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31살 여자입니다.약 한달 반 전에 이별 당한 요즘 말로 연애의 '을'이었던 사람이었죠.힘들었던 시간이 이제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어제 꿈에서 그 사람이 나왔는데, 이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하루종일 일에 집중하기 힘들 정도로 정신 차리기가 어려웠는데어제는 그렇더군요. '아.. 꿈에 나왔구나. 그런데 나 생각 외로 너무 아무렇지도 않네.'이제는 내 마음에서도 그 사람을 완전히 보내줄 준비가 되었나봅니다.이별 후 한달 반. 다소 긴 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10년 전, 연하의 남자친구와 지쳐서 헤어진 이후 '절대로 연하는 안돼' 라는 나름대로의 스스로 규칙을 세우고 지난 10년 간 썸이든 연애든 연하의 남자들과는 어떤 관계도 가지지 않고 어떤 여지도 주지 않고스스로 세운 규칙을 잘 지키며 살아왔어요.하지만 스스로 세운 규칙을 무너뜨리면서까지 만났던 그 남자는한두살 어린 사람도 아닌, 무려 저보다 4살이나 어린, 제 동생보다도 어린 사람이었습니다.당시엔 그 사람의 나이가 26살, 아직은 예쁘고 어린 여자애들이 좋을 그 나이인데왜 나처럼 나이차가 많이 난다고 하면 할 수 있는 나이에 예쁘지도 않은 나한테 관심을 보일까 라는 일종의 자격지심과 의구심,그리고 전 늦게서야 철이 들고 정신을 차린 타입이라 일하고 공부만 해도 시간이 모자란데 연애나 썸 같은 것에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런 것들 때문에 그 사람이 저에게 다가올 때 밀어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답니다.일부러 오는 연락을 받지 않기도 해보고, 연락이 오면 차갑게 말을 내뱉기도 하고,그렇게 마음을 닫고 선을 그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엔 잘 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죠.스스로 인정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그 사람과 만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굳게 닫혀 있던 제 마음을 열어젖힌 그 사람은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어요.26살. 보통 그 나이대의 남자아이들이 그러하듯안정적인 직장이 없었고, 직장이 없다보니 벌이는 없고, 그만큼 가난했고,학벌도 많이 뒤떨어진 편이었고, 이전의 연애들에서 여자친구들이 바람 펴서 헤어진 상처,그리고 부모로부터 받은 자신의 형제와의 차별로 인한 상처.저와는 많이 다른 사람이었죠. 어떻게 보면 정 반대의 입장이었달까요.저는 그래도 부모로부터 온갖 기대와 사랑을 받고 자랐고 (오히려 동생이 차별받은 타입)그 덕분에 하고 싶은 공부는 다 해서 이쪽 계열에선 거의 최고 수준의 학벌,안정적이거나 고정적인 돈벌이가 큰 편은 아니어도 요즘 세상엔 그렇게 흔치 않다는 평생 배운 것으로 어느 정도 먹고 사는 사람이니까요 저는.하지만 그 사람은 따뜻한 사람이었고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해주는 사람이었습니다.그리고 저는 그 사람의 그런 점이 좋았어요.끝없이 밀어내도 먼저 내밀어주는 그 손이, 먼저 말을 걸어주는 마음이.스스로 세웠던 규칙을 무너뜨리고 연하를 만날 만큼,결혼적령기를 이제는 훌쩍 넘긴 여자가 상대방의 그런 조건들이 상관없었을 만큼.
혹시라도 내가 가진 조건들이 자격지심이나 자존심을 건드리지는 않을까 매사 조심했고처음엔 표현에 서툴러 애정표현을 잘 안해주니 서운하다고 해서 바뀌려고 노력했고그렇게 문제 없이 만나가는 듯 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서로의 마음이 깊어질 수록 그 사람의 고민도 깊어졌나봅니다.남자들에게 한번씩 찾아온다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시즌이 찾아왔고문제 없이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던 관계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습니다.힘들다고 하는 와중에도 이전보다는 덜하지만 연락도 신경쓰려고 하는 편이었던 것 같고,밖에 나가기 싫다고 하면서도 1시간 걸리는 거리에 사는 저는 만나러 나오려고 하는 편이었죠.그때 좀더 어른스럽게 힘들면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줬더라면 나았을까 싶긴 하지만결국 저나 그 사람이나 그렇게 하지 않았고, 이별했습니다.
