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처님의 생애
석가모니 부처님은 현 인도국경과 네팔에 걸쳐 자리잡고 있었다는 카필라 왕국에서 슛도다나 왕과 그의 부인 마야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성은 고타마(Gotama), 이름은 싯다르타(siddhartha)였다. 불타(佛陀)란 붓다(Buddha)의 음역으로 ‘깨친 사람(覺者)’이란 뜻이며 부처님이란 말도 같은 뜻을 가진다. 그는 석가족(Sakya족) 출신이었으므로‘석가족출신의 성자’란 뜻으로 석가모니 혹은 ‘석가족 출신의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란 뜻을 가진다. 불전에 의하면 그는 현재 네팔의 타라이 지방에 속하는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태어나자마자 그는 사방으로 일곱 발자국을 걸으면서 한 손으로는 하늘을, 다른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다음과 같이 외쳤다고 한다.
하늘 위나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높다.
온 세상이 고통 속에 있으니 내 이를 평안케 하리라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吾堂安之)
탄생게로 불리는 이 이침은 실제 있었던 일의 기록이 아니라 부처님께서는 바로 그런 일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던 분이라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어떤 일을 위해 부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셨던가? 첫째로는 인간의 성품이 하늘 위와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고 일깨우기 위해서이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 홀로 높은 나(我)'는 개체적인 '나'가 아니라 인간의 본래 성품, 참 '나'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 '나'의 실현이야말로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첫 번째 까닭이다. 둘째는 고통속에 있는 세계, 중생을 건지기 위해서이다.
부처님의 삶을 그리는 신앙인의 눈에는 적어도 그 두 가지를 위해 오셨던 분이 부처님이셨다고 이해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자마자 처음으로 그런 외침을 하셨다고 한 것이다.
한 나라의 왕자로 태어난 싯다르타는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환경에 있었다.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었고, 나이 들어서는 아름다운 야쇼다라 공주를 비로 맞았으며 라훌라라는 아들까지 두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것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총명과 사색적인 천품을 타고난 그는 깊은 자기 성찰을 통하여 늙고 병들고 급기야 죽어야 하는 한계 지워진 상황 속에 던져진 자신이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드디어 나고 죽는 문제, 늙고 병드는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구도의 길을 택하였다. 그 길은 일체를 버리고 혼자 가는 외로운 출가의 길이었다. 스물 아홉에 그는 성을 떠나 출가사문이 되었다.
출가한 구도자 싯다르타는 6년동안 뼈를 깎는 수행을 하였다. 카필라성으로부터 남쪽으로 내려와 마가다국의 왕사성에서 알라라칼라마와 웃다카라마풋타의 두 스승을 차례로 만나 당시 유행하던 사마디(선정)을 익혔다. 그러나 그는 만족할 수 없었다. 두 스승이 이상으로 하는 깊은 사마디에 도달했으나 생사의 문제를 푸는 데는 부족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구도자 싯다르타는 다시 왕사성 서남쪽에 있는 가야로 옮겼다. 가야의 네란자라 강 근처 우루벨라에는 수많은 고행자들이 수행하고 있었다. 싯다르타도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혹심한 더 할수 없는 고행을 닦았다. 그러나 역시 그로부터 만족을 얻을 수가 없었다. 육체를 괴롭힘으로써 육체와 정신으 둘로 보는 잘못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드디어 고행을 버리고 네란자라 강에 나아가 목욕을 하고 한 여인으로부터 우유죽을 공양받았다. 이를 보고 함께 고행하던 다섯 명의 수행자들은 고타마가 타락했다며 그를 떠났다.
심기일전한 싯다르타는 근처 숲 속으로 들어가 한 보리수 아래 앉아 "우주의 실상을 깨치기 전에는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하는 결심을 하고 깊은 사마디에 들었다. 드디어 그는 이레째 되는 날 밝게 빛나는 새벽 별을 보고 큰 깨침을 얻었다. 이로써 구도자 싯다르타는 존재의 실상을 깨친 부처님이 된 것이다. 출가 후 6년, 그의 나이 서른 다섯 때의 일이다.
