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에 있는 얘기를 다 털어놓고 싶은데 마땅한 곳이 판밖에 없어서 끄적끄적 적어봐요.
저희 아버지는 대한민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술과 담배를 좋아하고 정말 무뚝뚝하신 아버지셨어요.
술때문에 일을 안나가는 일도 잦고, 그래서인지 어머니와 매일같이 싸우셨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집안살림이 남아나는게 없을정도로 심하게 싸우시고 칼부림나고...결국엔 이혼을 하셨죠.
저는 그걸 겪는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아서 어머니와 함께 살 때도 아버지가 집 문을 부수고 들어와서 어머니와 싸울까봐 뜬 눈으로 밤을 샌 일이 셀 수 없이 많아요.
그래서인지 아버지의 무서운 모습들을 더욱 더 잊고싶었고 성인이 되고나서 겨우 상처에 무뎌졌어요.
최근에는 길에서 아버지랑 같이 도란도란 얘기하는 딸들을 보면 가끔 저희 아버지가 웃는 모습이 떠오르곤 했죠.
보고싶었어요. 시간이 지나니까 아버지가 저한테 해 주셨던 좋은 말들, 저를 사랑스럽게 쳐다봐주시던 눈빛, 맛있는 음식을 해 주시던 뒷모습이 선명해지더라구요.
하지만 연락할 용기도 나지않고 연락처도 모르고 잘 살고 계시겠지... 하며 무심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3개월 전,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몇년만에 들은 아버지 소식이 너무 믿기지가 않아서 몇번이나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어요.
네 아빠 죽었대. 전화를 끊고 한참을 울었어요.
너무너무 아버지가 미웠어요. 결국 이런식이구나. 아버지는 끝까지 나한테 상처만 주고 떠나시는구나...
하루를 그렇게 미친사람처럼 있다가 장례식장에 찾아갔어요.
어렸던 저에게 모질게 대했던 고모들, 친할머니가 저를 보시곤 와줘서 고맙다며 미안하다고.. 하시더라구요.
장례식장엔 정말 아무도 없었어요.
그간 아버지가 어떻게 지냈는지 안봐도 그려졌어요.
일도 잘 안나가고 술을 하루에 5병씩 드시고 간이 안좋아져서 몸이 아프니까 술로 잊어보려고 더 드시고. 결국엔 간경화에 합병증으로 갑자기 돌아가신거더라구요.
할머니가 말씀하시길 아버지는 이혼하시고 따로 사시던 때부터 저랑 저희 오빠사진을 붙들고 사셨대요. 보고싶다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저희 사진을 품고 너무너무 보고싶다고 하셨대요...
저는 또 그냥 서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예나 지금이나 내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손조차 대지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어요.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던건지 장례식동안 제가 뭘 했는지 뭘 봤는지 기억이 잘 안나요.
아버지가 보고싶었을 때 연락처를 찾아서 아버지를 한번이라도 뵀더라면 이렇게 후회하진 않았을까요.
저는 아버지를 떠올리는게 힘겨워서 또 다시 잊으려고 노력해요.
친구랑 시끄럽게 떠들고 웃고 집에서 티비를 시끄럽게 틀어놓고 음악까지 크게 들어요.
아버지에 대한 안좋았던 기억처럼 이 기억도 무뎌지겠죠...
아빠 많이 외롭고 아팠지? 미안해, 내가 철없는 딸이라서. 이 상황을 혼자 견뎌내기가 힘들어서 잊으려고 노력하는 날 용서해줘...
나 지금 아빠 운동화가 그립다. 내가 옷 깔끔하게 입고다니라고 했다고 운동화 이쁜거 사 신었었잖아. 구두를 벗은 아빠가 생소해서 그땐 그냥 잘했어! 하고 말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까 진짜 잘 어울렸었다. 그 운동화...
그리고 누군가가 나한테 언제가 가장 행복했냐고 물어보면 아빠랑 피자사들고 엄마한테 어떻게 애교부려야 엄마 화가 풀릴까 진지하게 얘기하면서 웃고 그랬었던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할거야.
반짝반짝 빛나는 추억 만들어줘서 고마워.
아빤 나한테 정말 소중한 사람이야. 지금에서야 말해서 미안해.
나쁜기억 다 잊고 좋은 기억만 남길게.
사랑해 아빠 다음에 만날 날이 이 생은 아니겠지만 다시 만날땐 꼭 행복하자. 행복하게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