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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미만 봐라-안토니 후크마의 [개혁주의 종말론] 3

제3장 역사의 의미


  헨드리쿠스 벌코프는 “우리의 세대는 전율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것들은 인간에 대한 두려움, 인류 장래에 대한 두려움, 우리의 뜻과 희망대로 되어지지 않고 오히려 이에 거스려 나가는 우리의 행로에 대한 두려움 등이다. 그리고 이 두려움으로부터 인간존재의 의미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에 관한 환한 빛을 찾으려는 울부짖음이 나오고 있다. 그것은 역사의 의미에 관한 오래된 질문들에 대해 답을 얻기 위한 울부짖음이다”라고 했다. 역사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의 중요한 특성들은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 역사는 하나님의 여러 목적들을 이루는 작업이다.

  진리는 종종 곤경에 처할 때도 있으며 반면에 악이 융성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역사적 사건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동안 하나님이 그것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알아낸다는 것 은 비록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종종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 특히 구속사는 하나님과 그의 목적들을 계시하고 있다고 주장되어야 한다. 


  ② 하나님은 역사의 주님이시다.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신다. 이것은 그가 인간들을 마치 꼭두각시처럼 조종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지는 않다. 자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간의 자유와 그에 따른 책임이 항상 유지되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목적들을 수행하게 하기 위해 인간들의 악한 일들까지도 조정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에 대한 좋은 한 예가 구약성경에 기록된 요셉의 이야기이다. 신약에 나타난 역사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에 대한 최상의 예증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이시므로, 역사에 있어서 가장 악한 일도 하나님의 구속적 섭리의 핵심이 되었으며 인류에 대한 축복의 최상의 원천이 되었다. 


  ③ 그리스도는 역사의 중심이다.

  쿨만은 역사에 대한 구약의 이해와 신약의 이해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점은 역사의 중심점이 미래로부터 과거로 옮겨졌다는 것이라고 한다. 신약 시대의 신자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오심이 그 중심점이며 그러므로 신자는 역사의 중심점과 역사의 최정점,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사이에 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오심이 역사의 중심점이라는 사실은 이 중심적 사건으로 “과거의 모든 것이 성취되어질 뿐만 아니라 미래의 모든 것도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사건은 역사의 모든 것 위에 그것의 특징적인 도장을 찍어놓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류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전적으로 지배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역사는 하나님의 구속의 영역인데 그 속에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의 죄를 이기셨으며 다시 한 번 세상을 그와 화목케 하셨다(고후 5:19). 


  ④ 새로운 세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며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셨기 때문에 새 세대는 정말로 이미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모든 사람이 새 세대의 축복에 동참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새 세대의 존재를 파기할 수는 없다. 


 히틀러가 노르웨이를 점령했었다. 1945년에 노르웨이는 해방을 맞이했다. 그러나 만일 나찌 정권하에 억눌려 있는 몇몇 작은 마을들이 너무도 북쪽 산중에 처해 있어서 몇 주 동안 해방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 동안의 그 마을 사람들을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 마을의 거주민들은 노르웨이의 자유로운 새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기보다는 아직도 나찌 점령 하의 옛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에 무관심하거나 혹은 그 일에 무지해서 악의 세력의 압제로부터 자유롭게 된 세상에 살고 있는 지금 어느 누구나 정확히 말하자면 해방과 구원의 좋은 소식이 전해지지 못한 지역에 살던 노르웨이의 몇몇 마을의 주민들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AD 속에 살면서도 BC 속에 사는 것처럼 지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⑤ 역사의 모든 것은 목표를 향해 움직여 가고 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하여

  신약 시대의 신자들은 역사가 마지막 결정점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역사의 이러한 정점에는 신약 시대의 신자들이 아는 바대로 그리스도의 재림, 성도의 부활, 심판의 날, 새 하늘과 새 땅과 같은 사건들이 포함되고 있다. 


 현세대의 특징적인 활동은 선교사역들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정말로 하나님의 왕국을 새로이 시작하셨다면, 그가 우리에게 진실로 위대한 선교 지상명령을 주셨다면(마 28:19-20), 교회가 해야 할 위대한 사역은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 계속되는 긴장 속에서 살고 있다. 신약의 신자들은 마지막 날들 속에서 살고 있으나 마지막 날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비록 그가 “다가올 세대의 능력들”을 향유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는 죄와 고난과 죽음으로부터 자유스럽게 된 것은 아니다. 비록 그가 성령의 첫 열매를 갖고 있지만 그는 그의 최종적 구속을 기다리면서 내면적으로는 탄식하며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 속에는 두 줄기의 발전이 있다. 방금 기술된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은 그리스도의 초림 이래로 세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왕국의 성장과 발전과 나란히 병행하여 악의 왕국의 성장과 발전을 우리가 동시에 볼 수 있음을 의미하게 된다. 이것은 우리에게 가라지의 비유(마 1324-30, 36:43)에서 예수님께서 사단의 자식을 상징하는 가라지가 추수 때까지 계속 알곡과 함께 자라다가 추수 때에 마침내 가라지가 알곡으로부터 분리될 것 이라는 사실을 가르치신 것을 생각나게 할 것이다. 사단의 왕국이 최후심판의 날까지 하나님의 왕국이 성장하는 한 함께 공존하며 자라 날 것이다. 비록 우리가 역사 속에서 이 두 줄기의 발전, 즉 하나님의 왕국의 줄기와 사단의 왕국의 줄기를 늘 인식해야 할 것이지만 믿음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항상 하나님의 왕국이 사단의 왕국을 지배하며 압제하고 마침내 정복한다는 것을 알게 할 것이다. 


   우리의 역사적 판단들은 모두 잠정적이다. 예수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듯이 그때까지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게 될 것이다. 이것은 최후의 심판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우리의 모든 역사적 판단들은 상대적이며 시험적이고 잠정적임에 틀림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결코 절대적으로 어떤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 선하다 혹은 악하다, 또한-그 사건이 선과 악의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면-악이 지배적이다, 선이 지배적이다라고 확실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만물의 끝이 오기 전까지는 어떠한 역사의 현상도 절대적으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세상은 종종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 좋은 경우가 있고 반면에 교회도 우리가 그럴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더 악한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역사적 사건들은 단순히 흑백논리로 설명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오히려 여러 층의 회색들로서 표현되어져야 할 것이다.(p. 60) 


  역사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이해는 근본적으로 낙관적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역사를 지배하시며 그리스도께서 악의 세력을 이기셨다고 믿는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만물의 궁극적 결과는 악이 아니라 선이며, 우주를 포함하는 하나님의 구속적 목적은 결과적으로 실현될 것이며 “비록 악이 종종 강해 보이나 하나님이 이미 지배자”이시라는 것이다. 


   이 세대와 다음 세대 사이에는 불연속 상태뿐만 아니라 연속 상태도 존재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현세와 내세 사이에는 불연속 상태뿐 아니라 연속 상태가 있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불연속과 연속이 있다면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일해야만 한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왕국을 좀더 완전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이생에 있어서의 우리의 노력은 영원한 중요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도 그의 통치 아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불신자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과학과 문화의 열매들이 새 땅에서도 역시 발견되어질 수 있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 죄에 대한 우리의 싸움들, 우리의 선교사역, 그리스도인 문화를 세우려는 우리의 시도 등은 이생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다가올 세상을 위해서도 가치가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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