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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에 쓰는 이야기

스푸트니크 |2015.12.13 02:30
조회 15,291 |추천 51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누군가가 묻는다면 저는 항상 겨울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냥 겨울도 아닌 뼈가 시리고 살이 에는 듯이 추운 겨울이요. 저는 워낙에 추위를 별로 안 타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겨울에 맞닿는 체온이 전 참 좋더라고요. 여름에는 덥고 습하고 땀도 나니까 누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불쾌지수가 높아지는데, 겨울은 오히려 누군가가 있을수록 포근한 느낌이 들잖아요. 전 그게 참 좋더라고요. 뭐, 꼭 누군가와 살을 부대끼고 있지 않더라도요.

 

문득, 12월인데도 생각보다 참 춥지 않다는 생각이 들길래.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네요. 20대 중반을 넘어선 남정네에게 크리스마스는 아무 감흥도 없는 날이지만, 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괜히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크리스마스 때문이 아니라, W의 생일이 그 즈음이거든요.

 

 

 

 

고등학교 1학년 때는 W의 생일을 몰랐었어요. 우리들은 서로 생일을 챙기고 그런 게 딱히 없었어요. 생일이라고 용돈 받았다고 한턱 쏜다든가, 그런 경우는 있었지만 따로 축하해준다든지 선물을 준다든지 파티를 한다든지 그런 건 전혀 없었죠. 그냥 만나서 노는 게 다였죠. 본인이 생일이라고 밝히지 않는 이상 친구 생일에는 관심도 없어서 서로 묻지도 않았었죠.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주민등록증 발급 시기가 오면서 누구는 발급을 받았네, 누구는 곧 다가오네 뭐 이런 화제로 대화한 적이 있었죠. 그때가 2학기였는데, 전 이미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을 때였고, 다른 친구가 민증사진을 찍었는데 너무 못생기게 나왔다느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그러다, W에게 넌 발급받았냐, 물으니까 아직 통지서도 안 왔다고 하더라고요. 생일이 언제냐 물으니, 한참 남았다고 했나, 어쨌든 바로 말을 안 해주더군요. 그래서 다시 또 물었죠. 생일이 언제냐고. 알아서 뭐하게, 뭐 이런 식으로 말을 돌리더군요. 결국 말을 안 해줬죠, 그게 뭐라고. 참, 별 것도 아닌 걸로 비싸게 굴었죠.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저도 궁금한 건 못 참아서, 몇 시간 있다가 둘이 있을 때 또 물어봤죠. 그랬더니 왜, 챙겨주기라도 하려고? 라고 되묻더라고요. 제가 뭐라고 대답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성격상 챙겨주겠다고 장난스럽게 대답했을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몇 번의 집착 끝에 결국 생일을 알게 됐죠. 12월 24일이더라고요.

 

크리스마스 이브가 생일이냐며 제가 약간 놀랐었죠. 종교는 없지만 괜히 특별한 날 같잖아요? 그래서 좋겠다고 했는데 전혀 좋을 것도 안 좋을 것도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다가 제가,

 

하긴. 크리스마스 이브가 생일이면 선물을 한번 밖에 못 받겠네,

 

라고 했었죠. 왜 그렇게 말했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왜냐면 저 역시도 크리스마스랍시고 선물 받아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다들 선물 주고 받는 분위기니까, 그렇게 말했던 것 같아요.

 

 

선물같은 거 받아본 적 없는데, 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또 놀라서, 생일선물 받은 적 없냐고 물었었는데, 없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집은 가족들 생일을 꼭 챙기거든요. 초등학생 때 이후로 친구들 초대하는 생일파티 같은 걸 하지는 않았지만, 생일엔 꼭 같이 저녁식사하고 대학생때까진 선물도 받았었죠. 졸업하고 나니까 선물 대신 돈으로 주시긴 하셨지만. 어쨌든 저 역시도 반드시 챙겨드리고. 전, 그게 그냥 당연한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W집은 좀 좋게 말하면 마이웨이랄까. 개인주의랄까. 서로 터치도 안하고 관심도 안 갖고 대화도 별로 없는 그런 집이었죠. 엄청 화목하고 화기애애한 집은 확실히 아니었어요. 집 자체는 좀 많이 풍족한 집인데, 그냥 그게 다였던 것 같아요. W 집에 놀러갈 때 종종 느꼈던 건, 집이 이렇게 좋으면 뭐하나, 사람 사는 냄새가 안 나는데, 이런 생각을 자주 했었거든요.

