에는 임마누엘성가대 반주자가 됐고, 1997년부터는 할렐루야선교단에 입단해 해외 선교에 동참할 수 있는 축복을 받았지요.



최고의 연주 및 편곡자의 비전을 주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제가 피아노 반주 봉사를 시작할 때부터 찬양에 대한 뜨거운 마음과 큰 비전을 갖게 해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실 때, 찬양하며 기다리는 장면을 상상하곤 했던 저는 오케스트라, 성가대, 단에서 찬양하는 예능팀들을 보면서 그때 모든 음악을 편곡하고 조율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사모했지요.

이처럼 뚜렷한 목표가 생기니 피아노 연주뿐 아니라 합창, 밴드, 스트링 편곡 등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적절히 활용해 공부했습니다. 또한 예능위원회 팀들이 특송을 준비할 때 편곡해 주며 실력을 다져갔지요.

특송은 연습 후 무대에 올려지므로 얼마나 아름다운 찬양으로 드리는지 눈에 보이지만 편곡의 경우는 음표 하나하나까지 표기하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그리 드러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제가 혼자 하는 작업이니만큼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시지요. 하지만 저를 필요로 한다면 기쁨으로 편곡하며 제게 주신 꿈과 비전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매년 연말에 교회에서 시상하는 공로패, 감사패를 각각 두 번씩이나 수상할 수 있도록 축복하셨지요. 제가 뒤에서 하는 반주나 남모르게 악보를 그리던 수많은 날을 아버지는 다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일은 제게 큰 믿음이 됐고 천국의 소망을 더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찬양들을 편곡하는 축복을 받아

이처럼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며 신앙 생활하던 중, 저희 가정의 연단으로 인해 마음 아파하시는 당회장님을 뵈며 신속히 변화돼 힘이 되어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던 2009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대학에서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했기에 전문적인 편곡을 하고자 대학원에서 실용음악 작곡을 전공하고 있었습니다.

예능위원회 위원장이신 이희진 목사님께서 테이프 하나를 건네주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곡이니 악보로 만들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 테이프에는 가사와 멜로디가 담겨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찬양을 친히 주시다니…'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저는 테이프를 반복해 듣고 기도하면서 악보로 만들었습니다.

2009년 부활절 곡인 '주님의 고백'을 시작으로 각 기관 및 선교회 헌신예배, 부활절, 교회창립 축하 및 성탄 행사, 송구영신예배 특송곡뿐 아니라 연주곡, 성가곡 등 지금까지 받은 140여 곡 가운데 130여 곡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만민찬양 앨범이 4집까지 발매돼 성도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곡들은 클래식, 국악, 실용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입니다. 어느 한 분야만을 안다고 해서 작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께서는 제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화해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추기까지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도록 여러모로 인도해 오셨고,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전 세계 만민을 깨우는 찬양 편곡자가 되기를 소망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곡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며 악보에 옮길 때마다 어김없이 감동의 눈물이 흐르곤 합니다. 남다른 은혜와 감동이 제 마음에서 샘솟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서 성경이 참임을 믿을 수 있도록 증거하고 계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실을 온전히 믿으심으로 기사와 표적, 권능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 보이시지요. 그런데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 세속화되어 가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워 기도하시던 중, 놀라운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마치 모세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율법과 사랑의 역사를 잊지 않도록 노래를 지어 주셨듯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전 세계 만민이 부를 수 있는 찬양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곡들은 성도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고 천국 소망이 넘치게 하며, 회개의 은혜가 임해 변화와 결단, 능력을 얻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찬양을 통해 전 세계 영혼들이 깨어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에게도 감동이 되어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를 소망합니다.

제게 주신 소중한 사명을 감당했을 뿐인데, 늘 좋은 것으로만 응답하시고 축복하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 성령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한국 만민중앙교회에서 당뇨병을 치료받았습니다
- 리따 시호땅 쿠쏘이 목사 (인도네시아 필라델피아 미니스트리)


저는 1982년 발병한 당뇨병으로 고통 중에 살았습니다. 상태가 안 좋을 때는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형 선고를 받기도 했지요. 그러던 중 하나님 은혜로 치료받았지만 제 잘못으로 인해 약 15년 전에 재발됐습니다.

