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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세 청년 학교를 설립하다!

danny4mk |2016.07.16 11:23
조회 125 |추천 0

대륙횡단 그리고 미국대학 탐방!

 

1년 넘게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고 돈을 모았다. 그리고 야간대학에 다니며 대학 수업의 분위기를 경험했다. 가족과 교회 분들의 도움으로 미국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이제 정식으로 대학에 입학해서 공부를 해야 할 때가 왔음을 느꼈다. 드디어 나도 대학생이 되는 것이다. 나는 미국 대학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자유롭고 열정적이고 활기찬 미국 대학! NCAA, 미국 대륙 여행, 연애, 그리고 아름다운 도서관!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 당시 미국 대학입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초여름 어느 날, 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동차 창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내 취미 중 하나가 드라이브였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울적할 때, 난 차를 몰고 I-44 고속도로로 나갔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놓고 바람을 맞으며 우울한 기분을 달래곤 했다. 저 멀리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광대한 미 대륙의 숨결을 마음에 담았다. 끝도 없이 펼쳐진 평지, 그리고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 이 설명할 수 없는 대자연속의 신비를 경험하며 가끔씩 난 눈물을 흘리곤 했다.

 

외로움, 쓸쓸함, 막막함, 알 수 없는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힘들 때마다 난 대자연을 만나고 그 광활함과 아름다움에 감동해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언제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던 그 여유로운 자연의 모습. 그 대자연의 넓은 품에서 난 하나님을 느낄 수 있었으리라! 이방인으로서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해야만 했던 그 상황에서 어쩌면 난, 내가 아닌 모습의 어색한 가면을 뒤집어쓴 삐에로는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메우자 답답해졌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째서 난 지금까지 미국에 와서 단 한번도 미국 대학을 방문하지 않았을까? TV, 영화를 보며 내가 동경해왔던 그곳을 난 단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다. 갑작스럽게 이런 생각이 났고, 난 차를 세웠다. 곧 I-44고속도로를 빠져나가 차를 돌렸다. "하버드로 가자!"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없이, 나의 첫 번째 미국 대륙횡단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몇 시간을 달렸을까? 미주리Missouri에서 출발한 난 머지않아 일리노이Illinois 주를 거쳐 인디애나Indiana 주에 도착했다. 저녁이 늦어 모텔(Inn)을 찾아서 들어가기로 했다. 다행히도 미국엔 여행하는 사람과 대형트럭 운전기사들이 많아 고속도로를 가다 보면 이들을 위한 저렴한 숙소가 많았다. 호텔은 조금 비싼 편이었고 중저가 Holiday Inn이나 Suite같은 경우도 내게는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일반적인 숙소의 가격은 70달러에서 140달러 정도로 내겐 너무 비쌌다. 그래서 난 소규모로 운영되는 Economy Inn이나 Motel 6와 같은,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곳을 찾아 들어갔다. 내게 필요한 것은 잠시 들러 잠을 자고 샤워를 하는 것! 특별히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숙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세를 포함해서 40달러 정도 하는 작은 모텔에 들어갔다. 트윈베드, 작은 TV와 냉장고, 그리고 깔끔하게 청소된 화장실! 내겐 이 정도면 괜찮았다. 모텔 서랍을 열어보니 작은 성경이 들어있다. 그리고 지역 지도 책자가 있다. 지도를 살펴보고 내일 일정을 간단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잠언(Proverbs) 말씀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이른 아침부터 대형 트럭의 시끄러운 시동소리에 잠에서 깼다. 트럭 운전사들은 먼 길을 가야 했기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들고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먹으러 가서 베이글과 크림치즈, 커피와 오렌지주스, 그리고 사과 하나를 챙겼다. 미국식 아침은 참 부담이 없어서 좋다. 안타깝게도 저렴한 모텔이어서 그런지 내가 좋아하는 베이컨과 와플은 제공되지 않았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모텔비를 계산하고 나왔다.

 

아침 7시, 오늘의 목표는 펜실베이나주 헤리스버그(Harrisburg)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인디애나에서 헤리스버그에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주유(Texaco)에 들러 기름을 채우고 내가 좋아하는 스낵 몇 개를 챙겼다. 스타버스트(Starburst), 말린 바나나 스낵, 그리고 매운 매운 육포(Beef Jerky)와 닥터페퍼(Dr. Pepper!) 이것들만 있으면 몇 시간을 즐겁게 운전할 수 있으리라! 스낵을 두둑히 차에 챙기고 달리고 또 달렸다. 일리노이 그리고 인디애나 주를 지나가며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옥수수밭, 콩밭,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속도로!

