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고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고독을 통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깊은 사색과 명상을 통해 자신의 포함한 세계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은 고독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반면 고독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많다. 가족이나 친구 혹은 연인 등 세상 사람들로부터 소외받는 것을 걱정하고 두려워한다. 심지어 극심한 고독감에서 비롯되는 공포와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듯 고독은 사람과 상황에 따라서 긍정과 부정의 상반된 경향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들은 가능하다면 고독의 긍정적 기능만 남겨두고 부정적 기능을 제거할 수 있는지,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차라리 그 고독을 제거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시인 김소월의 산유화(山有花)에서 노래한 것처럼 인간은 운명적으로 고독을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신(神)처럼 영원히 살 수 없는 유한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고독의 외로움을 떨쳐버리기 위해 가족이나 친구 혹은 연인(戀人)을 간절히 찾는다. 심지어 고독을 극복하기 위해 종교를 찾고 바커스(酒神)를 사랑해도 모두 부질없는 것이다. 오히려 고독의 수렁을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쓸수록 더 깊은 방황과 고독의 고통 속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운명적 고독에 패배하여 무기력한 삶을 지속하거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 해답을 얻기 위해, 나는 한 흑인 소년의 일화를 들려주고 싶다. 한 소년은 자신이 흑인이라는 것을 저주하고 백인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런데 그는 우연히 누군가로부터 매일 강가에 가서 몸을 깨끗이 씻으면 백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매일 아침에 강가에 나가서 저녁까지 오래도록 돌로 자신의 몸을 씻고 닦았다. 소년은 자신의 몸에서 피가 흐르고 고통스러워도 멈추지 않고 씻었다.
어느 날 그 흑인 소년은 갑자기 자신이 백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백인보다 흑인의 피부가 더 아름답다는 것을 알았다. 소년은 지금까지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고 저주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그는 자신에 대한 소중함과 자신감을 회복하고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 일화는 나중에 흑인 지도자가 된 말콤 엑스(Malcolm X,1925~1965)의 이야기가 각색된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일화를 통해, 우리들은 운명적 고독과 관련하여 외로움이 운명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긍정하고 수용하는 자세부터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오히려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왜곡되고 잘못된 고독의 도피는 더 깊은 방황과 좌절 그리고 고통을 안겨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흑인 소년처럼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고 다시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은 과제는 자신감의 회복일 것이다. 나는 훌륭한 친구를 만나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 좋은 친구는 책이 될 수 있고, 훌륭한 스승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단순한 고독의 도피나 망각으로 허송세월을 보낸다면, 더욱 고통에 찬 고독이 그대를 괴롭힐 것이다. 오히려 고독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찾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정신적 교양이 될 수 있는 책을 찾아보는 것도 고독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지혜가 아닐까 싶다.
http://www.cyworld.com/1004soung
(깨달음의 시간과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