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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모두 꿈 덕분이야..(2)

나옹이 |2008.10.14 11:27
조회 1,655 |추천 0

<이게 모두 꿈 덕분이야..(2)>

 

뜨거운 피의 항쟁이 거리를 휩쓸었던 80년대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에 열광하던 90년대.. 우리는 철없고 부끄러움도 없었던 여중생이었다. 뚝방 아래 작은 판자촌.. 그 곳은 바로 나의 집이었으며 명숙이의 집이기도 했다. 혼자가 아닌 둘이라는 유대감은 그런 초라한 집조차도 그럴듯하게 보이는 힘이 있었나보다. 우리를 아는 사람들이 혹여나 ‘너희 집이 어디니?’ 라고 물을 때면 우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뚝방 밑 판자촌이요’라고 합창하듯 대답했다. 그때 보이던 지인의 안타까운 눈빛도 크게 개의치 않던 우리였다.

 

명숙이는 태어나길 판자촌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였던 그녀는 밤낮으로 시장에서 야채를 파시는 어머니를 대신해 외할아버지, 할머니 손에서 컸다. 처음부터 판자촌의 어둡고 음습한 환경에 익숙했던 그녀는 항상 ‘습한 기운이 오히려 피부를 뽀송하게 한다.. 겉모습만 아슬아슬하지 사실 내부는 정말 아늑하다..’ 며 자신 있게 말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달랐다. 우리 아버지는 한 때 작지만 그래도 간판 단 기업의 사장이었고, 직원들 사이에서도 인심 좋기로 소문난 상사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생일날만 되면 우리집 식구는 물론 전 직원들이 선물을 한 아름씩 안고 찾아와 내 방은 언제나 선물들로 발 딛을 틈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 꿈같은 나날들이 산산조각 난 것은 노크도 없이 찾아온 IMF때문이었다. 험상궂은 표정의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우리집 가구에 빨간 딱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막아볼 세도 없이 몰려든 이 불청객들 때문에 어머니는 혼비백산하여 팔에 매달리고 다리에 매달리고.. 그러다 제풀에 지쳐 이미 빨간 꼬리표가 붙어 있는 쇼파에 털썩 주저앉아 꺼이꺼이 통곡을 하셨다. 그러나 난 그 일들이 그다지 슬픈 일일 것이라 생각되진 않았다.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이 바로 우리 집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색다른 흥분을 불러왔다.

 

'누군가 TV를 틀고 나를 바라보고 있진 않을까?'

 

마치 드라마 속 비련의 여주인공이 나인 양 으쓱해졌다. 남자들 사이를 헤집고 빨간 딱지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섰다. ‘차압’..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압과 희열이 공존하고 있는 단어였다. 그리고 어쩐지 그 빨간 ‘차압’이 내게는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열쇠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 빨간 ‘차압’ 딱지가 없어지던 날 우리는 판자촌으로 왔다. 수척한 얼굴의 아버지는 말이 없었고 어머니는 그날 이후로 멈추지 않는 눈물을 마른 손수건에 연신 닦아내셨다. 처음 판자촌 생활은 명숙이 말처럼 ‘습한 기운이 피부를 뽀송하게 한다 ’ 거나 아늑하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비워졌던 집이었는지 벽지는 군데군데 찢겨져 있었고, 찢겨진 자리에는 프르스름한 곰팡이들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며칠 전 내린 비 탓인지 딱 10평 남짓한 방 바닥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화장실은 아예 방 안에 있지도 않았다. 집 앞을 나와 5분 정도 걸으면 공용으로 쓸 수 있는 간이 화장실은 심지어 푸세식이었다. 예전 아버지의 회사사람들과 부부동반으로 떠났던 시골 여행, 급히 볼일을 보기 위해 뛰쳐나갔던 어느 촌동네의 화장실도 딱 그 모양이었는데.. 볼 일을 보다보면 마치 그 어두운 구멍 안에서 쑥- 손이 튀어나올 것만 같아 ‘엄마~’를 외치며 뛰어나온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사를 오면서 아버지가 내게 신신당부한 말이 하나 있었다. 혹시나 어떤 낯선 사람이 “너희 아버지 000 이니?”라고 물어본다거나 “지선아 너 여기 사니?”라고 살갑게 군다면 절대로 대답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꺼낼 때의 아버지 얼굴이 마치 교과서에 실린 이순신 장군처럼 비장해 보여서 차마 이유도 묻지 못하고 얼른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실 때는 정말 그렇게 따라야만 한다는 것은 어릴 때부터 불문율과 같았다. 아마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약속을 한 이후로 나는 누구에게도 아버지 이름을 들먹이거나 우리가 이 동네에 산다는 것을 떠들고 다니지 않았다. 물론 딱 한사람, 명숙이와는 이 비밀들을 공유했다.

 

명숙이의 바로 옆 집에 이사 왔던 나는. 바로 그날 밤부터 명숙이와는 베스트가 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집을 치우다 지쳐 나온 뚝방 길에서 나와 같은 또래의 여자애를 봤을 때, 마치 오랜시간 기다려온 사람을 본 것 처럼 두근거렸다. 명숙이 역시 그랬다고 한다. 판자촌에는 대부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살고 있고, 아이들이라고는 이제 막 초등학교 입학한 꼬맹이 뿐이라 여간 적적했던 게 아니었던 명숙이는 귀티나게 생긴 양갈래의 소녀가 자신 쪽으로 오는 모습을 본 순간부터 운명처럼 ‘저 애와는 단짝이 되겠구나..’라고 느꼈다고 했다. 중학교도 같은 곳을 다니면서 마치 델마와 루이스처럼 붙어다녔던 우리는 우정 서약서도 썼다. 그 맨 윗줄의 내용은 바로 ‘서로에게 비밀이 없기’ 였다.

 

나는 내가 가진 최고의 비밀.. 아버지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명숙이도 자신 집안의 과거사를 모두 털어놓았다. 사실 내 이야기보다 명숙이의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그녀의 아버지는 조폭이었고 어머니는 아버지와는 오랜 연인이었다고 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조폭이 되기 전.. 그러니까 학창시절 그는 00남고의 짱이었고, 어머니는 00 여고의 짱이었다고 한다. 그 둘은 열혈이 사랑했지만 한 때 이별한 적도 있었다. 바로 그녀의 아버지가 군대에 갔을 때. 갑작스런 어머니의 이별 통보에 군대를 탈영한다고 난리 난리 친 아버지.. 그 때문에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딱 한 번 면회를 갔다고 한다. 그리고 첫 면회 날, 지금의 명숙이를 임신했다. 명숙이는 아버지가 자신의 똘마니에게 칼부림을 당하기 전까지 어머니는 자신만 보면 ‘ 너 땜에 내 인생 망쳤다’라는 말을 버릇처럼 내뱉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말만 들으면 내 눈가에는 눈물이 촉촉해졌다. 사실 단 한 번도 부모에게 매 맞거나 혼난 적이 없는 명숙이였지만, 어쩐지 그녀가 오랜 세월 부모로부터 구박 받아 온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우정은 빠른 시간 내에 아주 튼튼하게 지어진 성과 같았다. 그 어떤 모진 폭풍과 해일이 덮친다 해도 우리의 성은 털끗 하나 까딱하지 않을 거라 여겨졌다. 그러나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면.. 이 견고한 성을.. 하필이면 모래 위에 지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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