 

직진 그리고 또 직진! 자동차를 홀로 운전하며 미국 대륙을 횡단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다. 몇 시간 째 운전대만 잡고 먼 길을 그저 달리기만 해야 했다. 저렴하게 구입한 중고차에게 크루즈(Cruise) 장치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었다. 크루즈 장치라도 있으면 버튼을 눌러놓고 훨씬 편하게 달릴 수 있었을 텐데 엑셀을 계속해서 밟고 있으려니 발에 쥐가 나는 듯했다.

 

몇 시간을 달렸을까? 배가 고파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내가 도착한 곳은 오하이오의 어느 작은 마을! 감사하게도 맥도날드, 알비스, DQ, 타코벨 등 내게 익숙한 음식점들이 많았다. 이중 알비스(Arby's)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로스트비프 샌드위치(Roast Beef Sandwich)를 파는 패스트푸드점이다. 소고기를 덩어리째 오븐에 구운 뒤 얇게 갈아 햄버거 빵에 넣어서 준다. 참 단순한 요리이지만 맛은 일품이다. 이 샌드위치에 홀스래디쉬(Horseradish) 소스를 넣고 닥터페퍼(Dr. Pepper)와 함께 먹으면 환상적인 맛을 경험할 수 있다. 홀스래디쉬 소스는 약간 쏘는 맛이 있는 흰색소스인데 와사비맛과 비슷하다. 로스트비프의 텁텁한 맛과 홀스래디쉬의 쏘는 맛! 여행을 하며 맛보는 참 즐거움이다. 점심을 먹고 또 기름을 채우고 차에 올랐다. 먼 길을 가야 했기에 지체할 수 없었다. 오늘 목표는 펜실베니아! 얼마나 가야 할까? 부산에서 북경까지 자동차로 쉬지 않고 달리는 것과 같은 거리를 난 겁도 없이 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늦은 저녁 펜실베니아주 헤리스버그(Harrisburg)에 도착했다. 몇 시간을 운전해서 그런지 배가 고팠다. 헤리스버그 수도Capital 근처에 있는 일본식당에 들어가 카츠돈(Katsu Don)과 캘리포니아롤(California Roll)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자마자 정신없이 먹어 치웠다. 배가 고파서였을까? 평범한 음식이 무척이나 맛있게 느껴졌다. 계산을 하고 나와 수(Capital) 건물 근처에 차를 주차했다.

 

그리고 가로수 사이를 걸었다. 거대한 건물들, 여기가 유럽인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건물들이 아름다웠다. 시원하게 부는 바람과 거리를 걷는 연인들, 아이들, 그리고 관광객들 사이에 난 홀로 서 있었다.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익숙하지 않은 길을 걸으며 생각에 빠진다.

 

행복했다. 내게 젊음을 허락해주신 하나님. 난 가진 것이 많지는 않았지만 부족한 것도 많지 않았다. 내게 필요한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주셨다. 건강, 젊음, 그리고 시간!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난 가능성이란 선물을 받았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가지만 모든 것이 나에게는 새로운 기회였다. 그 기회를 통해 난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한동안 아름다운 야경에 심취해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벌써 밤 9시가 다 되었고 난 숙소를 찾아야 했다.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가지고 나와 묵을 곳을 찾기 시작했다.

 