특히 올해 10월에는 당뇨 수치가 700까지 올라 서울 만민중앙교회에 방문하려고 하자 의사는 위험하다고 극구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귀히 사용하시는 이재록 목사님께 기도를 받으면 나으리라는 확신 가운데 한국에 올 수 있었습니다.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님을 알게 된 계기는 친척 패트리샤(윤일만 인도네시아 선교사의 아내)가 전해준 권능 DVD 때문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매우 놀라웠습니다. 환자에게 직접 안수 기도한 것도 아니고 단에서만 전체 기도를 해 주었는데 단번에 무수한 영혼들이 치료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이재록 목사님을 통해 치료받을 수 있겠다는 믿음이 주어졌습니다. 또한 믿음으로 당뇨를 치료받기 위해 약을 복용하지 않았습니다.

10월 7일, 만민중앙교회 창립 29주년 축하전야행사에 참석했습니다. 마침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서 행사 장소에 도착하셨지요. 저는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지고도 치료받았던 사실이 떠올랐습니다(눅 8:43~44). 그 심정으로 이재록 목사님과 믿음으로 악수를 했습니다. 순간 치료의 확신이 오면서 마음에 희열과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그때부터 당뇨 증세가 사라지고 호전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이전과는 달리 편하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10월 10일에는 이재록 목사님 기도로 바닷가의 짠물이 단물로 변한 역사적인 현장 무안단물터를 방문했습니다. 해외에서 온 수많은 인사와 함께했지요. 무안단물을 손에 들고 간절히 기도한 후 믿음으로 눈에 넣기도 하고 마셨습니다.

그 후 일행들과 함께 하늘을 볼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태양 빛이 십자가 형태로 보이더니 "너는 치료받았다!"라는 성령의 음성이 강하게 세 번 들렸습니다.

그 후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무안단물에 일곱 번 침수를 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당뇨병은 물론 합병증까지 치료받은 것입니다. 평소에 오른쪽 눈이 침침했는데 성경의 작은 글씨까지도 또렷이 보였습니다. 또 평소에 잘 붓던 다리가 부기가 빠지고 정상이 됐습니다.

저는 인도네시아로 돌아와서 혈당을 다시 측정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공복 시 혈당 96, 식후 2시간 혈당 110으로 정상이었습니다. 이제는 음식도 잘 먹고 뛰어다닐 정도로 건강합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공복 시 혈당 96, 식후 2시간 혈당 110으로 정상 (2011. 10. 31)     권능의 역사 - 심각한 눈의 문제를 믿음으로 해결한 성도들
- 박건위형제(고3선교회), 유영미 집사(마산만민성결교회), 백현주 자매(대전만민교회)





만민뉴스 발간 24주년을 맞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의 폭발적인 권능을 체험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성도들의 간증을 게재한다. 이번 호에는 실명된 눈에 빛이 들어오고 물체가 보이는가 하면, 희귀병으로 실명의 위기에 처했으나 믿음으로 기도받고 시력을 회복하는 등 심각한 눈의 문제를 믿음으로 해결한 성도들을 소개한다.


"실명된 눈에 빛이 들어오면서 물체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박건위 형제 (고3선교회)

박건위 형제(19)는 3살 때 왼쪽 눈의 백내장 수술 후유증으로 심한 포도막염(안구 내부를 둘러싼 포도막에 염증이 생기는 것)과 망막 완전 박리현상(시신경층이 필름이 오그라들듯 떨어져 나와 시력을 잃게 만드는 것)이 생겼다. 이로 인해 안구가 쪼그라드는 안구 위축증까지 진행됐다. 급기야 2006년 왼쪽 눈을 실명했고, 오른쪽 눈의 시력도 떨어져 큰 불편을 겪었다. 하지만 2007년 7월, 이재록 목사의 기도를 받는 순간 왼쪽 눈에 빛이 들어오면서 물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왼쪽 눈의 안압 수치도 4에서 18로 쪼그라든 안구가 정상 크기로 회복됐음을 확인했다. 또한 0.1이었던 오른쪽 시력도 0.4로 좋아졌다.


