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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게 떠난 한음이를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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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12월20일 전남 영광에서 태어난 박한음군(8)은 희귀난치성질환인 웨스트 증후군(영아연축)을 앓고 있었다. 한음이는 태어나자마자 고열과 경련, 강직이 너무 심해 혀로 이빨을 밀어내 아랫니 두 개가 빠지고 혀가 찢어지는 등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으로 병원을 전전했다. 처음에는 영광종합병원, 다음에는 전남대병원, 여기서도 별다른 호전을 보이지 않자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으로 옮기며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그리고 생후 15개월만인 2010년 3월 부모는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 얘기를 듣게 된다. 한음이의 병명이 ‘미토콘트리아 근병증’, 즉 세포가 생성되지 않는 희귀병이라는 확진을 받은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축복을 받아야 할 한음이는 젖병 대신 약을 달고 살았다. 3살부터는 몸무게가 8~10kg 밖에 나가지 않았는데, 정상 아이의 2세 몸무게 정도에 해당한다. 쑥쑥 자라고, 성장해야 할 아이는 앉지도, 서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누워만 있어야 했다.

부모는 한음이를 지극 정성으로 돌봤다.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 한음이를 위해 엄마는 하루에 두 시간 정도만 쇼파나 벽에 기대어 자며 보살폈다. 아이는 자신의 상태를 ‘웃는 것’과 ‘우는 것’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했다. 우는 경우가 99%지만, 생후 6개월이 되어서 처음으로 웃는 모습을 보였다. 한음이 엄마는 “그때 제 마음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라고 말한다. 아이의 웃음이 엄마의 고달프고 시린 마음을 눈 녹듯이 녹게 만들었다.

한음이는 하루 24시간 대부분 경련을 일으켰다. 피부 강직도 심했다. 이런 아들을 위해 엄마는 안고, 업으며24시간 품안에서 키웠다. 여기저기 닳고 헤져서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한 ‘아기띠’가 한음이가 어떤 상태인 것을 말해준다. 한음이 엄마도 손가락은 류마티스 관절염, 팔꿈치는 테니스볼 증후군, 무릎은 걸음을 걸을 수 없을 만큼 아파 고생한 적이 많았다.

한음이 부모는 아이의 교육과 치료를 위해 영광에서 광주로 이사했다. 그리고 지난해 3월 광주에 있는 한 특수학교에 우여곡절 끝에 입학했다. 입학가능 실태조사를 할 때 시력(불빛에 반응), 반사신경 없음, 그리고 목 가누기가 가장 걱정이 된다는 판정을 받았다. 고개가 꺾여서 가만히 놔두면 갑자기 경직이 심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됐던 것이다.

한음이의 오른쪽 손에는 화상자국이 있다. 한음이 엄마는 “밥을 하는 도중 앞으로 조금 숙였는데, 한음이의 손이 항상 아래로 축 쳐져 있어서 냄비에 닿아서 생긴 자국이다. 그 뜨거운 냄비에 손을 데었는데, 그 손을 뗄 수 있을 만큼의 근육을 움직일 힘도 없는 아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한음이는 근육을 전혀 쓸 수 없는 중증장애아다. 한 번 고개를 떨구면 스스로 들 수 없는 근육발달 장애까지 앓고 있다.

한음이가 특수학교에 입학한 후 부모는 통학이 가장 염려됐다. 학교 측에 “엄마가 동승할 수는 없느냐”고 했지만, 이것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엄마는 아이가 적응할 때까지 통학 버스에 동승해 3개월 정도 동행하다가 의자를 최대한 뒤로 젖히고 통학시켰다.  지난 3월 한음이는 2학년에 올랐다. 4월1일부터는 통학차량실무사가 교체됐다.

4월6일 오전 7시55분쯤 한음이는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등굣길에 올랐다. 엄마는 한음이를 안고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히고 내려갔다. 이날 통학차량에는 총 18명이 있었고, 한음이가 타기 전에 이미 10명이 탑승한 상태였다. 특수학교 통학버스에는 ‘통학차량실무사’(보조교사)한 명씩 탑승하고 있다. 차량운행 중 학생들의 안전보조 및 지원을 위해 교장이 임명한다. 이날 차량에 탑승한 보조교사는 통학버스를 세 번째 동승했다.

