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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하는 자를 싫어하신 공자님

완소혜교 |2006.11.15 11:33
조회 30 |추천 0

말 잘하는 자를 싫어하신 공자님!

 

논어가 공자님과 그의 제자간의 나눈 대화를 발췌, 논찬하여 만든 책임을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지만 논어를 읽다보면 공자님 당시의 사회, 정치, 문화, 예절, 관습 등을 총망라한 사회상도 엿볼 수 있음은 물론이지만 또 논어 속에는 공자님 개인의 개인적인 성향과 성격, 취미등도 나타나는 것을 종종 엿볼 수 있다.

그  공자님의 개인적 성격과 성향 중에서도 어쩐 일인지 모르지만 공자님은 말 잘하는 사람을 별로 좋아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때론 혹독한 비판까지 서슴지 아니 하셨으니 그 이유가 조금 궁금해지는 바가 없지 않지도 않다.

그런 예는 논어 속 곳곳에 그 예가 보이는데 한 둘이 아니라는 데에 그 문제가 있다.

하여 논어 제일 첫 장인 학이편 제3장에서도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말을 공교롭게 하면서 얼굴색을 예쁘게 꾸미는 자는 어진 이가 드물다” (子曰, 巧言令色이 鮮矣仁)이라 하였고,

 

자로편 제27장에서도

공자께서 말씀 하셨다. “굳세고, 꿋꿋하고, 질박하고, 어눌함이 仁에 가깝다.”

(子曰剛毅木訥 近仁)이라 하여, 아예 어눌하고 질박한 말솜씨가 오히려 仁에 가깝다고 까지 말씀하셨다.

 

이렇게까지 말씀하신 연유가 어디에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말을 조리 있게 잘한다는 것은 자신의 사고와 생각이 잘 정리되어 있어 그 머릿속에 정리, 정돈되어 있는 사고와 생각들을 밖으로 잘 표현하여 더구나 듣는 이로 하여금 이해와 감동을 준다면 이 보다 더한 재주가 없을 것이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의 공감 까지 구해 낸다면 이는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이 아닐 수가 없는데, 어찌하여 공자께서는 이렇게 말 잘하는 이를 미워하고 싫어 하셨을까?

이는 오늘 말하고자하는 바로 논어 팔일편 제21장 이글의 주인공 재아로 보터 연원 한다고도 할 수 있으니 그 글이 바로 이 글이다.

 

애공이 재아에게 社에 대해 물으니 재아가 대답하였다. “하후씨는 소나무로써 하였고, 은나라 사람들은 잣나무로 하였고, 주나라 사람들은 밤나무로써 하였으니 ‘백성들로 하여금 두려워하게 한 것입니다.’ 합니다.” 공자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이루어진 일이라 말하지 않으며, 끝난 일이라 간하지 못하며, 이미 지나간 일이라 허물치 않겠다.”

(哀公 問社於宰我 宰我對曰夏后氏 以松 殷人 以柏 周人 以栗 曰使民戰栗 子聞之 曰成事 不說 遂事 不諫 旣往 不咎)하였다

 

애공(哀公: 노(魯)나라의 임금. 이름은 장(蔣).기원전 494년에 즉위)이 사(社:토지신 社, 곡식의 신은 稷)에 대해 물었을 때, 재아가 답하기를 夏나라에서는 소나무를 심어 토지신으로 삼았고, 殷나라에서는 잣나무를 심어 토지신으로 삼았는데, 周나라에서는 밤나무를 심어 토지신으로 삼은 이유는 밤나무 栗이 몸을 떤다고 할 때의 慄과 음이 같다는 데 착안하여 백성들을 떨게 하기위해 밤나무를 토지신으로 삼았다고 은근히 주나라의 정치형태를 비꼬아 대답을 한 중에는 정치에는 어느 정도 공포정치가 필요하다는 재아 개인의 정치적 견해까지 곁들여 있는 말인 것이다.

이를 전해들은 공자께서는 대단히 불쾌한 생각을 하신 것이다. 德과 禮로 하는 정치란 나라의 온 백성들이 살기 좋고 편안하게 만드는 것에 모든 의미와 뜻이 있는 것이지, 백성들을 여하히 부리고 다스리기 위해 두렵게 만들어 통제하는 것에 그 초점을 맞추어서는 올바른 仁의 정치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엉터리 대답을 한 재아를 공자님께서는 대단히 크게 꾸짖고 싶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고 시위 떠난 화살이니 더 이상 재론하여 재아의 변설을 거론하기조차 싫으신 것이었다.

 

하면, 이렇듯 언변과 변설에 능한 재아! 그는 누구인가?

재아(宰我) 노나라사람으로 이름은 여(予), 자는 자아(子我), 공자님의 제자중 하나이고 공문십철 중 일인이기도 한 언변과 외교에 대단히 뛰어난 재질을 보인 공자님 제자 중에서도 빼어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는 인물인데, 공자님은 그를 칭찬하기보다는 야단치고 꾸짖은 바가 더 많은 제자 중 한명이기도하다.

그 예로 논어 공야장편 제 9장에서는

 

재여가 낮잠을 자거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썩은 나무에는 조각을 할 수 없고, 거름흙으로 쌓은 담장은 흙손질을 할 수가 없다. 재여에 대해서는 무엇을 꾸짖겠는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처음에 나는 남에 대하여, 그의 말을 듣고  그의 행실을 믿었으나, 이제 남에 대하여 그의 말을 듣고 그의 행실을 살피게 되었다. 재여에게서 이것이 바뀐 것이다.”

(宰予晝寢 子曰朽木 不可雕也 糞土之墻 不可杇也 於予與 何誅. 子曰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予與 改是)라 하였다.

 

이렇듯 재아는 그의 재주를 믿고 자주 공부를 등한히 하는 바가 있으므로 공자께서는 그런 재아의 행동을 보고 더 이상 말 잘하는 재아의 변설과 변명을 믿지 못하는 바가 되었다 말씀하신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논어 양화편 제21장에서 부모의 3년 상에 대하여 재아의 1년이면 가하다는 반론에 대한 공자님 답변 중에 네가 편안하다면 그리하라고 말씀하신 후 재아가 방을 나간 후 재아의 仁하지 못함을 토로 한 적도 있다.

이렇듯 공자님께서 말 잘하는 변설자들을 싫어하신 연유는 모두 그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고 말만 앞세운 일이 비일비재한 바로 마땅히 군자가 행하지 말아야 할 언행의 불일치를 경계하신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오픈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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