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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정신과치료가 필요할까요?

힘들다 |2016.05.25 02:45
조회 620 |추천 3
안녕하세요
저는 이십대 후반 끝자락에 있는 여자입니다..
잠이안와 누워서 모바일로 쓰고있어서
띄어쓰기나 오타 양해바랍니다.


제가 정신과상담이 필요해보이는지 여쭤보고싶어요..
저보다 더 힘든일 겪으신분도 계실거고
저보다 더 어렵게 사시는 분들도 많으실텐데요
제 친구들이 저를 걱정합니다.


이제 제 얘기를 시작할텐데
글이 너무 길어서 읽기 힘드실거같아요.


서울에서 태어나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아빠.엄마.저.남동생 남부럽지 않게 살고있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때 아빠가 갑자기 시골 할아버지네 가서 살자고.. 막무가내로 이사준비를 하셔서 2학년 겨울방학때 시골로 내려갔어요.
그 집엔 증조할머니,할아버지,새할머니가 같이 사시고 계셨는데 집을 개조해서 방을 두개 더 만들고 같이 살았습니다.
시골에가서 엄마아빠는 농사를 짓기 시작하셨어요.
두 분 다 농사일은 처음이라 시행착오도 많이 겪으시고 해뜨기전에 나가서 깜깜해진 시간에 들어오셨어요.
초등학생인 저와 제 동생은 너무 배가 고파서
엄마아빠 들어오시기 전에 먹을거라도 있나 냉장고라도 열었다하면 새할머니에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니네가 뭔데 내 집 냉장고를 여냐며....
(참고로 그 집은 저희아빠가 지은 집이며 주변 땅들도 아빠가 다 사드린 땅이였어요)
물도 맘대로 못마시면서 동생이랑 방에 숨어서 엄마아빠가 집에 오시기만을 기다렸죠...
그렇게 맞은지 1년정도 지났을때
엄마가 일을 하다가 잘못해서 농약을 흡입하셨어요..
누워있는 엄마 입에서 하얀 거품이 나오는데 너무 무섭고 눈물만 났어요..
그때 새할머니가 더럽게 내집에서 토한다고 당장 데리고 나가라고 소리를 치셨는데...
아직도 제 가슴속엔 제가 맞았을때보더 더 큰 마음의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아빠가 엄마를 업고 병원에 가시고...
우는소리가 듣기싫다며 또 새할머니는 손찌검을 하셨어요..
엄마를 입원시키고 아빠가 집에들어오서셔 욕하고 싸우고 죽여버린다고 난리아닌 난리가 났었습니다..

그 이후로 서로 불편해하면서 같이 살다가
엄마 생일날 저랑 동생은 서푸라이즈 축하파티 하자고 제 친한친구 한명을 불러서 케익도 사고 방에 풍선도 붙이고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를 했는데..그랬는데..
새할머니가 보시곤 다 던지고 상을 엎으면서 지랄하고있다고..당장 치우라고 소리지르더니 제 뺨을 세게 쳤어요.. 제친구는 놀래서 어버버하길래 내일보자고 고맙다고 집에가달라고 하고 보낸뒤에 창피해서 펑펑울었습니다.
좀 심하게 맞아서 그날은 얼굴이 빨갛게 부어올랐어요.
엄마아빠가 퇴근하시고 들어오셔서 제얼굴을 보고 왜이러냐 계속 물으시길래 몇년동안 참아왔던게 터지면서.. 숨도 쉬는게 힘들만큼 울면서 다 얘기했습니다.
할머니가 이사온날 부터 때렸다고... 엄마아빠 일하느라 힘든데 더 힘들까봐 말못했다고 하니
아빠는 할머니 죽인다고 방에서 뛰쳐나가고 엄마는 저를 안고 많이 우셨어요.
(이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파키슨병에 걸려서 식물인간처럼 되셨을때 나가서 놀고싶어서 할아버지한테 수면제 먹이고 놀러다니신....욕도아까운 사람입니다)


할머니랑 아빠는 정말....칼부림 나기 직전까지 싸웠습니다. 다음날 학교갔다오니 저희 가족 짐들이 마당에 나와있고 문이 잠겨있었어요.
엄마아빠가 오셔서 그 짐들을 보시더니 저희를 데리고 여관에 갔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서 한달정도 여관에서 생활하면서 동네에 버려진 폐가를 수리하고 들어가 살게됐는데 그날 저희가족은 서로 껴안고 많이 울었어요..