한음이가 버스에 탑승하고 3분 40초 뒤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한음이가 고개를 떨군 상태에서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스스로 고개를 들 수 없었기에 숨이 막혀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그게 안타까웠던지 통로를 사이에 두고 바로 옆 자리에 앉았던 장애학생이 한음이를 계속 쳐다본다.

한음이가 울기 시작한 지 약 6분이 지난 9분21초가 되어서야 보조교사는 한음이에게 다가가 모자를 벗겨주고, 머리를 교정해 준다. 10분41초부터 다시 한음이가 울기 시작한다. 블랙박스 화면을 보면 이미 고개가 많이 숙여져 있다. 그 시각 통학 보조교사는 한음이가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시선을 주지 않고 한음이 옆을 지나 바로 반대편 뒷좌석에 앉았다.

이때부터 보조교사는 휴대폰으로 검색을 시작한다(13분7초) 한음이의 신음소리가 계속 나는데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스마트폰 삼매경에만 빠져있다. 15분42초쯤 한음이는 고개를 들려고 시도하다가 다시 떨군다.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이후에도 한음이는 고개를 들려고 몇 차례 시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20분44초부터는 한 번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계속해서 아래로 떨구고 있다. 이때는 이미 고개를 들려고 시도할 수 있는 힘도 없었던 것이다. 빨리 고개를 세워주지 않으면 기도가 막혀 위험한 상황이었다.

보조교사는 8분23초가 지나서야 휴대전화 검색을 끝냈다(21분30초). 20초 뒤에는 휴대폰을 거울삼아서 얼굴을 비추며 머리를 수 차 례 만지기 시작한다. 얼마 후 보조교사는 휴대전화의 벨이 울리자 급히 뛰어가서 한음이 바로 옆에서 몸을 흔들고 크게 웃으면서 통화한다.한음이를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을 자는 것인줄 알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때 한음이의 상태를 챙겼다면….

37분26초쯤 한음이는 승차 후 10번째이자 생의 마지막 신음소리를 낸다. 죽음의 문턱에서 울음과 신음으로 “선생님, 저 좀 살려주세요!”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보조교사는 도움의 손길을 보내지 않았던 것이다. 한음이가 통학차량에 탑승한 지 약 35분 후에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에 도착해서도 다른 통학자들이 도착할 때까지 보조교사는 한음이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았다. 생명을 살릴 수 있는 6분간의 시간이 더 허비된다. 그러다 45분2초쯤 특수교육실무 교사가 한음이를 보고는 깜짝 놀란다.

“한음아, 한음아, 선생님, 한음이 봐봐요. 입술이 파래가지고. 이상하지 않아 언니, 이상하네”(특수교육실무사).

“울다가~ 울다가~ 애기가 잤어(고개를 떨구는 흉내내며) 울다가 팍~ 울었어 막”(통학차량실무사)

그때서야 한음이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안 학교 측에서는 보건실로 옮겼으나 이미 상태가 심각했다. 얼굴이 창백한 채 기도가 폐쇄돼 심장이 정지되고 호흡이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119구급차량이 도착해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한음이는 그렇게 학교 인근 병원에서 심장박동만 돌아오게 한 후 전남대병원으로 후송됐다. 최초 발견에서부터 심장박동이 살아날 때까지 36분이 걸렸다. 한음이는 심폐소생술로 심장이 다시 뛰기는 했지만, 의식을 찾지는 못했다.

의사는 “뇌파가 거의 일자에 가깝고 뇌가 많이 손상돼서 의식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낙관하더라도 이대로 식물인간으로 누워 지낼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 부모는 실날 같은 희망을포기할 수 없었다

한음이는 이렇게 68일 동안 의식불명 상태로 있다가 6월12일 일요일 오전 10시58분에 하늘나라로 갔다. 통학 보조교사가 조금만 한음이의 상태를 살폈다면 얼마든지 살릴 수 있는 아이였다. 좌석을 뒤로 젖혀만 줬어도 한음이는 살았다.

희귀성 질환을 갖고 태어나 “엄마!” “아빠!”라는 말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짧은 삶을 살아야 했다. 한음이 엄마는 이게 가슴에 한으로 맺혔다. “나한테는 소망이 하나 있었다. 한음이가 ‘엄마’하고 불러주는 것이었다. 그게 얼마나 간절했으면 꿈에서 한음이가 엄마를 불렀다. 어느 날은 우는 소리가 꼭 ‘엄마’하고 부르는 것 같아 ‘응,한음아’하고 벌떡 일어난 적도 있었다”고 말한다.

