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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사건. 여성 혐오때문 아니다.

제가 부정맥이 좀 있습니다... 그리고 전 쫄보이기도 합니다...

요 며칠 강남역 살인남 사건을 보고, 관련 글들, 남혐·여혐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정말 심장 떨려서... 떨면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글 한 편 남깁니다.

이야기가 좀 횡설수설 하더라도 이해해주세요.

 

 

강남역 살인남 사건은 여성 혐오에 의한 범죄는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범죄 사건 전문 프로파일러가 분석한 결과이니 믿을 만한 결과일 겁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거죠.

이게 혐오범죄는 아니긴 한데,

피해자는 여성이기 때문에 피해를 당한 건 맞습니다.

 

 

(증오범죄: 소수 인종이나 소수민족, 동성애자, 특정종교인 등 자신과 다른 사람 또는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층에게 이유없는 증오심을 갖고 불특정한 상대에게 테러를 가하는 범죄행위를 일컫는 말. 나치주의자, 쿠클럭스클랜(KKK)등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유색인종에 대한 증오범죄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 박문각 참고)

 

 

정확히 말하면 여성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죠.

참고로 저는 여성입니다.

공부를 하다 문득 거리를 걷는 데 문득문득 공포에 휩싸입니다.

어제 오늘 특히 그랬습니다.

제가 여성(사회적 약자)이라서

길 가다 칼빵을 맞거나, 길 가다 뻑치기를 당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제가 길 가다 칼빵을 맞거나 뻑치기를 당할 확률이 높다는 것에 대해 누구도 분노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글을 읽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하더라구요.

"너무 그렇게 흥분하지마.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여자가 약자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거야. 막말로, 당연히 자기가 제압할 수 있는 약자를 피해자로 고르지. 그건 당연한 거야."

 

 

저는 겁에 질린 사람들(=여성)에게

이 말을 굉장히 이성적으로, 차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남자라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부러워졌습니다.

 

 

잠깐 다른 이야기.

제가 영화 곡성GV를 봤는데요.

거기서 나홍진 감독이 영화를 만든 이유를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자신의 지인이 이유 없이 죽게 됐는데,

사람이 어떻게 이유없이 죽을 수가 있냐고,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데 어떻게 이유가 없을 수가 있냐고. 그런 고민을 하면서 곡성에 대한 스토리를 풀어가기 시작했데요.

 

 

그 23살 여성분이 죽어야 했던 이유는 뭐였을까요.

여성이었기 때문이죠.

사회적 약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이유를 듣는 데, 정말 화가 나지 않으신가요?

화내는 여성들이 짜증나고, 그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화를 내면, 짜증지수가 더 올라가시나요?

 

 

'데이트폭력' 연간 7000명…'연인 간 성폭행'은 5년 새 2배 증가)

(출처: 프레시안)

 

 

올해 3월에 게재된 기사 제목입니다.

어... 물론 가해자와 피해자가 각자 어떤 성별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여성이 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속적으로 폭력을 당해오고 있었죠.

이건 여성 혐오에 의한 범죄가 아닙니다.

그냥... 여성이 여성이기 때문에 벌어진 범죄입니다.

강남역 살인 사건도 그렇구요.

 

 

 

"약자는 약자답게 굴어야 한다."?

 

대부분,

"조심하면 되지."

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정말 조심한다고 되는 걸까요.

 

'통제력 착각의 오류'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사 모든 일은 인과관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겁니다.

저는 천주교 학교를 나왔습니다.

거기서 종교 시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슴을 치며) 내 탓이요, 내 탓이요ㅠㅠ"

하지만 수녀님... 지금 와서 고백하건데, 그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통제력 착각의 오류: 도박이나 주사위 던지기 또는 복권 당첨과 같이 순전히 운에 의해 결정되는 사건도 자신이 선택했다든지 하여 스스로가 관련되어 있으면, 자기가 이를 통제하고 있다고 여기는 착각을 말한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해서 통제감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결국 세상사 모든 일이 순전히 우연한 것은 없고 당사자들에게 책임이 어느 정도는 있는 걸로 믿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교통사고를 당한 행인은 어딘가 부주의한 데가 있었고, 강간을 당한 여자는 당할 만한 소지가 있었다고 여기며, 가난한 사람들은 게으르며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는 구석이 있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 선샤인 논술 참고)

 

통제력 착각의 오류는

문제를 사회의 불리한 구조로 여기는 것보다

당사자들의 탓으로 여김으로써 현상을 정당화하는 상황을 만듭니다.

'개인이 충분히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

그래서 한때 교육부는 이런 성교육 가이드라인을 내놓기도 했죠.

 

 

 

'교육부 성교육 가이드 라인'이 의미하는 것

 

이성 친구와 단둘이 집에 있을 때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친구들끼리 여행 갔을 때
▶친구들끼리 여행 가지 않는다

채팅 중 직접 보고 싶다며 만남을 제안할 때
▶낯선 사람과 채팅은 가급적 삼간다 (지난해 교육부 성교육 가이드 라인)

 

남자친구와 단 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말라는 거겠죠.

여자가 스스로 조심하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건 교육부가 직접 여성에게 남성 혐오를 조장하는 게 아닌가요...

교육부는 왜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합니까.

여성(약자)에 대한 이해와 보호가 합의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여성은 개별적으로 조심히 생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여성이 일반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게 만듭니다.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것에 공분하지 않는 사회

 

어... 오늘 어떤 글을 읽었는데

거기서 어떤 남자분이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어쩌라고. 화장실에 같이라도 가줘?"

 

 

아니요... 그건 괜찮습니다... 화장실은 혼자 갈게요...

중요한 건 공감과 의식 개혁입니다.

약자라고 손쉽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가져주세요.

어떻게 하면 약자들을 보호할 수 있을지 고민해주세요.

여성들이 두려워 하는 문제에 대해 남성들도 함께 두려워하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타개할 수 있을지, 안전한 공간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주세요.

매일요.

 

 

 

"나 먹고 살기도 힘든데 그런 문제까지 관심가져줄 여유 없다."?

이기적인 사람... 나쁜 사람...

"나 먹고 살 여유 생기면 관심 가져주마."?

거짓말하지 말아요... 당신에게 여유가 생길 때가 있을 리가 없어...

사람들은 항상 바쁩니다...

 

 

 

오늘 글을 읽다보니 또 이런 말을 하는 분도 계시더라구요.

 

"나는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해 상관하지 않는다. 관심도 없다. 나는 여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으니까. 이상한 남자 열 놈을 데리고 90명을 후려치기 하지 말아라."

 

 

이건 다른 의미에서 가해자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왕따가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합의가 되지 않은 학교라면

왕따는, 지금 당장 나를 때리지 않는 학생이더라도

그 학생이 언젠간 자신을 때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관심을 가져주세요.

어떤 방식으로든 폭력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나서서 분노하고, 고민하고, 합의해주세요.

추천수6
반대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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