몇년동안 그 폐가에 살면서 정말 돈한푼 허투루 쓰지않고 열심히 모아서 저층아파트로 이사를 갔습니다.
매일 학교 끝나고 가족 다같이 청소도하고 도배도 하면서 힘들었지만 이제 고생 끝이구나 라는 생각에 너무 행복했어요..
그때 전 고2였고 고3겨울방학때 취업을위해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이럴줄 알았으면 더 엄마아빠 품에 있다가 올라올걸..하는 후회가 많이 남아요.
조그만 무역회사에 취직해서 이모네 집에 얹혀살게됐습니다. 너무나도 제가 사랑하는 이모라 서로 얼굴붉힐일 없이 잘살았어요. 88만원 나오는 월급 모아서 엄마가방사드리고 아빠 지갑사드리고 집에 티비도 바꿔드리고 너무 뿌듯하고 행복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저는 혼자 독립을 하게되었고 회사도 다른곳을 다녔는데 월급이 몇달째 나오지않아서 생활하기가 참 힘들더라구요..그때 현금서비스를 받아서 생활했습니다.. 더이상 이렇게 사는건 안되겠다싶어 평택사는 친구네 공장에 들어갔습니다.
세달만에 빚 다갚고 이제 돈 모으나 했는데 공장이 망했어요.. 백수가된거죠.. 집에다가는.미안해서 말도못하고...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놀러오셨어요. 며칠 너랑 놀다갈거라며..너무좋고 행복했죠. 영화도 보고 맛있는것도 먹고 5만원권이 나왔다며 용돈쓰라고 기념으로 20만원도 받고 같이 술집도 가보고.. 그러다 삼일째되는날 제가 자고있는동안 엄마가 가셨어요..그때가 제나이 스물둘이었습니다.




근데 그게 마지막이였어요....


며칠 뒤에 친구랑 피시방에 있었는데 작은아빠한테 전화가 왔어요.
우시느라 말을 잘 못하시는거에요..무슨일이냐 왜그러시냐 했더니 니네부모님이 방금 차사고로 돌아가셨다고..
너무 믿기지가 않아서 웃음이 났습니다..
친구한테 집에 간다고 말한 뒤 나와서 동생한테 전화로 말을 해줘야되는데 말이안나오는거에요.....
힘들게 사실을 말하고 나도 금방갈테니 너도 빨리 장례식장으로 가라. 하고 통화를 끊자마자 다리에 힘이풀려서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같이있던 친구가 절 쫓아와서 제가 쓰러진걸 보고는 옷도 갈아입혀주고 차도 구해와서 시골에있는 장례식장에 갔어요..

가자마자 사람들이 저를 쳐다보는 눈빛
이미 눈이 퉁퉁부어있는 동생
저보다 먼저 도착해서 일을 도와주고 있던 친구들....
아직도 너무 생생해서 힘들어요..

부모님 확인해보겠냐는 직원 말에 그러고싶다해서 따라간 영안실..처참하게 훼손된 부모님의 시체를 봤어요..
엄마의 머릿결을 보고 아..우리엄마구나 하고 알아봤을정도였습니다.


또 쓰러지고 겨우.정신차려서 상주자리에 앉아있었는데 부모님차를 뭉게버린 트럭의 회사사람들이 왔습니다.
그사람들은 너무나도 어린 저와 제동생을 보고 우셨어요..죄송하다고 미안하다고 용서해달라고...

제가 소리지르고 울고 쓰러질듯말듯 간신히 정신줄잡고있으니 작은아빠가 그사람들을 데리고 나가셨어요.

저의 보물들. 제 친구들과 제동생. 제동생친구들은 3일동안 계속 같이있어주면서 새벽에도 저랑 제동생과 함께 울어주었습니다.

화장까지 한 뒤 집에돌아왔어요.
엄마아빠냄새..집냄새
엄마아빠 이불,옷,집 가구들
하나하나 만져보고 맡아보고 싶었는데
고모들과.작은아빠들이 와서 보험서류와 통장을 찾아야한다며 집을 다 헤집어놨어요..
부의금도 나중에 가족납골함?을 살때 쓸거라며 가져갔습니다...

백수였던 저
스무살인 제동생은 돈한푼없이 집에서 지내게됐어요.

주변 친구부모님들이 음식도 해서 갖다주셔서
다행히 먹는거는 삼일만에 해결이됐어요.

법원,경찰서,은행,보험사 하루에도 몇군데씩 돌아다니며 부모님일을 해결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셋째작은아빠가 가까운곳에 사셔서
같이 다니시며 도와주셨어요.

트럭회사쪽 보험에서 보상금액을 너무 낮게잡아서
작은아빠가 힘써주셔서 그나마 더 받을수있었어요..
근데 그게 깨끗한 마음으로 도와주신게 아니란걸 곧알아챘죠.