 

그렇다고 W가 불행한 가정은 전혀 아니었어요. 그저 부모님 두 분 다 바쁘셔서 집에 잘 안 계시고, 생일이면 그냥 용돈 주시는 그런 집. 그래서 W가 저렇게 차갑고 개인주의적인 성격으로 컸나, 싶네요 갑자기.

 

 

살아보니까, W처럼 자라온 사람들이 제법 많더라고요. 근데 그땐 W집이 이상하달까? 좀 낯설어서, 왠지 W가 측은하게 느껴지더군요.

 

 

 

W는 생일날, 선물은커녕 축하조차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단 건 나중에 알게 된 건데, 그건 아마 W가 한번도 자기 생일을 말하지 않아서 그랬지 않을까 싶어요. 여자친구한테도 다른 친구들한테도 생일이야기하는 걸 싫어하더라고요.

 

 

이건 다른 얘기지만, 주변에 유독 주목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 있지 않나요. W가 딱 그랬거든요. 그렇다고 다른 사람 눈치를 본다거나 주변 분위기를 따라주는 유한 성격도 아닌 주제에, 주목 받는 건 또 싫어했죠. 근데, W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친구가 주변에 있다면 아시겠지만, 주목받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성격이죠. 그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자기가 싫은 건 죽어도 안 하는, 자기 내키는 대로 사는 그런 성격은 사실 저절로 주목받을 수밖에 없지 않나, 싶거든요 제 생각엔.

 

 

 

언젠가, 강당이 아니라 교실에서 전교생조례(?)를 한 적이 있었죠. 그걸 뭐라고 말해야 할지 용어가 생각나지 않는데, 어쨌건 교실에서 TV 모니터 켜놓고 교장선생님 말씀 듣고 뭐 애국가도 부르고 그랬었죠.

 

다른 학교는 모르겠지만 저희 학교는 꼭 전교생 모아놓고 교장선생님이나 교감선생님께서 직접 상을 주셨거든요. 강당에서 보거나, 교실에서 화면으로 보거나 했죠.

 

 

강당에서 할 때는, 상 받는 애들도 자기가 상 받는 걸 모른 채로 이름이 불리면 나가는 거라서 W도 몇 번 그렇게 상을 받곤 했었죠. 교실에서 조례를 할 때는, 선생님이 상 받을 애들을 불러서 그 교내방송 촬영하는 장소(?)로 보내셨거든요. 상 받고 오라고.

 

 

근데 한번은, 또 조례시작 전에 담임선생님이 W를 부르시더라고요. 그래서 친구들이랑 전, W가 또 상 받나보네, 했었죠. 교실에서 다 같이 서서 모니터를 보면서 상 받는 애들 박수나 쳐주면서 W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 끝날 때까지 W는 안 나오더라고요. 뭐지, 의아해 하면서 조례가 끝났고, W가 손에 상장을 들고 교실에 돌아왔었죠.

 

너 상 받으러 간 거 아니었냐고, 왜 넌 안 나왔냐고 물었었죠.

W가 한다는 말이,

자긴 전교생이 다 보는 자리에서 상 받는 그 상황이 너무 싫어서 앞에 서고 싶지 않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다고 하더라고요. W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데 저희는 그게 너무 웃긴거예요. 뭐랄까, 무대포라고 해야 되나. 우리들이 막 미친놈이라면서 웃어댔는데, W는 그게 뭐가 웃긴지 이해하지 못했었죠.

 

그러면서 친구들끼리 했던 말은, 저것도 W니까 선생님들이 그냥 넘어가주는거지, 우리들 같았으면 하기 싫다고 말하는 순간 바로 손 올라왔다면서 그랬죠. 대부분, 공부 잘 하는 학생은 선생님들이 예뻐해주시니까.

