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28년에 태어났습니다. 전쟁이 났을 때, 우리 가족은 디비조리아 근처 산티아고 마을, 이사벨라 지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1940년 우리집은 일본에 의해 불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전하게 숨을 곳을 찾아 산 속으로 갔습니다. 전 큰 축에 속해서 강가에서 빨래하는 일을 맡아 했습니다.
그 강에서 꽤 많은 여자들이 빨래를 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가 빨래를 하고 있을 때 일본군 7명이 왔습니다. 그 중 한 명은 칼을 가지고 있었는데 전 그 사람이 장교일거라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 저를 붙잡았고 이사벨라의 산티아고에 있는 일본군 주둔지에 가게 되었습니다.
전 너무 어려서(당시 14살이었으니까요) 뭔가를 해볼 수도 없었습니다. 8일간 그들 사령부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절 잡아간 사람은 제게 강요와 위협으로 매일 성적 요구를 해왔습니다. 첫 날, 전 같은 사람에게 7번이나 당했습니다.
1주 후 전 도망칠 수 있었는데, 당시 도망치다 죽는 것이 매일 때로는 하루에 7번씩이나 절 괴롭히는 일본 장교 밑에서 계속 사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건 제 일생에서 가장 괴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 당시 전 무척 어렸고 성에 관한 어떤 것도 잘 몰랐습니다. 도망칠 때가 새벽 2시나 3시였는데, 다행히 붙잡히진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우리가 농사지은 물건을 가지고 마을에 빨리 나갈 때 이용하는 길로 갔는데, 덤불 투성이였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오후 5시쯤 되었는데,제가 이미 죽은 줄 아셨던 부모님은 엉엉 우셨습니다. 잡혀있는 동안 제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설명드리자, 어머니께서는 제가 임신했을까봐 쓴 약초를 달여 먹이셨습니다.
1945년, 우린 이사벨라는 떠나 누에바 에치자로 옮겨 갔습니다. 거기서 전 제 남편을 만났고, 그가 청혼했을 때 일본인이 제게 무슨 일을 했는지 말했습니다. 그는 그것이 제 잘못이 아니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린 결혼해 행복하게 잘 살았고, 자식들 4명과 손자들까지 보았습니다. 지금은 팜팡가에 살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위안부'에 관해서 듣게 되었고 롤라 로사가 말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제 자식들은 제게 어떤 일이 있었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제 이야기를 처음으로 한 때가 바로 그 때였나 봅니다.
하지만 애들은 과거사를 들춰내기에는 전 이미 늙었다며 저를 말렸습니다. 전 단지 제가 겪은 일에 대한 정의를 원할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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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위안부 피해자인 나모니타 발라자디아(필리핀) 할머니의 증언입니다. 일본 정부는 이미 충분한 배상을 했다고, 위안부 피해자들은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었다고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서경덕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 대학생들의 대부분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올해에만 벌써 7명이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한국에 남은 생존자는 48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