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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盧武鉉) 평전(評傳)』7. ‘바람’으로 탄생한 최초의 ‘시민’ 대통령 ⑸

대모달 |2015.10.17 21:08
조회 84 |추천 0

● 무엇보다 왜곡이 문제였다.

 

“대통령직 못해먹겠다.” 노무현이 취임 석 달여 만인 2003년 5월 21일 청와대에서 했다는 이 말은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언론은 연일 비난의 화살을 퍼붓고 야당은 때를 놓칠세라 마구잡이식 공세를 가했다. 일반 국민들도 이 발언을 두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고, 술자리에서는 안줏감으로 회자되었다.

 

광주시민항쟁 23주년을 맞아 노무현은 5월 18일 오전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찾았다. 일단의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대통령 일행의 차량 행렬을 막으면서 소란이 벌어졌다. 노무현은 이날 어렵게 묘역에서 참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흘 후 5·18기념재단이사장 강신석 목사와 정수만 유족회장 등 5·18행사추진위원회 간부들이 망월동 묘역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사과하고자 청와대를 방문했다.

 

˝자리가 자리였던만큼 청와대 접견실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다소 어색하고 무거웠다. 강 목사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 번 기념식에서 불미하고 예의에 어긋나는 일로 누를 끼쳐 죄송합니다. 의도된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그런 결과가 나타나 마음이 아픕니다. 언짢은 것이 있으시면 푸시고….” 간곡한 사과의 말이 건네졌다. “그런 것은 아니고…”라며 노 대통령이 잠시 말을 받았다. 강 목사는 ‘젊은 학생들이 혈기가 있어 다소 실수가 있었습니다.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너그럽게 생각하셔서 법적으로 문제가 있더라도…”라며 재차 선처를 부탁했다. 노 대통령은 “(마음이) 넓고 좁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분이 상하고 안 상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라며 길게 말을 이어갔다. 국정을 원만하게 이끌어가야 하는 대통령으로서의 고충을 호소하는 노 대통령의 말이 이어지자 접견실의 분위기는 한층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을 당한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언급할 수 있는 발언 내용이었다. 노 대통령은 잠시 후 “모두가 힘으로 밀어붙이려고만 하니 이러다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는 위기감이 듭니다” 라는 다소 직설적이고 거친 화법으로 자신의 심정을 토해냈다.˝ - 고성표,「서갑원 육성증언」,『월간 중앙』, 2004년 1월호, 139쪽.

 

이런 맥락에서 나온 대통령의 발언이 앞뒤 잘리고 변질되어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로만 언론에 보도되어 비난을 사게 된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인격 모독의 언사까지 공공연하게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 ‘발언’은 한때 세간의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노무현은 실제 정제되지 않은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자신도 이를 인정했다.

 

˝저도 대통령이 될 줄 알았으면 미리 연습을 하는 것인데, 체질적으로 제가 허리를 잘 굽히는 편이고 윗자리에 앉으면 불안해지고, 말은 위엄있게, 행동은 기품있게 할 필요가 없는 환경 속에서 살았습니다. 대통령을 준비하면서도 그런 생각은 못 했습니다. 준비 안 된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다른 점에 있어서는 승복하지 않지만 언어와 태도에서 이야기한다면 충분히 훈련받지 못했던 점은 있습니다. 우리 아내가 어디 행사장에 들어갈 때 고개 숙이지 말고 똑바로 걸으라고 하는데 저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집니다.˝ - 노무현,《성공과 좌절》, 학고재, 179쪽~180쪽.

 

노무현은 “무엇보다 말이 문제였다”고 토로했다. “나는 구어체 현장 언어를 구사했으며 반어법과 냉소적 표현을 즐겨썼다. 원래 그렇지는 않았는데 인권변호사로서 민주화운동을 할 때 이런 언어 습관이 생겼다. 그 때는 청중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표현이 필요한 시대였다. 언로가 막혀 있었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사회에서 반정부 투쟁을 하는 데는 그런 어법이 효과가 있었다. 야당을 할 때에도 억울한 노동자들을 돕는 활동을 하다 보니 정서적으로 격앙된 때가 많아서 그렇게 했다. 대통령 후보가 되고 선거를 하는 과정에서 언어습관을 고쳤어야 했다. 권위주의적 대통령 문화는 극복해야할 문제였지만, 국민들에게 믿음과 안정감을 주는 품격 있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그 일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고나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독재자들의 폭력적 권위주의는 물론이고 민주화운동을 지도하면서 쌓인 민간정부 지도자들의 카리스마적인 권위에 식상해온 국민과 언론은 탈권위주의 지도자를 원했다.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이 태어난 정치사회적 배경이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노무현의 탈권위주의적 언행, 구어체 언어에 대해 금방 비난이 쏟아졌다. 언행이 가볍다, 감정적이다, 즉흥적이다 등의 비난이었다. ‘탈권위주의’와 ‘마사지’되지 않은 말을 원하면서도 막상 그렇게 말하는 대통령을 비난하는 ‘세뇌된 이중성’이였다.

