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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선물

슬픈바램 |2006.11.15 12:22
조회 23 |추천 0
소중한 선물



어느 지독히도 따분하던 여름날 오후, 여느 때처럼 텅빈 학교 운동장에서 괜히 애꿎은 헛발질만 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앞집 사는 친구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하는 말이 “야, 너 빨리 집에 가 봐라. 선물 왔더라.” 별 특별한 일 없이 그날이 그날인 시골마을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낯선 ‘선물’이라는 말이 괜히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냅다 뛰어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갔다.



집에는 눈이 부시게 샛노란 책이 자그마치 100권이나 와 있었다. 엄마 말씀이 객지생활 하러 간 둘째언니가 보낸 거라며 부지런히 읽으라 하셨다. 당시에는 동화책 구경하기가 쉽지 않은 터라 무척 기쁘고, 신기하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자랑스러웠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건 대학진학도 포기하고 눈물을 삼키며 객지에 돈 벌러 간 언니가 동생들에게는 책도 많이 읽히고 공부도 끝까지 시키고 싶어 난생처음으로 할부를 끊어 사 보낸 것이었다. 그 뒤 둘째언니는 휴가를 나와도 반가워서 그저 신나하는 우리를 외면하고 보자마자 책 가져와라, 영어단어 외워라, 하고는 시험 봐서 가차없이 알밤을 먹이는 바람에 얼마나 섭섭하고 원망스러웠는지….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들은 지금까지도 책을 가까이 하는 어른들로 자랐다. 결혼하고 아이 책을 살 때 그 일이 생각나 조카에게 똑같은 책을 사서 보내며 언니의 고마움을 다시 한번 새겨보았지만, 아무리 한 들 언니의 그때 그 마음을 어찌 다 갚을 수 있을까?



“언니의 피와 땀이 베인 그 소중한 선물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열매로 남았는지, 어린 시절을 얼마나 알차게 메워 주었는지 언니는 모르지? 언니가 그렇게 애써 주었는데, 특별한 것 없이 평범하게 사는 내 모습이 늘 미안하고 부끄럽다. 언니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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