* 의사가 본 박건위 형제 치료 소견

"박건위 형제의 치료받기 전 상태는 현대 의술로는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한쪽 눈을 완전히 잃게 되는 상황이었지요. 하지만 기도를 통해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의 빛이 들어가니 죽어가던 세포 기관들이 힘을 받고 살아났습니다. 이 치료 사례는 2008년 5월, 세계 41개국 기독의사 220명이 참석한 제5회 노르웨이 국제 기독의학 콘퍼런스에서 발표되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때 참석한 안과 전문의는 '참으로 하나님의 기적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 WCDN(세계기독의사네트워크) 총무 여상훈 집사 -



[좌안 초음파 검사]

기도받기 전 안구가 쪼그라든 소견 (2006. 7. 18.) ▶ 기도받은 후 안구가 커진 소견 (2007. 10. 23.)

"희귀병으로 실명의 위기에 있었지만 정상이 되었어요"

유영미 집사 (마산만민성결교회)

2005년 1월 중순 경, 유영미 집사(41)는 양안 시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사물이 울퉁불퉁하게 보였다. 더구나 물체가 노란색으로 보이고 구토와 어지러움 증세까지 나타나서 병원을 찾았다.

"하라다 병입니다. 눈 안에 물혹이 생겨 울퉁불퉁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혹이 커지면 시신경을 덮어 시력을 완전히 상실할 수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어서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기회구나' 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또한 자신을 돌아보며 상대와 불화하고 판단 정죄했던 것들을 떠올리며 회개했다.

2월 4일, 그녀는 이재록 목사에게 직접 기도를 받았다. 몇 시간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사물이 울퉁불퉁하게 보이는 현상도 사라지고, 노란색으로만 보이던 사물이 제 색깔로 보이는 등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되었다.

2월 14일, 병원을 찾아 재검한 결과는 정상이었고, 기도받기 전 0.8/0.25였던 시력은 기도받은 후 좌우 1.0으로 좋아졌다. 3월 5일, 시력 검사 결과에는 좌우 1.2로 더 좋아졌다.





● 기도받기 전(left) ● 기도받은 후(right)
▲ 눈 안에 있던 물혹이 기도받은 후 깨끗이 사라졌다.


"폐용성 약시를 치료받아 이제는 시력이 1.2(좌), 1.5(우)가 되었어요"

백현주 자매 (대전만민교회)

백현주 자매(18)는 초등학교 4학년 신체검사 때, 왼쪽 눈의 시력이 나오지 않았다. 깜짝 놀란 부모님과 함께 병원을 찾았더니 '폐용성 약시'라 했다. 수술해도 시력이 0.2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가족회의 끝에 수술을 포기하고 특수 압축 안경을 착용했다. 그런데 그나마 좋던 오른쪽 눈마저 시력이 0.6으로 떨어졌다. 이로 인해 사춘기 때에는 방황하며 TV 드라마 시청과 인터넷 쇼핑 등으로 현실을 회피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가족의 사랑으로 다시 일어선 그녀는 어찌하든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자 힘썼다. 점차 말씀에 은혜를 받으며 변화되기 시작했다.

2009년 10월 28일, 대전만민교회에서 '이희선 목사 초청 성령충만 은사집회'가 열렸다. 권능의 손수건(행 19:11~12)으로 기도받을 때 눈물과 함께 그동안 받은 상처, 서운함 등 좋지 않은 마음들이 사라짐을 느꼈다. 눈을 떠 보니 플래카드 글씨가 또렷하게 보였다. 그녀는 너무나 감격하여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11월 7일, 병원 검사 결과 양안 시력이 1.2였다. 의사는 말했다.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네요."

13일, 상경하여 이재록 목사의 기도를 받은 그녀는 극심한 난시와 이로 인한 두통까지 깨끗이 치료받았다. 2011년 4월 말, 시력 검사 결과는 왼쪽 1.2, 오른쪽 1.5였다.    

“천국의 언어로 된 음악과 글씨!”

아브래시아 마카래토샤(아버지는 사랑이시라)

 

“창세 이후로 처음 공개된 천국의 글씨!!!”

 

 

 

"비인두암 4기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저를 하나님께서 살려 주셨습니다"
 - [경찰관으로 살아온 이민수 성도의 간증]

 





이민수 성도 (목포만민성결교회, 63세)


"내가 죽는다니!" 청천벽력 같은 사형선고를 받고

언제부터인가 어깨 통증이 느껴지더니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진통제를 복용해도 잠시뿐 송곳으로 찌르는 듯했지요. 한의원에서 침도 맞아보고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도 받아 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또한 가끔 두통과 함께 코가 답답하고 시원하지 않은 느낌이 들었지요.