미국 중서부의 주에서는 저렴한 가격의 숙소를 쉽게 찾았는데 이곳에서는 저렴한 모텔을 찾기 어려웠다. 그나마 다른 숙소보다는 저렴한 홀리데이인 (Holiday Inn)이란 숙소로 들어갔다. 기존에 내가 이용하던 모텔보다는 조금 비쌌지만 시설은 참 훌륭했다. 실내수영(Indoor pool)과 헬스(Gym)이 있었다. 짐을 풀고 매점에 가서 음료를 구입해서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깔끔하게 정리된 트윈 침대, 대형TV, 그리고 구석에 컴퓨터용 책상 하나와 편한 사무용 의자가 눈에 띄었다. 나는 가차없이 침대 위로 뛰어 올랐다. 내 몸을 받아주는 편안한 침대에 잠시 누워있다가 TV를 켰다. 채널이 참 많았다. 채널을 돌리는데 스패니쉬(Spanish) 방송이 나왔다. 스패니쉬 사람들은 참 흥이 많아 보였다. 평소 좋아하던 영화 채널을 틀어놓고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잠에서 깼다. 참 편하게 잠을 잘 잤다. 오늘은 무엇을 할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오늘 나의 목표는 뉴저지를 통해 뉴욕까지 들어가는 것이다. ‘갈 길이 멀다. 어서 식사를 하고 일정을 시작하자!’ 서둘러 숙소 식당에 가서 아침을 먹었다. 홀리데이인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를 그럴 듯했다. 깔끔하게 정돈된 테이블, 다양한 메뉴들과 과일 그리고 샐러드까지! 와플을 굽고 스크램블에그에 후추를 뿌려서 가져왔다. 오렌지 주스와 포도 주스 한잔씩! 2% 우유 한잔과 오트밀(Oatmeal) 시리얼을 챙겨 놓고 베이컨과 토스트 2개를 구워 왔다. 풍성한 아침이었다. 든든하게 식사를 하고 사과 하나를 챙겨서 숙소로 돌아왔다. 아침에 샤워를 하는 습관이 있는 난, 신속하게 샤워를 마치고 짐을 싸서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뉴욕까지 간다. 자동차를 몰고 나와서 다시 고속도로를 향해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펜실베아니주가 이렇게나 크다니! 새삼 다시 놀랬다. 죽었다 생각하고 운전에 몰입했다. 그리고 어느새 뉴저지에 도착했다. 뉴저지에 가서 큰 한인마트와 식당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짜장면과 군만두가 먹고 싶었다. 유레카!(Eureka!) 찾았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한인마트를 찾았다. 사이즈는 월마트의 1/3 정도였지만 미국에 와서 이렇게 많은 한국사람과 이렇게 많은 한국 제품들은 처음이었다. 마트 창문에 이영애씨의 화장품 광고 사진과 여러 한국 연예인들의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참 반가웠다. 미국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내가 있던 미주리주 세인트로버트시(St. Robert, Missouri)에는 한국의 구멍가게만 한 한인 마트가 하나 있었다. 물론 고추장이나 라면 같은 것들은 구입할 수 있었지만 뉴저지의 마트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마트를 돌아다니며 여러 한국사람들을 만났다. 정말 반가웠지만 그 누구도 모르는 사람끼리 인사하지 않았다. 여긴 한국사람이 많아서 서로 그냥 지나치는구나! 마트에서 작은 김치를 하나 샀다. 느끼할 때마다 하나씩 집어 먹어야지. 흡족했다. 이것 저것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갔다. 계산도 한국말로! 미국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한국말로 계산할 수 있는 곳이 있구나. 내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마트에서 구입한 물건들을 차에 실어놓고 난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국식당으로 갔다. 그리고 드디어 군만두와 짜장면을 먹었다. 이것으로 난 아주 중요한 일정 하나를 마쳤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난 뉴욕에 들어가야 했다. 서둘러 차에 올라 뉴욕으로 향했다. 뉴욕에 도착했을 땐 이미 초저녁이었다.

 

말로만 듣던 뉴욕(New York), 드디어 내가 뉴욕에 왔다. 그런데 생각보다 뉴욕은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는 내게 그저 시끄러운 곳이었다. 자연 속에서만 지내던 촌놈이 대도시를 만났을 때의 충격이었을까? 빛의 속도로 운전하는 택시 기사들, 현기증을 일으킬만한 거대 빌딩들, 하이힐을 신고 극장을 나오는 여성들, 그리고 길을 잘못 들어 헤매다가 찾게 된 할렘가! 할렘가에 대한 무서운 이야기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길거리가 무서워서 기도하며 운전하기 시작했다. 할렘가를 신속히 벗어날 수 있기를! 신호등에 걸려 잠시 대기할 때, 난 몇몇 사람들이 둥글게 둘러서서 돈을 주고 비밀봉투를 건내는 모습을 포착했다. 저게 말로만 듣던 마약거래인가? 자동차 문을 잠갔다. 그리고 창문이 끝까지 다 닫혀 있는지 재차 확인했다. 어떤 흑인 두 명이 내 차로 다가왔다. 난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이 사람들이 총을 가지고 있진 않겠지? 총을 겨누면 난 문을 열어줘야 하나? 다행히도 신호등이 바뀌었다. 신속하게 엑셀을 밟고 달렸다. 근데 또 신호등에 걸렸다. 신호등 앞에 대기하고 있던 홈리스(Homeless) 아저씨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가슴에 올려진 종이를 내 눈을 바라보며 번쩍 들었다. "Homeless. I'm starving. Please help!" 들고 다니던 팻말을 운전석 창문으로 들이민다. 혼돈스럽다! 창문을 열어 몇 달러라도 챙겨줄까? 창문을 열면 바로 총을 꺼내면 어쩌지?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이 환경이 나를 두려움으로 몰고 갔다. 결국 난 돈이 없다고 손을 흔들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사실 난 돈이 있었다. 다만, 창문을 열고 그 사람을 도와줄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양심이 나를 정죄하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돈을 줬으면 됐을 텐데 그 정도 용기도 없니, 넌? 비참한 심정, 두려운 감정, 도망가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혀 난 뉴욕을 누리지 못하고 그냥 나와버렸다.