 

 

저런 성격이 전, W가 튀는 걸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참 독특하다 싶었었죠. 여자들사이에서 뿐 아니라 남자들끼리에서도 좀 눈에 띄는 편이었죠. 어딜가나 주목받는 타입이랄까. 처음에는 외모 때문이지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외모도 외모인데, 성격때문인 것 같더라고요. 솔직히 한편으로는 부러웠어요.

 

 

 

W랑 붙어있으면 상대적으로 제가 초라하게 느껴졌죠. 저뿐 아니라 누구든, W와 있으면 왠지 스스로가 별볼일 없다고 느껴지도록 만든다고 해야 할까.

 

글을 쓰면서 종종 느끼는 건데 제가 필력이 딸리는건지 설명을 참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댓글들을 보면, 제가 전하고자 했던 것과는 다르게 오해를 사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어쨌든 제가 설명을 잘 못하더라도 읽으시는 분들은 찰떡같이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W와 있으면서 느꼈던 초라함이나 열등감 같은 걸 상세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아마 누구나 한번쯤 느껴보셨지 않을까 싶어요.

 

 

한동안은 그랬었죠. W와 있으면 제가 참 작게 느껴졌죠. 저는 스스로에 대한 만족도가 좀 높은 편이라서 누군가를 부러워해본 적이 없었는데, W는 예외였죠.

 

말을 싸가지없이 해도 자기 내키는 대로 굴어도, W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죠. 아니, 오히려 친구들사이에서 은근히 주도권을 갖고 있는 편이었죠. 딱히 누군가를 챙겨주지도 않고 먼저 다가가지도 않는데도 항상 W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였죠. 그 외의 다른 부분들, 외모라든지 뭐 여유로운 형편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공부까지 잘 하니까 처음엔 W가 너무 부럽더라고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부러움이 사라지더라고요. 그냥 애초에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싶으면 열등감도 없어지더라고요. 첫 여자친구가 나보다도 W를 더 좋아한다고 했을 때, 그리 어렵지 않게 납득했던 것도, W에게는 그다지 화가 나지 않았던 것도, 아마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인지 W에게 화를 내긴 했지만 쉽게 풀 수 있었죠. W가 딱히 잘못한 건 없지, 잘나서 그런 건데. 라고 생각했죠. 이미 진 상태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런 애가, 나에게 특별대우를 해줬으니 우쭐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글을 쓰다보니까 소소한 추억들이 떠오르네요.

갑자기, 엄청 그립네 그때가.

 

 

그랬던 애가, 키스한 이후로 완전히 돌변했죠. 사실은 돌변한 게 아니라, 처음으로 돌아왔죠. 원래의 W모습 그대로. 모두에게와 똑같이. 물론 키스하고 한 동안은 제가 이상하게 굴었었죠. W는 평소 모습이었지만, 전 그걸 이해할 수 없었던거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우리가 서로를 오해했었다는 걸 너무 잘 알아요. 전 키스하고도 전혀 전과는 달라진 게 없는 W를 이해할 수 없었던 거고, W는 키스하고 나서 변해버린 절 이해할 수 없었던거죠. 지금은 알지만, 그 땐 몰랐었죠.

 

제가 이상하게 구는 걸, W는 부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저 역시 의식적으로 W에게 일절 터치를 하지 않았지만, W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뒤로는 W 역시 제 터치를 거부했죠. 다른 친구에게 하는 것과 똑같이 굴었죠. 그렇지만 전 다른 친구들에게 하는 것 보다 더 제게 쌀쌀맞게 군다고 느꼈어요.

 

 

한동안 그렇게 지내다가 도저히 W의 태도를 견디기 힘들어서 거의 매달리다 시피 하면서 W에게 사정했던 적이 있었죠. 대체 나한테 왜 이러냐고, 너 왜 이렇게 변했냐고 따져댔었죠.

자기한테 뭘 기대했냐고 그러더라고요. 이게 나라고, 몰랐냐고. 그러면서 제가 이러지 말라고 W의 손을 잡았는데, 뿌리치더라고요. W는 모두에게 그랬었는데, 누구든 스킨십을 하면 바로 뿌리치곤 했는데, 저한테까지 그러니까 정말 괴롭더라고요.