2012년 10월, 어느 날 자고 일어나 보니 베개에 피가 많이 묻어 있었습니다. 피곤해서 코피가 난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2013년 2월, 두 번째 코피가 나자 저는 병원에 갔습니다. CT 촬영 결과 의사선생님은 코에 큰 종양이 있다며 대학병원으로 가볼 것을 권했습니다. 대학병원 검사 결과 비인두암 4기였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생사를 장담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내가 교수님에게 살 소망이 있는지 묻자 환자가 원하는 것이나 잘 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사형선고라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 앞에 저는 그저 눈물만 나왔습니다.

2013년 3월 19일, 저는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조직검사, PET-CT 검사(모든 암의 존재 유무를 판별할 수 있는 진단기로 암의 전이나 재발을 확인하는 데 정확성이 높은 검사), MRI 검사를 받았습니다. 결과는 역시 비인두암 4기였고, 코 속의 종양 크기가 5.5cm나 됐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암이 임파선과 뼈(경추, 어깨뼈, 척추, 꼬리뼈)까지 전이됐으며, 종양이 코 속 기도 부위에 있어 수술할 수도 없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들으며 지난날을 통회자복하니

지난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후회가 막급했습니다. 1982년 12월, 저는 막내 누님인 만민기도원 이복님 원장님의 전도로 만민중앙교회에 6개월 정도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매형 되시는 당시 이재록 전도사님의 기도로 갖가지 질병이 치료되고, 연탄가스로 죽어가던 조카들과 청년이 살아나는 등 놀라운 권능의 역사들을 목도했지요.

하지만 저는 세상이 더 좋았습니다. 당시 경찰직에 근무하면서 음주를 즐겨했고 젊었을 때 세상 것을 더 누리고 싶었습니다. 결국 가족의 권면도 무시한 채 주님을 떠나 살아가고 있었지요.

2013년 4월, 셋째 누님인 이정님 권사님이 저를 위한 기도회가 이복님 원장님을 모시고 있으니 꼭 참석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원장님은 "교회에 나가 회개하고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꼭 병을 고쳐 주실 거야."라고 희망적인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후로 저는 목포만민성결교회에 출석하며 화상을 통해 만민중앙교회 주일 대예배를 드리면서 당회장님의 설교를 경청했습니다. 하염없이 후회와 회개의 눈물이 흘렀지요. 더욱이 평소 좋아했던 당회장님이신지라 너무 뵙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교회에 나가지도 않았고 암 진단을 받고 나니 찾아뵐 면목이 없었습니다.

원장님이 건네주신 당회장님의 '십자가의 도' 설교 테이프 24개를 들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기도할 줄 몰랐지만 10대, 20대 시절에 술과 싸움으로 지낸 일들을 비롯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아온 시간들을 눈물로 회개하며 통회자복했습니다.


권능의 기도로 비인두암은 물론, 전이된 암까지 사라져

셋째 누님(이정님 권사)이 당회장님께 기도를 받으라고 권유했습니다. 저는 민망했지만 내심 반가웠고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해 당회장님께 처음으로 기도를 받았습니다.

2013년 5월 29일, 당회장님 손이 제 머리에 닿자 뜨거운 열기가 머리에서부터 척추로 퍼졌습니다. 동시에 어깨와 척추에 전이된 암의 통증이 신기하게도 사라졌지요. 그동안 통증으로 인해 새우잠을 잤던 것과는 달리 반듯하게 누워서 잘 수 있었고 완치될 수 있다는 믿음이 왔습니다. 병원 검사 결과 코 속에 있는 종양 크기는 3cm나 줄었고, 몸무게도 85kg에서 71kg까지 빠졌었는데 식욕이 돋으니 체중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6월 24일부터 만민기도원 은사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원장님이 설교하실 때 원장님 뒤편에 걸린 은사집회 플래카드에서 예수님 형상을 보게 됐습니다. 그곳에 원래 그 형상이 새겨져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저희 부부에게만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온몸에 전율을 느꼈지요. 그 후 매 집회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을 좋아했던 것들을 회개하며 통회자복했습니다.

