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시계
"이제 신랑신부의 힘찬 행진이 있겠습니다. 하객여러분께서는 우뢰와같은 박수로 첫발을 내딧는 젊은 부부에게 축하 부탁드립니다."
"신랑신부, 행진"
그들을 축하하는 박수와 환호성, 휘파람등으로 결혼식장은 떠들석 했다.
흐믓하게 그들을 바라보는 하객들, 눈물짓는 부모님 여느 결혼식장과 다를바없는 풍경. 그리고 그들을 뿌듯하게 바라보는 나.
속으로 몇번이고 기원하고 기도했던가.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 꼭 행복해야한다'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 여동생과 이제 그의 남편이 된 청년에게 다가가 "정말 축하한다. 내동생 행복하게 해줘" 라고 말하며 청년의 손을 힘껏 잡았다.
이어 계속되는 사진촬영. 신부쪽은 특별히 할일이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시는 친척분들께 인사하는정도가 다였다.
그렇게 그들 부부는 웨딩카를 타고 결혼식장을 떠났고, 부모님께서는 친척어른몇분과 집에가신다고 하신다.
"저는 친구들하고 더 있다가 들어갈께요", 부모님을 먼저 보내고 친구들에게는 "집에 친척어른들 가신다고 해서 먼저 갈께 와줘서 고맙다" 라고 인사를 전하고 혼자 한가한 오후의 도로로 나왔다.
5월 결혼하기 좋은 계절. 따스한 햇살과 어디에 시선을 두어도 초록빛인 가로수.
딱히 목적지가 있어서 혼자 나온건 아니였다. 단지 혼자있고 싶었을뿐.
그렇게 정처 없이 가다가 들어선 곳이 고작 한강 둔치.
시원한 바람, 파란 하늘, 탁 트인 시야, 초록빛 풀밭, 유유히 흐르는 강물.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곳. 매점에서 캔맥주를 하나 사서 강가에 앉았다.
우리집은 가난하다. 모두들 열심히 일한다고 했지만 풍족은 커녕 끼니걱정 안하고 사는 정도를 벗어난 적이 없다.
거기에 아버지의 도박이 결정타를 날렸다. 직장생활을 하던 어머니의 퇴직금을 모두 쏟아붓고도 개인들에게 빌린돈은 아직도 갚아나가고있는 중이다.
이런 우리집에 예금, 현금, 부동산 등의 재산이 있을리가 만무하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렀고 혼기가 찬 여동생은 시집을 가야했다. 이모들이 도와주시고, 내가 약간 모아두었던 현금을 모두 털어 간신히 혼수를 맞출 수 있었다.
내동생 나이 서른, 나 서른둘.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에겐 아직 여자친구가 없다. 그래서 그간 모아두었던 돈을 동생에게 보태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행복하게 웃는 동생의 모습을 보며 미안함에 눈을 맞추지 못했고 그 환한 얼굴을 보고있자니 가슴이 찡해지고 눈물이 나올 것 만 같아서 참느라고 애먹었었다.
넉넉한 가정이었다면, 내가 능력있는 사람이었다면 녀석이 가지고 싶어했던 모든 것들을 다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맥주를 한모금 들이켰다. 목을 넘어갈때의 차가움과 탄산의 느낌. 시원하다.
그렇게 강변에 누워 한참을 생각하다보니 뉘였뉘였 해가 지기 시작한다.
'이제 들어가야겠다'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1. 시련 혹은 고통
내 직업은 카메라를 수입하는 회사의 온라인 영업팀 대리다. 월 200여만원의 월급을 받고 생활하는 평균이하의 월급쟁이가 내 직업이다.
이 회사에 입사하기까지 약 50여 통의 이력서를 써야했고, 4번의 면접을 봤으며, 이 회사의 면접날 에는 개인적으로 '옥션' 등의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에서 판매했던 내역, 입사 후에 내가 펼치고싶었던 마케팅 전략 등등의 서류를 한뭉치 들고가서 면접관에게 제출하고 그에대한 설명으로 면접을 대신했었다.
그리고 합격했다.
그렇게 첫번째 사회생활은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대리라는 직급이 되었다.
영업직 이라는 것이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술자리를 많이 갖게되는데, 거래처와 술약속이 없는날은 영업팀원들끼리 술마시는게 불문율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거부할 수도 없었다. 참여하지 않으면 따돌림을 당하기 때문에.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몸무게는 13kg이 불어나고 통장은 마이너스 상태가 되었다.
내 상태는 그렇고, 어머니는 다니시던 회사를 IMF때 퇴직하시고 지금은 병원식당에서 일하신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제대로 쉬지도못하면서 버는 돈이 한달에 고작 100여만원.
아버지는 무직.
여동생은 결혼으로 인한 출가.
집은 반지하 빌라.
이게 우리 집이다.
그렇게 여동생의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일상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났다.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 핸드폰을 타고 전해져왔다.
"임준범씨 되십니까?"
"네, 전데요, 누구시죠?"
"임성철 씨가 아버지 되십니까?"
"예, 맞는데 누구시냐니까요?" 웬지모를 불안감에 나도모르게 짜증이 났다.
"경찰입니다, 아버지께서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셨습니다."
"거기가 어디예요? 얼마나 다쳤어요? 진짜 저희 아버지가 맞으세요?........" 갑자기 정신이 멍해졌으나 무의식중에도 질문은 계속 되었다.
