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궁금해서 물어봅니다.
조선시대에는 결혼은 국법으로 지정된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국법에 의해 결혼을 해야만 했습니다.독신은 국법을 어기는 거였죠. 혼기가 찼는데도 자식을 혼사를 안 시키면 그들의 부친이 관아에 불려가서 취조를 받아야 했습니다
독신으로 살수 있는 경우는 처녀가 세자빈 간택에 떨어져서 임금님이 너는 혼인을 하지 말라고 했다던지 혹은 너무나 너무나 찢어지게 가난해서 도저히 시집 장가를 갈수 없는 경우였는데 이런 경우조차 나라는 눈뜨고 못 봐주겠다며 몇년에 한번씩은 임금님의 주선으로 전국의 노총각 노처녀들을 모아서 단체로 합동 결혼식을 시키곤 했죠.
그런데 지금은 결혼이 개인의 자유입니다. 독신으로 살겠다 하면 아무도 안 못 말립니다.
결혼을 안하면 경제적 부담도 오히려 더 적습니다.
딸린 식구들이 없으니 한달 150만원을 벌더라도 오히려 식구 많을때보다 더 여유있게 자신을 위해 쓰고 저축하며 살수도 있는 거죠
결혼 연애 출산 모두 개인의 자유에 맡겨졌죠.
조선시대에는 평균수명이 정말로 짧았습니다.
조상들의 평균 수명은 35세 정도였죠.(남자 35세 여자 40세가 조선시대의 평균수명이었습니다)
만일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녀가 열다섯살 쯤 되면 그녀의 부모는 30대 초반인 나이가 대부분입니다. 어느덧 죽을날이 가까워져 오는 거죠.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집안의 자손으로서의 지위도 재산도 전혀 딸에게는 상속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가 죽고 나면 그녀가 살던 집은 오빠나 남동생에게 상속되고 그녀 자신은 마치 끈떨어진 표주박처럼 낙동알 오리알처럼 헐헐 단신으로 험한 세상에 홀로 남게 되게 되는 상황이 됩니다.
지금도 부모 죽고 나니 친정이 사실상 사라지더라고 말하는 분들 많지 않습니까그러니까 이 여아아이는 부모 죽기 전에 얼른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날아 가야만 하는 생존상의 절박한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열두살만 넘으면 언제라도 날아갈수 있도록 혼수 보따리 싸서 잠자는 방 머리맡에 놓고 살수 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열 다섯 무렵에 시집을 가고 나면 늦어도 열일곱살이 되기 전에 자신도 첫아이를 낳았죠. 보통 시집 가고 나서 몇년뒤쯤에 친정 부모님의 부고를 듣지만 이미 남의 집이 되어버린 오빠나 남동생 집에 부모님의 장례식이후에도 발걸음 하기는 쉽지 않았겠죠.
열일곱에 부모가 되어 몇년 살다보면 시부모님역시 일찍들 세상을 떠났죠.그리고 자기 아이들 열심히 키워 시집 장가 보내고 나면 며느리 사위 맞아서 몇년 살다가 자신들도 세상을 떠난 겁니다.
그러니까 조선의 여성들은 부모님으로부터 재산도 일절 못 물려받고 교육도 못받고 직업을 가질수도 없어서 혼인을 해서 시집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친정 부모님 사후에는 사실상 생존할수 있는 길이 전혀 없었던 겁니다.. 무조건 친정 부모님 살아 있을때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태어난 집을 떠나야만 했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시집살이를 한다 해도 길어야 5-6년이고 자신 역시 아들을 키워 며느리를 보고 시어머니 노릇을 한다고 해도 길게 못해보고 조기에 사망할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런제 지금은 100세 시대입니다. 서른살 아가씨가 시집을 가면 시어머니는 보통 50대 초중반 .. 장장 50년을 시어머니밑에서 남의 집 며느리로 살아야 하는 겁니다.
엣날에 조선시대에 시집살이가 아무리 고통스럽다 해도 기간이 짧으니까 견뎌냈던 그때 상황이 아닌거죠. 요즘은 90이 넘은 나이에도 몸과 정신이 말짱하고 꼿꼿한 할머니들이 많은데 이 사람들은 며느리에게 여전히 시집살이들을 시킵니다.. 그런데 딸이 시집을 안가면 국법을 어긴죄로 부친이 경찰청에 끌려 가는 것도 아니고 여자도 일을 하고 직업을 가질수 있으니 남편 없다고 밥을 못먹고 살것도 아니고 친정 부모 죽고 나면 천지에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헐헐단신 외로운 처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생존상의 절박한 이유도 없으면서 왜 요즘 아가씨들은 겁도 없이 시집을 가서 남의 집 며느리로 5-60년을 살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가요. 요즘 60-70 대 할머니들중에는 이 나이에 아직도 난 남의 며느리야 하면서 신세 한탄하는 사람들 많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