깨침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것은 말이나 생각으로 미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깨침의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몸소 깨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설한 바를 좇아 생각해 본다면 첫째 정적(情的)으로 그것은 한량없는 기쁨이다. 둘째, 지적(知的)으로는 '하나'인 세계의 체험이다. '나'다 하는 벽이 깨져 나와 남, 나와 우주가 하나되는 것이다. 끝으로, 의지적(意志的)으로는 진정한 자비의 실천이다. 나와 중생이 하나 됨으로써 동체자비의 실천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큰 깨침을 얻은 부처님께서는 몇 주일 동안 진리의 기쁨 속에 잠겨 있었다고 한다. 한 때 이 깊고 묘한 진리의 소식을 욕심에 물들어 사는 세상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하는 망설임도 있었지만 그는 드디어 분연히 일어나 선언했다.
이제 감로의 문을 열겠노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낡은 믿음을 버려라.
부처님께서는 깨친 곳 부다가야로부터 250km나 되는 먼 길을 달려가 바라나시 근교에 있는 사슴동산, 즉 녹야원에서 다섯 명의 수행자들에게 첫 가르침을 폈다. 그 다섯 수행승들은 그와 함께 고행을 했고 그가 고행을 버리자 "타락했다."며 그를 떠났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비구들이여, 수행하는 사람들이 피해야 할 두 가지 극단이 있다.
하나는 쾌락에 치우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금욕에 치우치는 것이다. 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깨달았다. 이 중도가 눈을 열어 주고 지혜를 생기게 하며 깨달음과 자유를 얻게 하는 길이다.
이렇게 시작한 첫 가르침, 즉 초전법륜(初轉法輪)은 사성제, 팔정도로 이어졌다. 며칠 안에 다섯 사람은 모두 진리에 눈을 떴다고 한다. "낡은 믿음을 버려라." 고 일어섰던 부처님께서 첫 가르침을 바라나시 근교에서 펴신 것은 결코 우연한 일만을 아니다. 왜냐하면 예로부터 바라나시는 바라문교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린 이래 부처님께서는 45년 동안을 한시도 쉬지 않고 일체의 모든 생명을 위해 가르침을 펴셨다. 그가 가르친 가르침의 특성은 듣는 사람, 가르침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들의 능력과 소질에 맞는 이른바 대기설법(對機說法)에 있다. 불교의 가르침이 방대한 것도 그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마지막 안거(安居)를 바이샬리 근처 마을에서 지내시고 고향인 카필라성을 향해 갔다. 도중에 쿠시나가라 근처 파바리는 마을에서 춘다로부터 공양을 받고 병이 나셨다. 드디어 쿠시나가라 교외에 있는 사라 나무 숲, 두 그루의 사라 나무 사이에서 최후의 순간을 맞게 된다.
그 때 그곳에 살고 있던 말라족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인류의 위대한 스승을 뵙기 위해 몰려왔고 아난존자는 그들의 접근을 막았다. 그것을 안 부처님께서는 "아난아, 그들을 막지 말라. 그들은 나를 괴롭히러 온 것이 아니라 진리를 듣기 위해 온 사람들이니라. 진리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온 사람들을 멀리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하며 그들을 맞아 자상한 가르침을 주셨다.
그리고 모든 제자들에게 의심되는 바가 있으면 묻도록 한 다음 더 이상 질문이 없음을 확인하고 마지막 가르침을 설하셨다.
너희들은 저마다 자신을 등불 삼고 자기를 의지하여라. 또한 진리를 등불 삼고 진리를 의지하여라. 이 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아니 된다. ..... 모든 것은 덧없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이 말씀을 남기고 부처님께서는 평안히 열반에 드셨다. 부처님이야말로 진리 속에 살다 진리 속에 가신 인류의 영원한 스승이다. 그는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길을 들어 보였다. 그가 들어 보인 길은 다름 아닌 지혜와 자비의 길이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부처님생애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2. 불교신앙의 올바른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 해 봅시다.
3.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 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