그래도 언젠가는 ‘엄마’를 부를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한음이 부모는 아들이 사망하기 전 학교와 통학차량실무사를 업무상과실‧중과실치사상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고, 현재 광주 북부경찰서에서 조사 중이다. 몇몇 언론에도 한음이 사건이 보도됐다. 그러나 학교 측은 ‘과실이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통학차량실무사는 초록색 꽃무늬 하의를 입고 장례식장에 왔다. 그는 지금도 해당 특수학교에서 통학차량실무사로 근무 중이다.

이번 사고에 대해 학교 측은 과실도 없고, 통학 관리에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4월27일 광주MBC는“박군은 갑자기 청색증을 보이며 아프다고 호소했지만,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이렇다 할 대응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보도하자 학교 측은 반론보도를 요구하고 “청색증도 보이지 않았으며 학교에서는 적절한 대응을 다 했다”는 취지로 내려했다. 한음이 부모는 "(학교 측은)지역 언론사 4곳에 반론보도를 내려고 시도하였고, 방송사는 15초가량 반론보도를 내려다가 우리의 요구로 무산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교 측의 반론은 무색하다. 일단 통학차량에서 그것도 장애아들을 돌보고 챙겨야 할 통학차량실무사가 있는 상태에서 아이가 위험한 상태에 이르렀고, 이로 인해 결국 사망했다. 차량 블랙박스로 보면 통학 보조교사는 한음이가 신음소리를 내는데도 휴대전화 검색에 몰입돼 있는 등 자신의 업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번 사고는 고의성은 보이지 않지만, 과실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한음이가 떠난 빈자리는 너무나도 크다. 한음이는 3남1녀 중 막내였다. 중학생인 큰형, 초등학생 둘째형, 그리고 한 살 위 누나가 있다. 지금 이 가족에게는 슬픔과 아쉬움 그리고 미안함이 남아 있다. 한음이와의 추억은 뭉게구름처럼 두둥실 가슴을 떠다닌다.

엄마는 한음이를 돌보느라 다른 자식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한참 군것질하고 맛있는 것 타령할 나이인데도 간식 한 번 마음대로 만들어 줄 수 없었다. 함께 놀아주지 못해 늘상 미안했던 엄마는 아이들에게 울며 사과했다. 그때 아이들의 말이 엄마의 가슴을 또 한번 두드렸다. “엄마, 저희들은 아무렇지 않아요. 한음이만 아프지 않으면 돼요.”

한음이의 형들과 누나는 아침마다 싸움을 했다. 서로 한음이 옆에 누워서 동생의 손을 잡고, 만지고 싶어서다.형들과 누나는 한음이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러줬다. 이제 이 아이들에게 동생인 한음이가 없다. 한음이 휠체어를 샀을 때는 최신형 새차를 뽑은 것처럼 온 가족이 기뻐했다. 아파트 주차장을 돌고 또 돌았다. 한음이는 사진도 많이 없다. 엄마는 “항상 사진을 찍으면 고개를 바쳐주는 팔과 함께 나오기 때문이고, 얼굴이 멈추어지지 않아 사진 찍기가 어려웠다”고 말한다.

한음이는 사고가 나기 전 최고의 컨디션이었다고 한다.방에서 몇 시간 동안 누워있어도 울지 않았고, 옆에서 아는 체를 하면 아~ 아~하며 옹알이도 했다. 가족 나들이를 했다. 순창에 있는 강천사에 갔는데, 그것이 가족의 마지막 여행이 되고 말았다.

한음이 아빠는 필자에게 가족이 마지막에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그러면서 “한 번도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다’ 말하지 않고 보살피던 한음이 엄마, 한 번도 불행하게 생각하지 않은 한음이 엄마의 마음을 알려주세요”라고 덧붙였다. 한음이 부모의 극진한 보살핌, 동생의 아픔을 사랑하고 엄마를 이해했던 형들과 누나. 비록 하늘나라로 갔지만 우리는 한음이의 죽음과 마지막 신음소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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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오는 한음이는 제 친구의 동생입니다. 불쌍한 한음이와 그 가족들을 위해서, 혹은 다음피해자가 여러분이 되지 않도록 서명 한번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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