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이었을 것이다. 어디선가 좋은 향이 몰려왔었다. 그 냄새를 찾아보니 천리향이라는 나무의 꽃에서 나는 향이었다. 그 향은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보다 감미로웠었다. 이젠 남부민동 본가에도 그 천리향이 있어 봄마다 그 달콤한 향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따뜻한 봄날에 도서관으로 밀려왔던 연보랏빛 등나무 꽃향의 융단 폭격은 영화 속의 역광을 받고 있는 미소녀를 연상시켜 주기에 충분하였다.
왜 그런지 몰라도 대부분의 꽃향은 달콤하기보다는 악취에 가까웠다. 마치 국도를 달리다 만난 거름 냄새를 연상시켰다. 아름다운 향과 부패의 냄새는 동급일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것은 쉽게 상할 수 있으니, 또한 악취 역시 생명과 사람을 쉽게 이끄는 힘이 넘치는 법이니까.
냄새의 압권은 밤나무 꽃 냄새이다. 남자의 체취의 그 냄새는 처음에는 역한 기분을 느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 향을 즐기게 되었다. 가슴 가득히 들여 마시노라면 남자의 체액의 냄새를 맡는 듯 역하고 거부스러운 느낌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밤나무 꽃 냄새를 반갑게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여인의 향기.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는 그 어느 곳에서도 그런 장면과 언급이 없었다. 다만 미루어 짐작하자면 절망의 한 가운데 있다고 해도 삶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영화 속에서럼 은유되지 않은 단어 그 자체로서 여인의 향기를 좋아한다.
사람의 취향에 따라 향수의 사용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여인의 향기를 즐길줄 안다. 다만 “양들의 침묵”에서 렉터 박사처럼 음흉하게 하지 않으나 무취의 향보다는 인위적일지언정 여운을 남기는 것이 좋아보인다.
여인의 향기는 영화 “여인의 향기”처럼 나에게도 즐거움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