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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 넋두리

ㅇㅇ |2016.03.02 23:26
조회 67,445 |추천 420
  나는 특별하지 않다. 특출하게 잘 하는 것도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점을 더 강렬하게 느낄 때는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어필해야하는 자기소개서를 쓸 때다. 자소서의 한 줄, 한 줄마다 평범함을 숨기기 위해 머리를 싸매곤 한다. 나는 내가 부끄럽지 않았다. 이만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점점 내가 초라해진다.  

용돈 35만원.
새로운 룸메이트들이 들어왔다. 그래도 내가 고학번이니깐 치킨을 샀다. 29900원
아는 선배가 졸업을 했다. 감사했던 게 많아 졸업 선물을 샀다. 52500원
토익스피킹을 접수했다. 77000원
졸업을 앞둔 선배가 밥을 사줬다. 나는 커피를 샀다. 6600원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가니 검사를 받고 주사를 맞으란다. 58900원
팩을 하고 싶어 세일중인 팩 3개를 움켜쥐었다. 5400원
하루에 한 끼 제대로 챙겨먹기 힘들어 편의점에서 요깃거리를 종종 산다. 5800원 

용돈 받은 날 25일. 일주일이 지난 지금 잔금은 113900원. 교통비 5만원 빠져나갈 예정. 책 값 역시 아무리 아껴보더라도 5만원. 그냥 사지 말고 도서관에서 빌려 쓸까. 취업원서에 쓰일 사진도 찍어야한다. 친구들은 주말에 1박 2일 여행을 가잔다.  
불쑥 나에게 쓴 5400원이 미안해진다. 5800원이 죄스럽다. 조금만 참을걸.. 맥주 한 캔에 다 쓸려 내려갔으면 좋으련만 씁쓸함만 더욱 입에 감돈다.  

알바를 두들겨본다. 조건은 2개. 주 2일, 적은 근무 시간. 알바가 공부에 방해가 되지 말아야 하니까. 알바에 지원하려고 이력서를 쓰면서 알게 된 사실. 참 많이도 알바를 했다. 대학 시절 3년 중 6~7개월을 제외하곤 줄곧 알바인생. 대학 마지막 학년 역시 알바.  

면접을 본 가게에서 일한 경험이 많다고 합격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썩 기쁘진 않다. 시간은 주 10시간 돈은 24만원 남짓. 차비를 빼면 21만원.  10시간은 아까워지고 21만원은 부족한 듯 느껴진다.  

전과를 한 탓에, 4학년이지만 5전공 2교양을 듣는다. 오빠는 틈틈이 상반기 채용 일정을 알려준다. 아직 원서에 쓸 사진도 준비하지 못했다. 자기소개서도 듬성듬성 구멍이 나있다. 방학동안 매달렸던 영어도 아직 당당하게 제출 할 준비가 안 되었다. 난 형편없다. 무엇을 한 걸까. 방학마다 집에 내려가지도 않고 기숙사에서 강남으로 학원을 다녔다. 그런데 결과물이 없다. 
결국 상반기 포기를 가슴속에 묻어두고 입 밖에 내진 않는다.  엄마랑 하루에 한 번 전화를 한다. 엄마는 열심히 준비하라는 말이 나에게 부담이 될까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을 꺼내신다. 이제는 내 눈치를 보는 엄마 마음의 무게가 느껴진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딸이라 믿고 계실 테지만 결국 난 이력서 앞에 몇 십만 명 중의 한 명이라는 사실이 죄송스러워진다.  

취업시장에서 합격자는 소수다. 다수는 패배자가 되나보다. 취업 성공이 전부가 아니라지만 전부가 맞는 것 같다. 취업에 실패한 사람은 고개를 들지 못한다. 실상 패배자가 아닐지라도 패배자로 살아가는 것 같다.  

나는 성공 욕심이 많지가 않다. 평범하게 돈을 벌고, 평범하게 내 시간을 가지며,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 그러나 난 머지않아 평범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지키기 힘든 것인지 느끼게 되었다. 
내 인생의 목표는 부모님이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주었던 부모님에게 해드리고 싶은 것이 많다. 아빠는 일평생 차를 세 번 바꾸셨다. 첫 번째 차 프라이드 베타, 두 번째 차 리오. 두 차 모두 10여년을 타셨다. 그리고 지금 차 중고 SM3. 차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초등학생 때 아빠한테 아빠 차 내가 사주리라 약속한 적이 있었다. 그 때의 기억 속에 아빠는 밝게 웃고 계셨다. 아빠는 기아차를 좋아하신다. 나는 결혼자금 대신 아버지 차 값을 모을 것이다.  
엄마는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티비 채널을 돌리다가도 여행 패키지 광고에 채널을 멈추시는 것을 몇 번 목격했다. 그리 많이 비싸지 않으니 연휴에 가까운 해외라도 가자고 제안했다. 엄마는 잠시 들떴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셨다.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겠지. 내 대학 등록금. 기숙사비. 용돈.  ‘우리 딸 취업하면 바로 유럽여행 가자’  오늘 밤 유독 엄마 아빠가 보고싶다. 늦둥이로 태어나 어느 덧 부모님의 연세는 환갑이 되셨다. 효도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얼른 돈을 벌어야한다.  
그래 다 비겁한 변명이다. 나약한 변명이다. 그래 난 죽기 살기로 덤벼들지 않았다. 치열하게 살지 않았다. 평범함을 지키기 위해 특별해져야한다.  

오늘까지만 나약해지자. 그리고 이런 나를 스스로 손가락질 하지말자. 가끔은 그럴 수도 있다고 그렇다고, 모른척 눈 감으련다. 

추천수420
반대수5
베플초년생|2016.03.03 17:56
당신은 몇십만명중의 한명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몇십만명중에 아버지 차를 사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당신은 존재 자체로 부모님께는 자랑스러운 한사람이니 자신감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화이팅!
베플비바|2016.03.03 17:26
취준생으로서 공감 합니다. 읽다보니 글에 점점 빠져드네요. 다른 분들의 댓글처럼 필력이 좋은 것 같은데요? 힘내요. 언젠간 이룰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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