 

뉴헤이븐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찾았을 때, 난 천국으로 가는 길을 찾은 것만 같았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난 뉴욕을 뒤로한 채 코네티컷주의 뉴헤이븐(New Haven, Connecticut)으로 향했다. 예일대학교에 방문할 목적이었다.

 

두, 세 시간쯤 달렸을까? 늦은 밤, 뉴헤이븐에 도착했다. 난 예일대에 들어가지 않고 숙소를 먼저 찾기로 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피곤했다. 뉴욕에서 너무 긴장하며 운전을 했을까? 뉴헤이븐에 도착했을 때 손발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오늘도 열 시간 이상은 운전했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숙소를 찾다가 작은 모텔을 하나 발견했다. 모텔 오피스에 들어가보니 인도사람이 나왔다. 하룻밤에 80달러쯤 했다. 어제까지 돈을 생각 없이 너무 많이 쓴 것 같아 돈을 조금 아끼고 싶은 마음에 인도 아저씨와 흥정을 시작했다.

 

홀리데이인이나 햄튼같은 큰 회사형 숙소에서는 흥정이 불가하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모텔은 얼마든지 흥정이 가능하지 않을까? 내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숙소 가격을 깎기 시작했다. "Sir, I am a visitor, here. As you see, it's already late. I'll just sleep and leave early in the morning. Can you please lower the price for me just once? All I have is 50 dollars. I need no receipt. And I will maintain the room neat and clean." (전 이곳 방문객이에요. 보시다시피 이미 밤이 깊었고, 전 잠만 자고 내일 아침 일찍 떠날 겁니다. 한번만 깎아주시면 안 될까요? 50불밖엔 없어요. 영수증도 필요 없어요. 방도 깨끗하게 사용할게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논리를 다 동원해서 모텔비를 깎아달라고 사정했다.

 

인도사람들이 인정이 많은 건지, 아니면 이미 지쳐서 녹초가 된 동양인 학생이 처량해 보였는지 알 수 없지만 가격을 깎아주셨다. 80불하는 방을 60불에 해주셨다. 내가 원했던 가격보다는 조금 비쌌지만 만족했다. 감사의 말을 거듭한 뒤, 숙소 키를 받아서 방에 들어갔다. 엄청나게 넓은 방! 넓은 뜰이 보이고 바닷가 파도소리가 들리는 방이었다. 숙소에 들어가 손발을 씻고 나는 침대에 오르기 무섭게 잠들었다. 피곤하면 피곤할수록 잠은 깊이 찾아오고 휴식의 달콤함이 행복함으로 나의 몸을 감쌌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예일대학교로 향했다. 예일대는 내게 참신한 충격이었다. 학교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고딕양식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웅장한 캠퍼스 건물들과 생동감 넘치는 캠퍼스의 분위기가 나를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예일대학교는 내가 좋아하는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의 모교이자 그가 교수로 재직했던 학교이다. 약 300년 전 조나단 에드워드가 이곳에서 공부했겠지. 조나단이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을 걸었을 거야. 혹시 조나단도 나처럼 건물을 만지고 다녔을까? 조나단 에드워드는 예일에서 공부하고 나중에 프린스턴 대학교(Princeton University)의 3대 총장으로 재임하고 이른 나이에 지병으로 생을 마감한다. 55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조나단 교수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역사 속의 인물 중 한 명이다. 예일대에 와서 그의 발자취를 따라다닐 수 있다는 자체가 내겐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해서 난 로드아일랜드 주 프로비던스(Providence, Rhode Island)를 향해 갔다. 그곳에 내가 좋아하는 브라운대학(Brown University)이 있기 때문이다. 이 여행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방문하는 곳, 만나는 사람들이 내게는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여행은 참 많은 것을 선물하는 것 같다. 로드 아일랜드로 가다가 배가 고파서 작은 마을에 들어갔다. 그곳에 중국뷔페 식당 (Chinese buffet)이 있었다. 다행이다. 이곳에 중국뷔페가 있다니!