첫 열흘은 정말 죽을 것 같더군요.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뭔가를 먹고 싶지도 않고, 잠도 안오고,왜 도대체 나이를 이만큼 먹고 연애나 썸이나 경험이 많아도 왜 매번 죽을거 같이 아픈건지,왜 평소에는 잘 컨트롤 되는 내 마음이 컨트롤이 안되는지,왜 그 사람은 내가 밀어낼 때는 그만두지 않고 이제와서 나한테 이러는지,그렇게 내 머리 속에 멋대로 들어와서는 하루종일 뛰어다니는지,그리고 결국엔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은 사람을 왜 나는 못잊고 이러고 있는지,내가 진작에 어른스럽게 잘 대처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텐데 등등자책하는 마음과 그 사람을 원망하는 마음이 엉망으로 뒤엉켜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더군요.다른 사람을 만나고 거기에 기대어 잊어보려고 해도 그 사람의 얼굴이, 행동이, 기억들이 머리 속에서 모조리 재생되는 기적을 경험하며 실패하고.또 그런 날은 집에 돌아와서 내가 왜 이렇게 됐나 울기도 하고. 그렇게 보낸 것 같아요.
그렇게 열흘 정도 흘렀을 무렵인가.저렇게 살다보니 몸이 탈나서 병원에 다녀오려고 겨우 기운을 차리고 거울 앞에 섰을 때,비로소 놓았던 정신줄을 잡게 되더군요.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헛웃음을 지으면서내가 그 사람이어도 이런 모습 하고 있으면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무서워서 도망갈 것 같아 라는 생각이랄까요.마음을 독하게 먹기로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그 사람에게 카톡을 하나 보냈습니다.
[네가 마음이 다해서, 나한테 더 이상 줄 마음이 없어서 그만두자고 한거면 우린 여기가 끝이 맞아. 그런데, 너의 마음은 그런게 아닌데 그저 지금 상황이 힘들어서, 네가 겪었던 결국엔 반복될 연애의 끝이 두려워서 혹은 나에게 앞으로도 줄 수 있는 상처들이 미안해서라면 서로 대화하면서 잘 헤쳐나가면 되는 문제인 것 같아. 한달 정도 시간 줄게. 너에게는 혹시라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선택을 물릴 수 있는 마지막, 그리고 나한테는 생각을 정리할 마지막 기회야. 잘 생각해봐.]
그 사람은 답이 없었습니다.그저 사라진 1로 내 메시지를 읽었구나 정도만 알 수 있었을 뿐이죠.
병원에 다녀왔고, 옷을 제대로 챙겨입었습니다.운동화를 챙겨신었고 집 뒤에 있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정상에 올라 답답하게 가슴에 쌓아뒀던 말들을 모두 했고 시원하게 욕까지 한바탕 하고 나니가슴이 뻥 뚫리는 그 기분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그렇게 매일 산에 오르기 시작했고, 매일 2~3시간을 걸었고, 식단을 바꿨고,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아프다는 핑계로 쉬던 일들을 늘려가기 시작했고,그 사람과 만나서는 혼자 보지 않았던 영화를 다시 혼자 보게 됐고,슬픈 음악 대신 즐거운 음악을 듣게 되었고,그 사람과 밤새 통화하면서 희생했던 잠을 좀더 자려고 노력했고, 그래도 잠이 안오면 공부와는 상관없는 책들을 읽으려고 노력했습니다.그렇게 나머지 3주를 보냈어요.
한달이 지났을 때쯤 어떻게 되었냐구요?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내 능력의 한계와 장점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고,그 사람이 생각나면 억지로 잊기 위해 오르던 산은 앞으로 내가 도전할 일에 대해 생각하는 장소가 되었고,매일 2-3시간씩 걷다보니 우울함이 덜해졌고 다이어트 효과는 덤으로 얻었습니다.잠을 자려고 노력하다보니 잠이 늘었고 덕분에 많이 건강해졌습니다.공부를 다시 시작하다보니 나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고,영화와 책을 통해 마음의 안정도 많이 찾게 되었습니다.그리고 어느날부터인가,내 머리 속에서 온통 하루종일 뛰어다니던 그 사람이 처음에는 반나절로 줄더니, 나중에는 저녁 시간대로 줄더니, 그 다음엔 밤과 새벽시간대로,그리고 그 다음엔 몸이 한가할 때, 그리고 나중에는 가끔.그렇게 내 머리 속에서 차지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더라구요.그리고 그렇게 한달이 지나면서부터는 무서운 속도로 그 사람이 잊혀지기 시작했어요.