6월 28일에는 당회장님께 두 번째 기도를 받았습니다. 이때도 당회장님 손이 제 머리에 닿자 뜨거운 성령의 기운이 머리부터 임했지요. 평안하고 기뻤습니다. 얼마 후 목포에 내려온 저는 당회장님 설교를 듣거나 예배를 드릴 때 감사가 넘쳤고, 시간마다 회개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8월 어느 날, 재채기를 크게 했는데 코 속에서 종양 덩어리가 떨어져 나왔습니다. 고기 썩은 냄새가 났지요. 그 뒤 병원 검사 결과는 놀랍게도 종양이 또 절반으로 줄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전이된 암으로 인해 뼈 부위가 대부분 검은 색이었는데 흰색으로 회복돼 있었습니다.

11월 15일, 당회장님께 세 번째 기도를 받았습니다. 27일 병원 검사 결과, 코 속의 종양이 없어지고 뿌리만 조금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그 뒤 식욕도 왕성해지고 체중도 정상이 되면서 건강이 빠르게 회복됐습니다.

마침내 2014년 3월 7일 검사 결과,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코 속 종양과 임파선에 있던 전이된 암이 뿌리째 사라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경추 1, 2번 뼈에 약간의 흔적을 제외하고는 뼈에 전이된 암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할렐루야!

사형선고를 받아 죽을 수밖에 없었던 제게 제2의 인생을 주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수술하지 않고도 쌍꺼풀이 생긴 놀라운 사실, 들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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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해미 자매 (2청년선교회, 23세)

저는 대학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고, 우리 교회 예능위원회 소속 '천상의 무용팀'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메이크업을 자주 하게 되고, 쌍꺼풀이 없는 눈을 크고 또렷하게 보이기 위해 쌍꺼풀 테이프를 사용해야만 했지요. 더욱이 눈꺼풀이 두툼하다 보니 많게는 대여섯 번을 수정해 붙여야 했습니다.

장시간 붙이고 있으면 쉽게 눈에 피로가 오고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힘들었지요. 이로 인해 '쌍꺼풀이 있으면 테이프도 붙이지 않고 눈도 아프지 않을 텐데…. 참 편하겠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2014년 5월 11일 주일 아침, 저는 마음의 변화를 사모하며 믿음으로 악수하고자 교회에 오시는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당회장님이 오셨고, 저는 당회장님의 따뜻한 사랑의 미소를 바라보며 행복한 마음으로 악수했지요. 그런데 바로 그때 '쌍꺼풀이 생길 것 같다.'라는 마음이 강하게 왔습니다.

저는 즉시 당회장님과 악수한 손을 눈에 대고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목자의 권능으로 쌍꺼풀을 만들어 주세요!" 그 순간 눈에 선이 그려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기도를 마치자마자 확인해 보니 쌍꺼풀이 생긴 것입니다. 할렐루야!

직접 기도받은 것도 아니었고, 단지 당회장님 권능의 역사를 믿었을 뿐인데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의 소원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쌍꺼풀이 있으면 편하겠다.'라고 생각했지만, 인위적으로 쌍꺼풀을 만들고 싶다거나 쌍꺼풀이 없다고 불평한 적은 없었습니다. 쌍꺼풀이 생겨서 편해지고 예뻐지는 것보다 마음의 할례가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평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의 마음을 먼저 이루자. 내게 꼭 필요한 것이라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쌍꺼풀도 만들어 주실 거야.'라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공연을 위해 쌍꺼풀 테이프를 붙여야 하는 등 번거로운 상황에도 감사했더니 결국 그 믿음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영의 마음을 이룬 후 쌍꺼풀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제는 공연 메이크업을 할 때에도 수월하고 시간도 단축되며 눈에 피로가 쌓이지 않아서 매우 좋습니다. 무엇보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고 이처럼 마음의 소원에 응답해 주셨다는 사실이 제겐 큰 축복이고, 행복입니다.