 

그러면서 내가 뭘 하면 되냐고 어떻게 해야 되냐고 가르쳐달라고 뭐, 엄청 처절하고 비참하게 굴었었죠.

 

 

뭘 하게? 내가 시키면 뭐든 하게?

 

라고 조롱하듯이 대꾸하더군요. 그냥 제가 비굴하게 구니까 점점 더 절 깔보듯이 행동했죠. 그 땐 이미 절실했던 상태라서 전 뭐든 하겠다고 했었죠.

 

그 뒤로는 너무 끔찍했던 기억이라서 별로 쓰고 싶진 않아요. 한 번 언급했던 적이 있었는데,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주종관계처럼 지냈었다고.

 

 

 

 

 

사실 오늘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진 건, 크리스마스 때 뭐하냐는 연락을 받았어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는 의식도 없이 살다가 그런 연락을 받으니까, 생각이 많아졌죠. W의 생일이 다가오고있네, 싶더라고요.

 

제게 그 연락을 준 건, 언급했던 적 있는 최근에 만나고 있다던 그 분이고요. 저번에 글을 쓴 이후로 또 만난 적이 있죠. 뭐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관계로.

 

 

그리고 한 번 더, W집에 찾아갔죠. 역시나 문을 열어주지 않았는데, 너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니까 이젠, 제가 W집을 잘못 알고 있나 싶더군요. W에게서 들은 게 아니라, 제가 그냥 몰래 지갑에서 본 주소로 찾아간 거라서.

 

더 찾아가 보려고요. 그때도 문을 열어주지 않거나 무시로 일관하면, 그게 W가 말하고자 하는 거라는 걸 받아들여야겠죠. 문자나 카톡으로 구구절절 내 진심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고 싶진 않아요. 전 텍스트보단 얼굴보고 이야기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저와 키스하고 나서 W가 사귀었던 그 여자애가 언젠가 저한테, 혹시 W오빠 생일 아세요, 라며 물어본 적이 있었죠. 아무리 물어도 안 가르쳐준다고. 그 때가 W의 생일을 앞두고 있었을 때인데, 저도 참 못됐는지, 가르쳐주기 싫더라고요. 친구들 중에서도 저만 알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랑 공유하기 싫더라고요, 괜히. 이미 전혀 특별한 사이도 아니었지만.

 

그래서 약간 망설이다가 결국은, 나도 모르는데?, 라고 대답했었죠.

 

 

그리고 W의 생일날, W를 만났었죠.

오늘 그 이야기 적으려고 했었어요 원래. 근데 제가 한번 글을 쓰면 글이 너무 길어져서, 결국 쓰려던 이야기는 못 쓰고 그냥 다른 이야기만 썼네요.

 

 

댓글은 다 잘 읽고 있어요. 그 언급하신 뮤직비디오도 봤죠. 음. 전 동성애 소재를 좋아하지 않아요. 퀴어영화는 물론이고 은연중에 동성애를 암시하는 내용도 꺼리는 편이죠. 그냥, 제 상황이 이렇다보니까 감정이입이 돼서 아무렇지 않게 볼 수가 없더라고요. 새드엔딩은 새드엔딩이라서 싫고 해피엔딩은 해피엔딩이라서 보기 싫다고 하면 이해하시려나.

 

그 뮤직비디오가 싫었다는 게 아니라, 감정이입이 돼서 쓸쓸했다는 말이예요. 그냥 담담히 봐지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포기하지 말라고, 마지막 기회를 잡으시라고, 꼭 진심을 이야기하라고 대부분 말씀하시던데. 그것조차도 제 뜻대로 되진 않네요.

 

물론 제가 W집에 찾아가는 건, W의 결혼을 망치려는 것도 아니고(파토내려는 것도 아니고, 라고 썼었는데, 파토가 표준어가 아니었네요) W와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각오로 가는 것도 아니지만, 글쎄요. 그저 그냥 보고 싶었고, 또 대화가 간절했던 건데 그것조차 이다지 쉽지 않으니, 제가 여기서 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나 하나 좋자고 계속 이기적이게 구는 것도 아니다 싶어요, 점점.

 

 

어쨌거나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운 날씨지만 그럼에도 따뜻한 나날 되시길.

추천수51
반대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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