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혁명 ■
프랑스는 나폴레옹 시대에 많은 영토를 차지하였지만, 빈 회의의 결정에 따라
정복한 땅을 돌려주고 프랑스 혁명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루이 18세의 뒤를 이은 샤를 10세는 빈 체제 밑에서 자유주의를 억압하고,
성직자와 귀족을 보호하는 반동 정치를 하였다.
한편 1830년 5월에 실시한 총선거의 결과 샤를 10세의 정치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자 (자유당)가 많은 의석을 차지하였다. 이에 왕은 의회를 해산시키고
마음대로 선거법을 개정하려 하였다.
국왕의 이와 같은 행동은 파리 시민을 크게 격분시켜, 드디어 같은 해 7월 28일에
혁명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샤를 10세는 영국으로 도망가고 시민들은
루이 필리프를 시민의 왕으로 맞이하였다. 이것을 7월 혁명이라 한다.

■ 2월 혁명 ■ (이명박 정부와 비슷함)
7월 혁명으로 탄생한 7월 왕국은 18년간 지속되었는데 이 정권은 과도기
정권으로서 금융 부르조아지의 자의적인 정권이라는 성격을 가짐
7월혁명으로 즉위한 루이 필리프는, 처음에는 '시민의 왕'이라 자칭하면서
언론·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등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프랑스는 은행가를 비롯한 소수의 자본가 계급이 지배층을 이루고
선거권도 상류층만이 가지고 있었다.
2월 혁명이 발생한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먼저, 7월 혁명을 일으켰던 Guizot
내각의 부패와 무능을 들 수 있다.
이 정부는 과두적 금융 부르조아지 내각으로 선거 매수와 매관 매직,
외교 정책의 무능력 등이 만연된 부패정권이었다.
특히, 외교 정책의 면에서 영국 함대가 프랑스 군함을 정지시키고 임검을
실시한 사건에 대해서도 아무론 대책 없이 굴복하여 국민들의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두 번째 원인으로는 정부가 노동세력과 산업 부르조아지의 반항을
탄압한 것을 들 수 있고, 산업 부르조아지와 노동자 계급이 불합리한 선거법의
개정을 요구한 것이 거부된 사실도 하나의 원인으로 들 수 있다.
선거권은 당시의 인구 약 0.6%의 극히 일부의 부유층만이 선거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정당이 일치하여 귀조 내각의 사퇴를 요구하자 정부는
일체의 집회를 불허하게 된다. 이에 대해 정부에 반대하는 인사들은
'개혁 연회(Banquet of Reform)'를 개최하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들은
전국적인 개혁 연회의 개최를 준비하게 되고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이 준비
활동을 탄압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과 노동자들의 시위가 일어나는데 이에 대해
군대가 발포함에 따라 3일간의 시가전이 벌어지게 되고 이것은 2월 24일에
정부 붕괴로 이어진다. 그리고, 국왕 루이 필립이 퇴위 하고 영국으로 망명함에
따라 7월 왕국이 끝나게 되고, 2월 혁명 후에는 새로운 정부의 구성을 위해
사회주의 세력과 공화주의 세력이 대립하게 되어 그 결과 제 2공화정이 등장한다
[ 이명박 정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