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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의 기원

완소혜교 |2006.11.15 11:41
조회 103 |추천 0

셔츠의 기원을 더듬어보면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클레오파트라 7세가 이집트 영왕으로서 왕위에 오른 것은 기원전 51년이었으며, 클레오파트라가 18세 때의 일이었다. 18세의 여왕이 당시 대국이었던 로마 제국의 후원자로서 추앙받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로마 제국의 시이저, 안토니오....

클레오파트라가, 스스로를 신으로 간주하고 비너스(Venus)의상을 걸쳤다고 전해지고 있는 한편, 그녀의 연인이었던 시이저와 안토니오가 입었던 옷은 튜닉(Tunic)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 튜닉을 겹쳐 입은 것으로 인해 상의와 하의의 구별이 생긴 것이고, 피부에 직접 닿는 의상인 스브그라(튜닉의 일종)가 바로 셔츠의 기원이 되었다. 이 양 소매가 붙은 T 자형의 튜닉은 머리부터 완전히 뒤집어 쓰기 때문에 극히 단순한 스타일이었다. 이 기본적인 형식은 14세기경까지 거의 변화 없이 이어졌다.

1328년 프랑스 왕실에서는, 왕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왕위 계승을 허용 받지 못하고 사촌이 필립 6세로 즉위하는 사건이 있었다. 튜닉이 일보 전진한 것도 마침 이 무렵이었다. 노르만 지방의 한 귀족에 의해서 Neck-Band가 발명된 것이다. 이것은 목 부분의 보강, 개선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데, 추운 시기에는 목 부분이 열려져 있는 것보다는 꼭 여밀 수 있는 것이 좋아서 환영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가는 넥 밴드였지만 꽂아 장식한 후 가는 끈을 붙여서 묶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완전히 목부분을 감싸주는 것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면, 셔츠라는 말은 언제,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고대 영어로 셔트는 스키르트(Scyrte)라고 불렸는데 그 어원은 스칸디나비아어인 스키르타(Skyrta)라고 전해진다. 어원지가 추운 지방이고 보면 초기의 셔츠는 보온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스키르타는 물론 셔츠(shirt)라는 의미인데, 더욱 오래전에는 '짧은 옷'을 포함해서 불리워졌던 것 같다. 또한 스커트(skirt)도, 스키르타(skyrta)라는 어원에서 출발하고

있다. '짧은 옷'의 상반부에 중점을 둔 것이 셔츠이고, 하반부에 중점을 둔 것이 스커트인 것이다. 영어로 스키르트(scyrte)는 대체로 1000년 경부터 사용되어진 것같고, schirte, sherte 등의 철자를 거쳐 shirt가 된 것은 대략 1530년 경이었다고 여겨진다. 셔츠에 커프(cuff)를 달게 된 것도 대략 이 무렵이었는데, 그 이전에는 커프가 없고 통소매였다. 소매 끝을 뒤집어 꺾기도 하고 다른 천을 달기도 했다. 넥 밴드가 노르만 지방에서 고안되었고, 셔츠의 어원이 고대 스칸디나비아어로 되어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중세의 셔츠는 추운 나라에서 보온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주로 발달한 것 같다.


한편, 칼라(collar)는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일까?

칼라는 라틴어로 '목걸이'를 의미하는 '콜라레(collare)'에서 유래된 것으로, 셔츠에는 16세기에 처음으로 화려한 장식 칼라가 부착되었으며, 그 후 3세기 반 동안 패션계 사람들은 칼라의 발전에 창조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16세기에 최초로 '스페인식 주름 칼라'가 나와서 엘리자베스 여왕과 그녀의 신하들, 심지어 여왕의 마차를 모는 마부들까지도 그것을 사용했다. 이것은 길이 40m의 아마포에 풀을 먹여 주름을 잡아서 철사로 괸 칼라인데 모양이 고상했다.

그 후 100년이 지난 뒤 셔츠는 레이스 가장자리 장식을 달기 시작하면서부터 절정에 이르렀다. 이러한 셔츠는 귀족들이 하나 손에 넣기 위해 논밭을 팔아야 할 정도로 값이 비싼 일종의 창작물이었다. 프랑스의 한 신하는, 자신은 목 둘레에 '32에이커의 최상의 포도밭'을 두르고 다닌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한다. 그러나 패션에서 청결은 별러 중요시되지 않았다. 신사들은 주름 장식이 달린 셔츠를 보통 한 달에 한번쯤 갈아 입었는데, 멋쟁이들이 향수를 듬뿍 몸에 뿌리고 다닌 것은 그 때문이었다.

 

18세기의 허영심이 많았던 멋쟁이 남자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데는 풀먹인 셔츠도 한 몫을 했다. 그들은 셔츠가 구겨지는 것을 싫어했다. 그들 시대에 유행한 셔츠의 앞부분은 어찌나 빳빳하게 풀을 먹였던지 총알이 빗나간 적도 있어 그 덕에 목숨을 건지 결투자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1825년에 뉴욕(New York)주 트로이에 사는 한 대장장이의 부인인 한나로드 몽타뉴는 깃에만 조금 때가 묻은 셔츠를 빠는 데 신물이 난 나머지, 깃만 떼어 빤 다음 풀을 먹여 다려서 다시 제자리에 갖다 붙였다. 이것이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칼라의 효시가 되었다. 불편한 스타일의 칼라는 꼭 백년동안 유행했다.

1900년까지 약 400가지 스타일의 분리식 칼라가 만들어졌다. 그 중에서 가장 부자유스러운 것은 빅토리아 여왕 시대 사람들이 만든 것이었는데, 이것은 하얀 에너멜을 입혀서 윤을 낸 강철제 칼라였다. 미군은 간접적으로 이 분리식 칼라를 몰아내는 데 한 몫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돌아온 미군 보병들은 부드러운 붙박이 칼라가 달린 편안한 군대용 셔츠를 잊지 못한 나머지 뻣뻣하고 목이 죄는 격식을 갖춘 셔츠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중세부터 알고 있던 편안함을 최종적으로 인간에게 되돌려 준 것은 스포츠 셔츠(sports shirt)였다. 1920년 대의 패션은 주로 리비에라의 부자들이 이끌어 갔는데 그들은 바스크 지방의 고기잡이들로부터 지금은 폴로 셔츠라고 하는 가벼운 메리야스 셔츠를 도입했다. 그러나 원래의 폴로 셔츠는 말을 타고 폴로 경기를 할 때 칼라가 얼굴을 가리지 않도록 칼라 끝을 단추로 눌러 놓게 되어 있었다. 19세기말 존 브룩스(John Brooks)는 영국에서 폴로 셔츠를 보고 몇 벌을 사서 뉴욕에 있는 자기의 신사용 복식 가게에 보냈다. 브룩스 브라더스(Brooks Brothers)상점의 단추 칼라(버튼 다운 셔츠)는 인기를 끌어 1914년까지 예일(Yale)의 위픈푸스팀은 이 신사용품 전문점에서 사 입는 버튼 다운 셔츠를 자랑하며 경기를 하곤 했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윙 칼라(wing collar)에 대신하여, 소프트한 더블 칼라(double collar)가 주류가 되고 탭 칼라(tab collar), 라운드 칼라(round collar)등이 1920년대부터 30년대에 걸쳐서 잇달아 등장했다.

내용출처 : [기타] 인터넷 : http://my.netian.com/~jbg71/history_s.html 넥타이와 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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