 

행복한 상상을 하며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중국뷔페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수많은 중국음식들, 새우볶음밥(Shrimp Fried Rice), 오렌지치킨(Orange Chicken), 볶음국수(Noodles), 바비큐치킨(BBQ chicken), 시푸드(Seafood items), 치킨(Fried chicken wings), 비프 앤 브로콜리(Beef with broccoli), 샐러드(salads) 등 수많은 음식들을 8불만 내면 다 먹을 수 있는 찬스! 어떤 사람들은 중국음식이 너무 기름지고 달아서 싫어하기도 했지만 내겐 양질의 다양한 음식을 값싸게 먹을 수 있는 행복한 기회였다.

 

한 시간 넘게 배를 채웠다. 더 이상 음식이 들어갈 수 없을 때까지 먹고 식당에서 나왔다. 이렇게 행복한 식사가 또 있을까? 감사한 마음에 3달러를 팁으로 테이블에 올려놓고 일회용 음료 컵에 탄산음료를 꽉 채워 들고는 차로 돌아왔다. 사이다가 소화를 도와주리라! 또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로드아일랜드를 향해 갔다. 얼마쯤 달렸을까? 운전이 이제 지루하다고 느낄 즈음 난 로드아일랜드 주 프로비던스에 도착했다.

 

프로비던스(Providence)의 첫인상은 "와~"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프로비던스는 프랑스 사람들이 이민 와서 세운 도시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만 프로비던스의 외관은 흡사 유럽의 한 도시와 같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가파른 언덕을 넘어 좁은 길을 통과해 내려갔을 때 나는 브라운대학교를 만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작고 아담한 캠퍼스에 놀랐다. 이곳에 세계적인 석학들이 다 모이는구나! 대학가를 잠시 걷다가 다시 차에 올라탔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지체할 수 없음은 내 마지막 목적지는 하버드대학교(Harvard University)였기 때문이다.

 

얼마쯤 운전했을까? 프로비던스에서 보스턴(Boston)은 멀지 않았다. 보스턴에 들어온 나는 사람들에게 물어 하버드를 찾아갔다. 하버드는 케임브리지(Cambridge)라는 작은 도시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엠아이티(MIT) 공대가 있었다. 세계적인 대학 두 개가 이렇게 붙어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두 대학은 가까웠다. 하버드대학교! 세계 모든 사람들이 최고의 대학을 이야기할 때 하버드를 빼놓지 않는다. 하버드대학교는 그 명성만으로도 이미 초인류 대학임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차를 주차해놓고 난 하버드대학교를 돌아보았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학교였다. 존 하버드(John Harvard)목사의 앉아 있는 동상! 그의 왼쪽 발은 이미 닳아있었다. 이 동상의 왼발을 만지면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한다는 속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발을 쓰다듬거나 심지어 키스를 하기도 한다. 정장을 입고 오른쪽 무릎 위에 책을 펴고 시선은 앞을 향하고 있는 존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존의 발에 키스를 할까? 하지 말자! 난 하버드대학교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물론 들어올 실력이 안 될 수도 있지만 받아준다고 해도 들어오고 싶지 않았다. 딸 수 없는 포도가 쓰다고 비난하며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난 남들이 원하는 것을 생각 없이 따라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버드에 온 목적은 미국 대학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기 위함이지 무조건적인 동경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하버드대학교는 내게 그렇게 매력적이지 못했다. 캠퍼스 분위기만 놓고 본다면 예일대에 비하면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해 보였다. 물론 개인들의 취향은 다양하겠지만 내게 하버드대학교는 그저 여러 많은 대학 중 하나일 뿐이지 특별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하버드대학교는 탁월한 교육시설과 세계적인 학자들과 석학들이 모이는 초일류 대학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런 대학을 이렇게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 이번 여행은 많은 것을 남겨 주었다. 하버드대학교 앞에 위치한 서점에 들어가 난 하버드대학교 티셔츠와 공책 몇 권을 구입한 뒤 다시 차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것으로 내 여행을 마치고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사실 처음 계획은 남부로 가서 프린스턴대학교와 애틀란타에 가서 에모리대학교(Emory University)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버드대학교를 보고 난 뒤 생각이 바뀌었다. 집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다시 내 삶에 충실하자! 내가 품은 광대한 꿈은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다시 책을 들고 공부에 전념하리라! 이렇게 7일, 4500 km의 대장정을 마무리 했다.


"심장이 뛰는 소리" by 가현진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808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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