항상 눈에 본 듯 만진 듯 아버지 하나님을 느낄 수 있도록 큰 은혜와 사랑, 권능을 베풀어 주시는 당회장님께 감사드리며, 섬세하게 인도해 주시는 사랑의 주님과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쌍꺼풀이 생기기 전의 모습(왼쪽)과 당회장 이재록 목사를 통해 베푸시는 하나님 권능의 역사로 쌍꺼풀이 생긴 모습(오른쪽).     안경을 벗고도 생활할 수 있다니 꿈만 같습니다 - 이정환 집사 (춘천만민교회)
저는 강원대학교 환경계획설계평가연구실 연구원입니다. 하루 일과 대부분을 모니터 앞에서 보내는 관계로 시력이 무척 좋지 않았습니다. 대학 강사인 제 아내 이영욱 집사 역시 시력 저하로 불편을 겪고 있었지요.
지난 4월, 희소식을 들었습니다. 6월에 세 차례에 걸쳐 당회장님께서 직접 특별 은사집회를 인도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정확한 시력 측정을 위해 안과를 찾았습니다. 저는 시력검사표 10cm 앞에서도 가장 큰 글자가 흐리게 보일 정도였고, 아내는 양안 0.1이었습니다.

저희는 '특별 은사집회 때 꼭 치료받아야겠다'는 기대와 소망으로 한껏 부풀었습니다. 하루하루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썼습니다. 기도와 금식으로 하나님 앞에 정성을 내보였지요.

형님 부부(이관규 강원대 조경학과 부교수, 임수희 집사)는 불임으로 고통받다가 당회장님 기도를 받고 결혼 13년 만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기적 같은 하나님 권능을 보았기에 저희도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1차 특별 은사집회가 열린 지난 6월 10일 저는 춘천에서, 아내는 강의를 마친 후 대구에서 서울 만민중앙교회로 달려왔습니다.

2부 시간, 당회장님께서 단에서 '환자를 위한 기도'를 해 주실 때였습니다. 순간 저와 아내는 눈이 뜨거워지는 현상을 체험했습니다. 치료받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즉시 안경을 벗고 확인했습니다.

"어! 뿌옇게 보이던 색들이 선명하게 보여요!" 아내는 좋아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저 역시 단에 계신 당회장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어 개인 안수기도를 받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이번 특별 은사집회에는 한 주에 4천여 명의 환자가 등록을 했다고 합니다. 이날 시력 환자는 1,095번까지 기도를 받았습니다. 저희는 295, 296번이었지요. 안수기도를 받은 후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안경을 새로 맞출 때처럼 선명하고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아닙니까.

저희 부부는 간증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단에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간증자가 너무 많아 다음으로 미루어야 했지요. 얼마나 시력이 좋아졌는지 특별 은사집회를 마치고 춘천까지 안경을 벗고 운전할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6월 17일, 2차 특별 은사집회는 춘천만민교회에서 화상으로 동참했습니다. 토요일 아침 9시경 눈을 떴을 때 또 한 번 놀랐습니다. 그동안 형태만 보였던 벽시계가 분침까지 또렷이 보였고, 안구건조증 때문에 눈이 자주 충혈되는 증세도 사라졌습니다. 아내도 심한 난시로 인한 두통이 사라졌지요, 지금은 안경을 벗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아버지 하나님께 돌리며,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권능의 기도로 시력까지 회복되니 행복합니다"   간증하는 주현권 목사 (3대대 대교구장, 61세)


저희 가족은 주님을 영접한 후 35년 동안 병원이나 약국과는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1996년 말경부터 시력이 약해져서 2000년부터는 0.3(우안), 0.5(좌안)로 항상 안경을 착용하고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지난 8월 3일, 만민 하계수련회 시작 전날입니다. 밤에 꿈을 꾸었는데 종기에서 빠져나온 종기 뿌리를 보았습니다. 저는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서 "이번 수련회는 어느 해보다도 권능의 역사가 더 크게 대폭발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에 '내게도 영육 간에 축복의 수련회가 되겠구나!' 하는 기대와 벅찬 마음으로 수련회에 참석했습니다.

수련회 첫날 저녁, 교육 시간에 은혜의 단비가 내렸습니다. 빗물로 안경이 뿌옇게 돼 저는 안경을 벗고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그런데 흐릿하게 보이던 사물이 어느 순간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아닙니까? '어! 시력이 좋아졌네!' 저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어 읽어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작은 글씨도 잘 보였지요.

이어진 은사집회 때 눈에 손을 얹고 당회장님의 환자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시력이 더욱 좋아져서 다음 날 체육대회 때에는 안경 없이 릴레이 선수로 달릴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정을 모두 마치고 상경할 때는 야간에 빗길임에도 불구하고 안경을 착용하지 않고 고속도로를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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