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몸이 약해 자주 감기몸살로 고생했다.
심한 감기몸살에 걸리면 작게 호흡하는 일조차 힘겹게 느껴진다. 몸이 축 가라앉은채로 숨을 내쉴 때마다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듯한 기분에 정신이 아득해지면 부모님의 지극한 병간호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나홀로 내버려진 듯한 서러움에 눈물이 흘렀다.
아무리 여러번 겪어도 적응되지 않는 이 느낌이 너무 싫어 빨리 몸살기운을 떼어내고 싶은 마음에 더운 날씨에도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잠에 들려고 했다. 이내 깨어나면 축축해진 이불을 느끼며 정신이 조금 맑아졌나 싶더니 한번의 심호흡에 다시 아득해지며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화가 났던 것도 더러 기억난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픈 날보다 아프지 않았던 날이 훨씬 많았기에 언제 아팠냐는듯이 다시 털고 일어나면 그 절망스러웠던 기분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지낼 수 있었다.
나이를 먹으니 몸은 더 튼튼해졌다.
별탈 없이 대학에 진학했고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을 만나고 나이를 하나씩 먹어갔다. 예전만큼 아파서 앓아 누운 기억도 최근엔 없고 덕분에 고열로 고생하며 침대 속 이불 신세를 지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몸이 아닌 마음으로 침투하는 감기몸살균에 상처를 입으며 서서히 약해져만 갔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조차 모르는 바보로 변해가고 있었다. 세상의 많은 것이 미워보였고 그 중에서도 가장 용서할 수 없이 미웠던 것은 무엇보다 가장 홀대하며 살던, 나약해빠지기만 했던 나 자신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너를 만났다.
사랑이나 연애같은 것에 대해 둘 다 무지한 상태였다. 시작은 그저 서로에 대한 불타오르는 감정이었지만 내게 점차 사랑을 일깨워주면서 너는 곧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고, 뜨거운 연인이 되었고, 가족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토록 싫어했던 내 까만 피부도 진심으로 사랑해주었고, 수시로 격동하는 난폭했던 감정들까지 소중히 아껴주었고, 마음의 빈틈 곳곳으로 침투한 수많은 세상의 감기몸살균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며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마치 아무 조건 없는 듯 한결같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던 너를 보며 사랑은 꿈틀댔고, 너를 사랑하는 방법을 하나씩 배우며 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법까지 배워갔다. 몸이 앓았던 병을 툴툴 털어버리고 그 아픔을 이내 잊어버렸던 유년시절처럼 끊임없이 네 곁을 지켜주는 너로 인해 어느샌가 마음의 병도 싹 다 잊어버린듯이 나는 단단하게 성장해가고 있었다.
그런 줄만 알았다. 적어도 너와 헤어지기 전까지는.
이 시기가 오지 않을 거라 믿고 싶었지만 삶이 바빠지고 상대에게 하나둘씩 소홀해지자 우리 사이에도 권태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권태의 근원은 외로움이라는 감기몸살균으로 내 안에 스며들어 우리의 관계를 점차 쇠약하게 만들어갔다. 하지만 홀로 있던 예전의 나약했던 모습을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나는 강해졌고 더이상은 몸살을 떨쳐버리기 위해 이불을 꽁꽁 싸매는 일 밖에 모를 정도로 어리숙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네가 없는 삶을 상상해본 적은 없었지만 각자의 바빠진 삶의 틈에 끼어들기 힘들어질 정도로 우선순위에서 밀려 지내는 서로라면,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우리라면 헤어지는 일이 서로를 위한 건강한 선택이라고 여겼다. 오랜 시간 생각정리를 하고 마음을 전달했다. 냉정하고 이기적으로 비춰졌겠지만 항상 그랬듯이 너는 내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주며 수긍해주었다. 그리고 많은 말 대신 눈물을 글썽이며 미안하다는 말을 내게 건넸다. 자신이 더 힘든 상황이었는데도 나를 예전처럼 지켜주지 못했다는 얘기를 하면서. 3년의 시간이 30분만에 무너져 내렸다.
공허했다.
우리를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네가 비어버린 나는 더이상 강인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꿋꿋이 나를 지켜올 수 있었던 네 맹목적인 사랑이 얼마나 크게 자리잡고 있었는지
함께한 크고 작은 수없이 많은 기억들은 말할 것도 없고 네가 존재했던 흔적들이 느껴지기만 해도 마음이 아려온다.
길을 지나다 문득 맡은 익숙한 공기에 반가운 마음이 들어 힘껏 들이마시면 갑자기 가슴이 쿵 내려앉고 아득한 기분이 드는 것은
이 시기 이 날씨에 너와 함께한 이 맘쯤의 추억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고 너를 잊으려 여기저기 고개를 돌려도 시선이 닿는 곳마다 멈춰서서 바보처럼 눈물을 글썽이게 된 것은 모든 곳에 깊게 새겨져 있는 우리 둘만의 이야기를 이제 나 혼자 들춰볼 수 밖에 없음이 너무도 서러웠기 때문이다.
또 네가 떠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독한 몸살기운으로 힘겨웠던 옛 기억이 자꾸만 되살아난다.
이렇게 더운 한여름에도 여전히 나는
너라는 지긋지긋한 감기몸살을 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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