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이상하다. 요즘들어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증상이 심해진 것이다. 언니는 “저리가 저리가”라는 말과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행동은 따로따로 했었는데 요즘들어 두가지가 합쳐져 한꺼번에 일어난다.
병원에 가기 위해 언니가 외출을 하게 되었다. 난 그때마다 주로 동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으로 언니가 차안에서 하는 행동들을 보게 되었다. 엄마는 운전을 하고 언니와 나는 뒷자석에 나란히 탔다. 언니는 차가 지하 주차장에서 벗어나자마자 주변 간판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 간판들은 공통점이 없이 그냥 붙어있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읽을 간판이 없을 때는 도로표지판도 읽어댔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언니가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냥 나오는 행동들이 아닐성 싶다. 솔직히 어린아이도 아닌 성인이 차를 타고 가다가 보이는 간판을 계속 소리 내어 읽는게 일반적이지는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병원에는 대기자로 넘쳐나서 우리는 제시간에 진료를 받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시간이 매우 불편했다. 이유는 사방천지에 정신병자들로 득실거리는데다 언니가 이 많은 사람들속에 있는 것이 익숙하지 않을테니 이상행동을 보일까봐 조마조마했기 때문이다.
의사는 언니에게 평범한 질문들만 했다. 그리고는 약을 처방하곤 끝이었다. 이 먼 곳 까지 언니를 데리고 온 우리의 힘들었던 여정이 헛수고 같아서 짜증이 났다. 의사를 대면한 시간이 3분도 되지 못했다. 이 2분 몇십초를 위해 우리는 이동시간만 대략 3시간 반이 걸렸다. 또한 아침에 일어난 시간은 새벽 5시였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우리는 매우 조용해서 언니의 간판 읽는 소리만이 공기를 채웠다.
또다시 일상이 시작됐다. 푸르스름한 새벽 부엌에 서서 당근을 씻고 썰면서 머릿속의 잡생각들을 떨치려 애를 썼다. 당근이 즙을 내는 것을 보면서 문득, 내 신세가 당근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깨끗이 씻기고 조각조각으로 잘려 으깨어지며 즙이 되버리는....지금 내가 이렇게 타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필요한 부분만 즙처럼 짜지고 나를 이루던 겉껍질들이 버려지는...지금 필요없는 이 진짜 나는 버려지는 그런 기분이든다.
당근 주스가 한잔, 두잔, 세잔....이제까지 내건 없었구나...그래 내가 나를 먹을 순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