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와서 보면 준쓰레기급 남자한테 후유증 많은 열병같은 사랑만 얻고 돌아와 이제 막 회복하고 괜찮기 시작했을 때 널 만났어.정확히 말하면 그저그렇게 흔히 일어나는 평범한 클래스 안 수많은 사람간의 오고감이 너 하나 나한테 다가옴으로 사랑이 된 만남이야.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똥차가고 벤츠온다, 사랑은 예고없이 찾아온다는 말들 다 그저 쉽게 말하는 진부한, 나완 상관없는 얘긴줄 알았어.
이제 냉기는 완전히 사라진 완연한 봄, 어느 클래스날 수업 시작전 네가 나한테 말을 걸더라 - 전공이 뭐고 등등의 초기 신상조사면 으레 하는 질문들. '덩치는 무쟈게 크고 얼굴 보아하니 복학생 같네. 엘비스 프레슬린가 - 저 구레나룻은 뭐야?' 묻는 말에 대답만 시큰둥하게 하며 난 너에 대해 이리 생각했어. 그리고 별 신경 안썼지.
근데 그냥 클래스메이트니까 하는 예의 인사 몇번 하면서 네가 편안하게 느껴졌어.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근데 그 편안함이 꼭 강렬한 어떤 감정으로 이어질 것만 같은 연장선에 있는 편안함이었어.네가 날 호감있게 신경쓰고 있단 걸 알게 되면서 그 느낌에 점점 확신이 오더라. 내가 머리핀 하나로 머리를 동동 동여매서 온 날, 피검사 때문에 피뽑은 정맥에 거즈 붙이고 온 날, 안 입던 재킷 입고 온 날 모두 바로 변화 눈치채고 그것들에 대해 꼭 한마디씩 하던 너, 수업 시작 바로전 여느 때와 다르게 뒷편에 앉은 날 찾아 두리번거리다 눈 마주쳐서 눈인사 한 날 보고 숨길 수 없는 미소 짓던 날들의 작은 해프닝이 지나가고 결국 너는 어디에서 온 유학생인지 말하면서 나한테 네 고향사진들을 보여주며 같이 가고 싶다고 고백아닌 고백을 하더라 ㅎㅎ 좋아한다, 밥먹자 이런 말이 아닌 네 폰을 오픈해 네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장소들 여기 같이 가고 싶다는 고백.
'웬 복학생 같이 노안인 애가 나보고 어딜 가자고 하네' 특이하게 생각했어. 거절할 생각이었고 그래서 일부러 새침하게 행동했는데 결국 계속 밥먹자는 제안 거절하기도 지쳐 중간고사 끝나고 한번 밥먹었지. 그리고 나 좋아한다고 넌 고백하더라. 그때까지만 해도 난 예상했지만 당황했고 아직 생각없었기에 방어적이었는데 너는 어찌보면 나에 대한 구애가 필사적이기까지 하더라."널 위해 선물하나 준비했는데 곧 다가오는 휴일에 나랑 둘이 시내에 드라이브 가지 않겠냐"고 끈질기게 말하는데 난 결국 빗장을 다 걷어낼 수 밖에 없었지.
그렇게 시작된 우리 사랑 - 너라는 사람 알면 알수록 외유내강에 대단한 사람이더라. 항상 여유롭게 웃으며 능글맞아보이기까지 한 겉모습에 한량이라 생각했던 건 내 오해였어. 진짜 똑똑한 사람은 겉으로 그게 노골적으로 안 드러나잖아. 너도 그렇더라. 진짜 속으로 강하니까 그게 겉으로 쉬이 안 드러나게 할만큼 놀랄만큼의 자제력이랑 결단력,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더라. 나는 그렇게 너한테 완전 무장해제 됐어. 한시간 뒤 어려운 퀴즈 준비하면서도 내 부탁 곧장 들어주는 네가 고마워서 나도 네 에세이 봐주겠다 했을 때 넌 진짜 고마워하더라. 나는 정말 네 도움이 고마워서 나도 보답으로 그렇게 해주겠다 한거였는데 너는 나한테 "넌 나를 참 감동시킨다" 했지. 그게 바로 내가 너한테 날 안 지 한달만에 그리 확신있게 좋아하는 이유가 뭐냔 물음에 한 답이었지. "넌 날 온전히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우리 사이 아무 문제 없었는데 결국 우리는 우리가 극복 못하는 외부적인 이유에 무릎 꿇었어. 넌 지금 다른 사람이랑 있지. 나 그저께 너랑 그여자 같이 있는 거 봤어.난 아직도 널 하루에 열두, 아니 스물네번도 더 생각해 - 하루에 눈뜨고 눈감는 시간까지.나 그때 너랑 함께였을 때 내 자존심 때문에 너한테 모두 못드러냈던 내 문제들 지금부터 한 2년정도 후까지 다 극복하고 네가 처음에 반했던 나보다 훨씬 멋진 여자 돼서 너한테 가면 넌 나 받아줄래? 지금 넌 나랑 이별후 그 여자랑 진정 행복하니? 정말 알고싶다.
우리 정말 힘들었던 그날 밤, 나 바래다주는 차 안에서 너 울면서 나한테 그랬지. "00아, 널 사랑했던 한 남자가 있었단 걸 기억해 줄 수 있어?"라고.
나는, 그때도 말했지만 바보같이 헤어진 후에서야 네가 내 진정한 첫사랑이었단 걸 매일 되새긴다. 나 너랑 다시 만나질 수 있을까? 지금의 네가 이 글을 본다면 내가 과거에 집착하는 무서운 여자라고 할 수도 있을 거 같아. 근데 말야, 이건 집착이 아닌 거 같아. 시간이 갈수록 더 강렬해지거든. 나 너 때문에 사랑이란 걸 알게 됐는데 우리 그때 네 말처럼 그냥 멀리 돌아가는 중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