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종말론
미래 종말론은 미래에 있게 될 종말론적 사건들을 다룬다. 그러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종말론적 사건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있다. 그리스도께서 사단, 죄, 죽음에 대하여 과거에 이미 결정적 승리를 얻으셨기 때문에 미래의 종말론적 사건은 이미 시작된 구속적 과정의 완성으로 보여져야만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마지막 날에 일어나게 될 것은 이 마지막 날들에 발생하고 있는 것의 완성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p.111)
제7장 육체의 죽음
죄와 죽음과의 관계성에 대해서 살펴 보자. 죽음이 죄의 결과로서 세상에 들어 왔는가? 일반적으로 로마 천주교나 신교의 신학자들은 인간의 죽음이 죄의 결과의 하나라고 가르쳐 왔다. 그러나 몇몇 기독교의 스승들은 다르게 가르쳤다. 5세기경 로마에서 가르쳤던 영국인 수도승인 펠라기우스는 아담의 죄가 세상에 죽음을 가져왔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 운동의 지도자가 된 펠라기우스의 제자 젤레스티우스(Celestius)는 아담은 유한적으로 창조되었고 그가 죄를 짓든 안 짓든 간에 죽음을 맛보게 되었다고 가르쳤다. 종교개혁 시대의 소시니안주의자들(Socinians)은 셀레스티우스와 비슷한 견해를 주장했다. 칼 바르트도 사람의 삶에 있어서 죽음은 죄의 결과가 아니라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그는 죽음의 심판이란 측면과 자연적 죽음의 측면을 구별하여, 인간의 죽음은 인간이 죄에 떨어진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창조의 한 면이라고 본다.
만일 인간이 그의 타락과 상관없이 죽어야만 한다면 왜 성경은 철저하게 죄와 죽음을 함께 연결시키고 있는가? 만일 죽음이 하나님의 선한 창조의 일부분이요 죽음이 자연적 귀결이라면 왜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셔야만 했는가? 더욱이 하나님이 처음부터 계획 했던 바와 같이 죽음이 인간의 종국이라면, 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셨을까? 그리고 성경은 왜 신자와 불신자가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가?
인간 역사에 있어서 죽음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의 한 부분이 아니라 인간의 타락의 결과 중의 하나다. 창세기 2:36~17을 보면, 죄와 죽음과의 관계를 가르쳐주고 있다. 죽음은 금단의 열매를 먹는 데 대한 형벌로서 하나님에 의해 주어졌다. 레온 모리스(Leon Morris)는 “영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이 서로 별도의 분리될 것으로 생각되지 않고 전자가 후자를 포함하는 듯이 보인다.”고 했다. 인간이 죄를 범한 후에 그는 영적인 의미에서 즉시 죽었다. 동시에 인간은 육체의 죽음이 이제 피 할 수 없는 상태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죄와 죽음과의 필연적 관계성은 구약에서뿐만 아니라 신약에서도 가르쳐 지고 있다. 로마서 5:12에서는 로마서 8:10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죽음을 정복하셨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역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보여진다.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들을 죄로부터 속량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죄로 인한 결과들로부터도 구해내셨다. 죽음은 죄로 인한 결과들 중의 하나인 것이다.
왜 신자는 아직도 죽어야만 하는가?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면 우리가 또 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위한 보상이 아니라 다만 죄에 대하여 죽고 영생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죽음이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죄에 대한 보상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그리스도에게는 저주의 일부분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축복의 원천인 것이다. 이상의 모든 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의 “최후의 적”(고전 15:36)인 죽음이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우리의 친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대적자가 우리를 위해 하늘의 복락에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는 하인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광스런 새로운 시작이다. 그래서 우리는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하게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