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잔혹하도록 격렬해진 사춘기 20-30대까지 영향미치며 대형 사고 친다.

어느샘 |2008.10.05 15:56
조회 816 |추천 1

o증권회사의 백모씨 (방년 25세)

연예인으로 두아이의 엄마로 성실하게  잘 살아가던 최진실씨를 사채업자로 몰아서 결국 삶에 절망을 느끼게 하고  종국에는 자살에까지  이르게 했다고? 

 

키에르 케고르가 말했지..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 있는데 그게 바로 절망이라고..

 

최진실씨를 절망에 이르게 해 스스로 죽음의 문턱을 넘게 만든  죄인은 오늘도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자기 신상에 어떤 피해가 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겠지.

 

나는 16년 경력의 초등교사입니다.

짧은 경력에 어울리게 주로 고학년(5,6학년)들을 담임해 왔습니다.

 

5학년 1학기까지는 아이들의 표정이나 눈빛이 평범하고 어찌보면 맑은 호수처럼 평온하고 유순하게  느껴집니다.

여름 방학을 마치고 오면 -

나의 어린 천사들이   변해 있습니다.(본인들은 절대 의식하지 못하는 변화입니다)

이유없이 담임이나 급우들을 째려보는 험악한 눈빛들이 곳곳에서 번뜩이기 시작합니다.

2학기가 진행될수록 5학년 교실은 총칼만 안들었다 뿐이지 전운이 감돕니다.

담임은 머리스타일이나 옷입는 스타일 말하는 스타일 사고방식등등 1학기에 비해 별로 변한게 없습니다.

학교 전경도 교장선생님도 변한게 없습니다.

변해 버린 것은 아이들 자신들입니다.

삐딱해졌습니다.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사자들처럼 음모를 속으로 감추고 기회를 노립니다.

세상과 맞붙을  시비거리를 항상 찾고 있습니다.

 

초등은 1시간 수업이 40분이지만 단 1분도 쉼없이 수업을 빡세게 진행하지는 못합니다.

하루 6 시간 수업을 그런식으로 진행하려면 교사도 힘들뿐더러 아이들도 배겨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어쩌다 교사 휴대폰이 울리면 교사도 자연스레 전화를 받고 아이들도 그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수업시간에 교사가 개인 전화를 받은 것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초등교실현장에서는 무리가 없는 자연스런 모습이란 뜻입니다) 

 

5학년 1학기의 아이들은

교사가 그래도 양심상 수업중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까 말까 망설이면 오히려

선생님 전화왔어요 뭐하세요 어서 받으세요라고 친절하게 권유합니다.(아직 세상에 대한 끝없는 적의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5학년 2학기에는

교사가 가방속에서 울리는 휴대폰을 꺼내려다가

 수풀속에 숨어 있던 사자의 눈빛이 번쩍하는 것처럼 아이들의 눈에서 번쩍이는 섬광들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 받으려던 휴대폰을 내려놓습니다.교사가 폰받기를 포기하는 순간  불과 2-3초 사이에 아이들의 눈빛은 언제 그랬느냐듯이 보통때의 상태로 돌아갑니다.(본인들은 절대 의식하지 못합니다)

 

매일 매순간 이런 아이들의 무섭고 섬뜩한 기운을 느끼며 살다보면 레벨이 다른 담임선생님도 공포와  죽음의 기운을  느끼는데 같은 레벨인 동급생들은 서로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변해 버린 아이들은 마침내 무섭게 서로에 대한 불만과 불평 저주하는 말들 욕설들을 무차별로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편을 만들어 중상모략하고 끝없이 상대방을 욕하고 비방하기 시작합니다.

이유없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고 상대방이 어이없어 쳐다보면 그걸 빌미로 상대방에게 차마 입에  담을수 없는 욕설을 하거나 심지어 때립니다.

여학생들은 끝없이 없는 말을 지어내고 편을 갈라 왕따게임을 시작합니다.

박쥐처럼 이편에 가서는 이말을 저편에 가면 저말을 퍼뜨립니다.

도가 심해지면 한반의 경계를 넘어 학년 전체로 말이 퍼져나갑니다.

 

쉬는시간에는 끼리 끼리 모여 쑥덕쑥덕 말들을 주고받으며 담임욕 전담교사욕 친구욕 심지어 부모욕을 합니다.

화장실구석에 끼리 끼리 모여  욕을 하며 끝없이 소문을 양산해 냅니다.

 

그들의 욕설과 비방의  사정권에서 안전할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학생들의 경우 초경이 시작될 무렵에 사춘기  광란이 극에 달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럴때 대부분의 부모들은 교사들의 조언에 귀기울이지 않습니다.

교사들이 오히려 아이들을 모함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지요.

 

부모들이 내아이의 모습이  변하긴 변했구나 느끼는 것은 역시 중학교에 가서입니다.

그때쯤이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변한 모습을 (?) 부모에게도 보여줍니다.

사실 변화는  훨씬 이전 5확년 2학기무렵부터  시작됐는데 말입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사춘기가 그저 무사히 넘어가기만을 바랍니다.

원하는 게임기를 사준다거나 나이키 옷과 운동화를 사준다거나 하는 눈에 보이는 물질 공세로 달래려는 부모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부모들의 노심초사속에 아이들의 사춘기도 어느덧 끝납니다.

그때는 이해심이라는 것을 가진 조금은 인간다운 모습으로 변모합니다.

 

부모에게 제법 위로가 되는 말들도 할줄 알고

세상도 그렇게 빼닥하게만 보지 않게 됩니다.

마녀니 뭐니 죽일년 살릴년 하며 가슴에 대못질을 했던 담임을 (자기가 저질렀던  만행은 기억도 못한체)스스로 찾아오는 학생도 있습니다.(남자담임은 무조건 **놈으로 여자담임은 무조건 **년으로 통합니다)

 

그러나 다 그렇게 제데로 안전한 항구에 안착하지는 못합니다.

사춘기의 그 광란의 버릇을 2-30대까지 가지고 가며 제데로 대형사고 치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갑니다.

고등학생 시기가 되면 사춘기 격랑이 가라앉는데 제버릇 개 못준다고 여전히 상스러운 욕설을 입에 달고 살며 직장에 가서도 말 옮기는 버릇 여전한 학생들도 있습니다.

청소년기에 심각한 잘못을 해도

어른들이 상대가 아직 어린 청소년이라고  어쩔수 없어 참고 넘어가 주는것을 모르고 쓸데없이 간만 키웠다가 사회에 나가 제데로 걸려드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그들은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미숙한 아이들의 정신세계를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애들이 모르는 것은

아이때는 무조건 용서받았지만 어른이 되면 더이상 무조건적인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초임교사시절에 가르친 아이들은 지금 나이가 서른살 정도입니다.

제눈에는 여전히 애로 보이는 그애들이 우리 사회에서는 더이상 보호받고 용서받고 이해받기만 하는 애들이 아닙니다.서른이면 우리 사회에서 어른이지 애가 아닙니다.

 

아무리 하루 하루 먹고 사는것이 바쁘더라도 부모 여러분이 사춘기의 격랑을 겪은 자녀들과 함께 하며 삶이 뭔지 인생이 뭔지 인생의 선배로서 배움을 베풀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추천수1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