"여기 영등포에있는 '한강성심병원'이구요, 생명에 지장있을 만큼 다치지는 않으셨어요. 어서 오세요"
"네 지금 가겠습니다."
정신없이 전화를 끊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응급실에 도착한 난 내 눈을 믿을수 없었다.
붉은 피, 찢어진 옷, 살을 뚫고나온 뼈. 고통을 참다못해 기절하신 아버지. 그와 같은 고통이 지금 내게도 찾아왔다.
그리고 분노. 여러명의 의료진들이 내가 다가갈 수 없을만큼 붙어있었고, 이제 정밀촬영에 들어간단다. 그리고 수술을 해야한단다.
그때 경찰제복을 입은 아저씨가 내게 다가왔고, 사건의 자초지정을 알려주었다.
횡단보도에서의 뺑소니 사고, 목격자는 없었고 사건현장에는 부서진 자동차 잔해 몇점과 아버지만 남겨져 있었다는.
다행히 바로 발견한 사람이 있어서 119에 신고가 들어가 빨리 조치할 수 있었다는 불행중 다행의 이야기.
"그럼 사고차량은 잡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물었다.
"잡아야죠,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꼭좀 잡아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그 나쁜놈 꼭 잡아주십시오."
"네, 꼭 잡아야죠."
다행히 아버지의 뇌에는 손상이 없으셔서 의식은 바로 돌아왔다. 하지만 몸의 여러군데의 뼈가 골절되셨다..
그렇게 아버지의 병원생활은 시작되었고, 뺑소니 사고인 관계로 병원의 청구서는 내 앞에 쌓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긴 병원생활은 시작되었고, 한달 열심히 벌어야 200만원인데 그것으로는 몇주치 병원비 밖에는 충당이 안돼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도움을 받고, 빌리고 해서 채워나가고는 있지만 나는 차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가기 시작했다.
내 미래를 위해서 단 한푼도 모을 수 없는 상황, 한달 벌어서 병원비에 모두 털고나면 소주한병 사 마실 여유조차 없는 삶.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 병간호를 하느라 하루씩 번갈아가며 병원잠을 자야했고, 낮엔 계속 일을 해야했다.
그렇게 살아도 돈은 늘 부족했고, 다른사람이 피우다 버린 담배를 줏어 피우는게 이젠 일상이 되어버린 내 생활.
내겐 돈이 필요했고 그래서 하나의 직업을 더 갖기로 했다. 찾던 끝에 격일제로 밤을 새우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갖게되었다.
그 아르바이트는 '보험사'의 전산실에서 '야간 Operator'의 업무를 하는 것인데, 전산장비를 시간마다 체크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보수는 격일밤샘근무로 130만원으로 책정되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계신 병원에서 자고, 하루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집에서 잠자는 시간은 없어졌고, 아르바이트에서 나오는 임금은 없는 돈이라고 생각하고 모두 통장에 모으기 시작했다.
체력이 어느 한계점에 다다르자 무기력증이 찾아왔고, 언제 어디서나 눈만 감으면 잘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회사생활도, 병간호도, 아르바이트도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몸이 따라주질 못했다. 그 무기력증은 금새 우울증이라는 병을 내게 선물해줬다.
항상 잠에 쫓기는 내 상황이 불쌍했고, 불투명한 내 미래가 두려웠으며, 내 현실이 암울했다. 집에서의 잠을 포기하면서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나 항상 마이너스인 생활, 친구도 누구도 만날 수 없는 내 생활.
내가 나 인게 싫었고,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게 싫어졌고, 사람들 만나서 대화하는게 죽기보다 싫었다.
그렇게 내몸은 내 정신은 병들어가고 그럴수록 죽음의 유혹은 항상 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나하나 세상에 없다고 세상이 멈추는 것도 아닌데, 나하나 없어진다고 누구하나 눈물 흘려주지 않을텐데. 힘들어.' 돈에 대한 압박은 점점 더 거세게 나를 몰아치는데 솟아날 구멍은 보이지 않았다.
점점 더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 몇번의 갈림길을 지나 이제는 출구가 어딘지도 모르는 절망감. 멈추어 있을 수는 없어 앞으로 가고는 있으나 확신 없는 발걸음.
그게 지금의 나다.
어느 점심시간 대충 점심을 먹고 책상에 엎드려 잠깐의 수면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의 따듯하고 억센 손길이 내 뒷목을 주물러주기 시작했다.
시원하기도 했지만 잠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나는 귀찮다는 말투로 "누구야?" 라며 짜증을 내고 뒤를 돌아봤고, 그곳에는 짜리몽땅 하고 통통한 우리회사 사장님이 서 계셨다.
우리 사장님은 6.25전쟁때 고아가 되셔서 자수성가하신 분이신데 아무리 힘들때에도 남에게는 절대 피해를 주지 않는 분이시라고 주위 거래처분들이 신임을 주시는 분이시다.
어떤일이 있어도 거래처 결제일과 월급날자는 어긴적이 없다고 하신다. 그것도 시간까지 정해서.
"임대리 힘들지? 나하고 커피한잔 할까?"
"네 사장님. 죄송합니다."
"아니야 죄송할거 없네, 내 자네이야기는 들어서 알고있네"
그렇게 사장님 방에 들어가서 앉았고, 사장님은 손수 커피를 두잔 타서 각각의 앞자리에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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