 

당시 청와대 참모에 따르면 사실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는 “참 힘들다”는 뉘앙스의 ‘푸념’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노무현 특유의 ‘농담’이었다. “참석자들도 대통령의 그런 표현에 모두 파안대소했고, 그 발언 한 마디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변했다. 언론이 이런 정황을 무시하고 오직 그 대목만을 강조하는 바람에 예상치 못하게 파장이 커진 것이다.”

 

이 발언의 주인공이 노무현이 아니고 전두환 같은 독재자나 권위주의 대통령의 말이었다면, 족벌신문들은 위트, 유모어, 해학, 여유, 넉넉함, 설득력 ‘분위기 맨’ 등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하여 치켜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그의 말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비틀어 보도하고 인용한 탓에 현장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던 말도, 품위 없는 이상한 말이 되어버리곤 했다.” 

 

노무현은 천성적으로 위선이나 가식, 권위주의를 싫어한다. 소탈한 성격, 평민의식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언젠가 접견실에서 나온 노 대통령은 ‘왜 이렇게 내 의자는 높게 내놓았느냐’고 하면서 의자 높이를 손님들 자리 의자와 맞춰 낮추라고 지시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는 생각이 들어 좋지 않다고 본 것이다.”

 

● 정상회담을 통한 첫 외교 활동

 

노무현은 취임 첫 해에 주요 우방국가들과의 정상회담을 비롯하여 폭넓은 외교 활동을 벌였다. 선거 과정에서 미국에 한 번도 가지 않은 것이 쟁점이 되기도 했으나, 5월 미국을 방문하여 조지 부시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가진 데 이어 태국에서 재차 한·미 정상회담을 다시 갖는 등 활발한한 외교 활동을 벌였다.

 

˝미국·중국·일본 방문에 이어 블레어 영국 내각총리를 초청하여 7월 20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재확인하고, 이를 위해 다자회담이 조속히 개최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블레어 총리는 회담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핵 문제는 북한 미군 중국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도 반드시 참여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다자회담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하고 해외로 수출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도 “블레어 총리와의 회담에서 북한이 디자회담에 참여하도록 외교적인 노력을 계속하기로 했다”며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지금은 6개월 전에 비해 상황이 안정된 것이 분명하다”고 표명했다.

특히 블레어 총리는 “이라크의 대량 살상무기 문제와 북한 핵 문제는 명백히 다르다”면서 “이라크 문제나 북핵 문제 모두 똑같은 위기감이 있지만, 이라크 문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반면 북핵 문제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피력했다.

두 정상은 또 북한의 핵개발 계획을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폐기해야 하며, 북한 핵이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 데에도 의견을 일치했다.

이어 두 정상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국제사회는 북한에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 테러 근절 △ 이라크 문제 등 국제사회의 현안 해결에도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회담에서 블레어 총리는 ‘노 대통령이 가까운 시일 내에 영국을 방문해 달라”고 초청했고 노 대통령은 “가보고 싶다” 고 회답했다.˝ -〈한겨레신문〉, 2003년 7월 21일자.


노무현은 7월 25일 헬렌 클라크 뉴질랜드 내각총리와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양국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하는 등 양국의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다. 노무현은 이 자리에서 양국간 청소년 교류확대를 제안했고 클라크 총리는 “현재의 ‘워킹 홀리데이 프로그램(관광취업사증)’을 계속 확대해 나가겠다”고 화답했다.

 

10월 19일~23일까지 방콕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노무현은 중국, 미국, 일본, 싱가포르 정상들과의 연쇄 정상회담을 갖고 주요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협조를 요청했다.

 

19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가진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재확인하고, 6자회담의 조기 개최를 위해 양국이 적극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후 주석은 이날 회담에서 노 대통령이 “북한이 최근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우려하자 “북한이 6자회담의 분위기를 악화시키지 말고 조속히 협상 테이블로 돌아와 회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피력했다. 노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그들의 체제를 유지하고 개혁, 개방을 점진적으로 해나가도록 도와줄 용의가 있다”고 표명했다.

 

다음날 오전에 가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2차 6자회담 조기 개최 필요성에 공감하고 다자간 틀 내에서 북한에 안전보장을 해주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이날 오후에 가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내각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는 2005년 내에 양국간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목표로 올해 안에 정부 간 교섭을 개시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한·일 사회보장협정 타결 노력, 한·일 세관상호지원협정 조기 체결 노력, 한국인의 일본 방문 비자 면제 조기 실현 노력, 김포-하네다 항공편 운항 조기 추진 등에 합의했다.

 

회의 마지막 날인 23일에는 고촉동 싱가포르 내각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정부간 협상을 내년 1월에 개시해 1년 안에 타결키로 합의했다. 노 대통령은 또 “동북아와 동남아간에 협력이 구체화되고, 한국ㅡ아세안 간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검토·추진하고 있는 만큼 ‘아세안+3개국(한국·중국·일본)’ 회의를 동아시아 공동체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고 총리는  양국의 몇몇 기업을 선정해 양국의 증권시장에서 전자거래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과 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 등 아세안 후발국에 대한 기술 지원을 양국이 공동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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