내가 이만큼 더 받아줬으니 나한테 얼마를 떼줘라...
(진짜 피를 나눈 사람이 남보다 더 무섭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못하고 마음만 썩히다가 같이살던 이모에게 전화해서 다 얘기했더니 이모가 작은아빠한테 전화해서 엄마쪽이랑.아빠쪽 사람들이 크게 싸움이났어요.

결국엔 작은아빠가 저한테 전화하셔서 '넌이제 내 조카아니다. 싸가지없는년.'하시고 몇년간 인연을 끊고 지냈습니다.

이 사건말고도 내가 니네아빠한테 빌려준돈이있다며
증거도없이 돈을 내놓으라며 사람들이 우루루 찾아왔었어요.
은행다니면서 부모님 통장을 봤는데 돈을 빌릴정도의 상황이 전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도 매일찾아오니 너무 무섭고 힘들어서 2천만원을 드리고 끝냈어요.


위에 언급한 새할머니의 딸들도 자기 아들과 그 친구들을 풀어서 절 감시하고 집앞에서 기다리고....

돈이 뭔지.....

6개월간 제 침대 옆엔 야구방망이가 있었어요.

저보다 어린나이에 너무 힘든일을 당한 동생이 안쓰러워 대학병원으로 정신과치료도 반년넘게 보내고

저도 긴 시간을 방에서 보내고 이제 이겨내고 사람처럼 살아보려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근데 자꾸 제동생이 미쳐갔어요....
얘도 결국 돈의 노예가 되서 내돈이다 내몫이다 돈내놔라 돈이있는데 왜 궁상맞게사냐 쌍욕은 덤이고.... 미치겠더라구요.

제가 자는동안 저희집와서 통장훔쳐가고 하루에 500만원까지도 자기통장으로 이체해놨더라구요..

전 그럴거라는 생각도 못하고 일만 하다가 뭔가 이상해서 통장정리하니 아주 가관이었습니다.

그렇게 동생과 몇년을 싸우다가 제가 홧병으로 쓰러지고 한의원다니면서 치료를 했어요.
그러다가 또 찾아와서 칼들고 돈내놓으라길래
"니가 지금까지 쓴돈만 2억이넘는다..도대체 왜그러냐..뭘더 달라는거냐"
했더니
"그럼 지금 남은돈 반반나누자 내몫이야 내돈내놔"
.........



답답하실수도 있겠지만
나라도 살아야겠다
이거 줘버리고 연끊고 잠이라고 편히 자고 숨이라도 편히 쉬고싶다는 맘에 바로 은행가서 돈 주고 집에왔습니다.


전 여기저기 나눠서 통장마다 예금해놨고
제 동생은 1년도 안되는 시간에
1억5천를 홀랑 날려먹었습니다...
(카드빚도 어마어마하구요)

그리곤 다시 저한테 붙으려길래 안받아주고 모르는곳으로 이사도 가서 편히 살았어요

하나뿐인 피붙이라 항상 신경쓰이고 걱정됐지만
제가 받아주면 끝이없을거같아서
오랜시간동안 생사도 모른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2년전부터 만나게 된 남자친구땜에
동생과 다시 연락하게되고
이젠 같이 살고있습니다.

지난시간에 대한 반성도 충분히하고
지금은 낮엔 공익근무, 밤엔 피씨방알바를 하면서
꾸준히 자기빚을 갚아나가고 있어요.

아직까진 더 지켜보는중이지만...
예전엔 일도 안하고 돈만쓰고다닌거에 비하면
천사가 됐죠...




아직도 예전생각만 하면 가슴속에서 용암이 흘러다니는거같아요..다른 일상적인 생활중에 생기는 작은일에도 심장이 크게 뛰고 손에 땀이납니다.

벌써 7년전 일이고
예전보다 눈물도 많이 마르고
참는것도 잘하고 웃기도 잘웃는데
이제와서 힘들고 미칠거같고
차라리 누가 죽여줬으면하는 마음이 점점커집니다.
출근길에 교통사고라도 났으면 좋겠고
길에 심어져있는 나무를 보다가도 눈물이나요..



예전에 한번 남자친구한테 힘들다고 치료받아보고 싶다 말한적이있었는데 그건 니가 정신이 강하지못해서그런거다. 뭐가그렇게힘들어서 정신과까지 가려고하냐 해서 크게 싸우고난뒤 남자친구한테도 힘든걸 말하지않게됐어요. (남자친구는 왕자님같은 삶을 산 사람입니다)

현재 재정상태도 안좋아서 보험도 다 해약한 상태고
정신과치료를 받으면 나중에 보험가입이 힘들다해서...

대나무숲이라도 가서 소리지르고 울고싶은데
어떤게 좋을지 모르겠어요.

제가 읽고 힘을 낼만한 말이나
다시한번 참고 견뎌낼수있는 좋은 글 이라도
부탁드려요.....

추천수3
반대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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