한 일주일 전쯤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 서글펐던 적이 있어요.이제는 그 사람이 나를 다시 만나고 싶어해도 이젠 내가 아닐지도 모르겠단 생각.예전에 썸타던 사람이 갑자기 잠수를 타더니 7개월만에 연락을 해온 적이 있었어요.나는 다 잊고 잘 살고 있고 더 이상 줄 마음이 없어서 다시 잘해보고 싶다는 행동들을받아주지 않으니 진상 떨다가 싸우고 다시는 안보는 사이가 된 그런 사람이 있었거든요.그냥 왜 그때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는데,내가 이렇게 마음 절절하게 시간을 보냈어도 결국 내가 마음이 다 해서 없어지면그 사람이 다시 잘해보고 싶어도'미안해. 이제 내가 너한테 더 이상 줄 마음이 없어.' 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 서글프더라구요.저런 말을 듣는 쪽 만큼이나 저런 말을 해야하는 사람도 마음이 편치는 않으니까요.
그렇게 또 일주일이 지나 한달 반이 되었습니다.물론, 그 사람이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거나그 사람을 생각했을 때 정말로 아무 느낌이 없다거나 하지는 않아요.아무래도 지인들이 약간 겹치다보니 어쩌다 나오는 그 사람의 얘기에가끔은 생각이 나기도 하고,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었는데 요즘 춥기도 하고 해서 생각나기도 하고 그렇긴 해요.
2주 전쯤에 글을 썼다가 클릭미스로 날린 적이 있는데,그때 글을 썼을 때는 그런 마음이 컸어요.다시 만나자고 한다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난 한달 동안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법을 다시 익히며 기다려주는 방법을 터득했으니다시 만난다면 더 좋은 관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라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또 생각이 다른 것 같아요.아마도.. 다시 만나자고 하면 다소 마음이 편치 않더라도, 마음이 조금 남아있어도 거절할 것 같아요.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제가 잘못한 것은 없었거든요.굳이 잘못을 따지자면, 좀더 어른스럽게 '힘들면 무리 하지 않아도 된다' 라고 대처하지 못했다는 부분일거에요.하지만 상대적인 관점에서 누구보다 덜 어른스러운 것이 잘잘못의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해요.잘잘못의 영역이 아닌 곳에서까지 잘못을 억지로 찾아내서 고쳐야 하는 관계라면앞으로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반복되지 않을까요.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고, 그 사람의 행동 패턴이 이런 문제에서 항상 이런 식이라면문제는 똑같이 반복될거고 그때마다 끌어안고 갈 자신은 없는 것 같아요.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 때 미동조차 안하는 의욕 없는 사람을 끌어안고 갈 만큼저는 착한 사람도 아니고 애초에 그만큼의 그릇이 안되는 사람이니까요.그래도 정말 만에 하나, 그 사람이 결국 제 마음을 다시 여는 데에 성공해서 다시 만난다면충분한 합의를 거치지 않을까요.
하지만 시간은 이미 한달 반이 지났고,그 사람은 연락이 없네요. 저도 딱히 연락하고 있지 않아요.연락이 올지 안올지는 아무도 모르겠죠. 사람은 저마다 생긴 성격이 다르니까요.하지만 지금 이 상황이 아쉽거나 슬프거나 하진 않아요.저는 기다려줄 만큼 기다렸고,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다 했으니까요.어쩌면 7개월만에 연락한 누구처럼 그 사람도 시간이 한참 지나서제가 그 사람을 잊었을 때쯤, 그래서 더 이상 마음이 없을 때쯤 연락할 수도 있겠죠.그땐, 그 사람을 향해 웃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잘 지냈어? 난 잘 지내고 있어. 라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